‘어벤져스4’로 10년 장정 마무리… 새로운 10년의 시작
2008년 ‘아이언맨’부터 시작된 마블 영화 시리즈가 22번째 작품 ‘어벤져스: 엔드게임’(어벤져스4)으로 1차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마블이 10년간 쌓아 온 서사를 집대성한 완결판이자 새로운 시대를 힘차게 여는 작품이다. 전작 ‘어벤져스: 인피티니 워’(어벤져스3ㆍ2018)에서 살아남은 슈퍼히어로들이 우주를 구하기 위해 악당 타노스에 맞서 최후 결전을 벌인다. 마블이 팬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작별 의식이다. ‘어벤져스4’는 24일 개봉 첫날 134만 관객을 불러모으며 박스오피스에 신기록을 새겨 넣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ㆍ2015)과 ‘어벤져스3’에 이어서 세 번째 1,000만 돌파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마블 10년’이 남긴 성과를 짚어 보고, 앞으로 다가올 ‘마블 10년’을 내다봤다.
양승준 기자(양)= “마블 영화의 10년 여정은 정말 위대했다. 200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가 ‘아바타’라면 2010년대는 단언컨대 마블 영화다. 그 정점이자 정수가 ‘어벤져스’ 시리즈다.”
강진구 기자(강)= “마블 영화의 매력은 캐릭터에서 나온다. 마블의 슈퍼히어로는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다. 아이언맨은 부와 명성, 명석한 두뇌까지 가졌지만 성격적 결함이 있고, 캡틴 아메리카는 냉동인간이 되기 전 왜소한 신체 조건 때문에 좌절을 겪었다. 헐크는 심지어 방사선 실험 사고로 탄생했다. 앤트맨은 좀도둑이었다. 슈퍼히어로임에도 이들은 혼자서는 완전하지 않다. 서로 결핍을 보완하고 협력하면서, 따로 또 같이 성숙해 간다. 그 과정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를 만들었고 관객을 사로잡았다.”
김표향 기자(김)= “마블 영화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다. MCU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기반해 현 시대에 철학적 화두를 던지고 삶의 지향까지 성찰한다. 일례로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는 공적 정의 실현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희생에 대해 다루는데, 지금 이 세계가 당면한 문제와도 맞닿은 주제였다. 그로 인한 슈퍼히어로들의 노선 갈등은 결국 삶의 가치관 문제로 수렴된다.”
양= “그런 점에서 ‘어벤져스3’에서 맹활약한 악당 타노스가 매우 상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공멸을 피하기 위해 일부 희생이 불가피하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 있었다. 동의하진 않아도 이해할 수는 있다. 마블 영화에선 악당도 철학적 고민을 한다. 그렇기에 더 폭발력을 지니지 않았나 싶다.”
강= “그간 슈퍼히어로물에 등장하는 악당은 이유 없이 탐욕스럽고 악랄했다. 하지만 타노스는 절대악이 아니다. 신념에 경도되고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괴물일 뿐이다. 이 또한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독재자들과 닮았다. 마찬가지로 슈퍼히어로도 절대선은 아니다.”
김= “이렇게 악당까지 매력적이니 마블 영화에서 헤어나올 수가 있겠나. 원년 슈퍼히어로들에 식상해질 즈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와 ‘앤트맨’(2015)처럼 B급 감성의 영화가 등장해 숨통을 터 주고, ‘닥터 스트레인지’(2016) 같은 동양적 사고에 기반한 캐릭터로 세계관을 넓혔다. 팬들의 다양한 취향을 골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입덕 포인트’가 계속 추가된 거다. 정말 개미지옥 같다.”
강=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어벤져스4’가 조금 아쉬웠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장점은 여러 캐릭터가 합종연횡하기 때문에 1편부터 보지 않았어도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과거 사건들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보니 전편을 섭렵하지 않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알기 어렵다. 팬들에겐 추억거리이겠지만 팬이 아니라면 소외감을 느낄 것 같다.”
양= “동의한다. ‘앤트맨’ 시리즈를 보지 않으면 ‘어벤져스4’의 시간 여행 설정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캐릭터들이 겪는 역경의 크기와 긴장감도 조금 부족했다. ‘어벤져스3’의 묵직한 서사와 충격적 결말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솔직히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전개였다.”
김=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어벤져스4’에 이르러 이전 21편 영화들이 퍼즐처럼 맞춰지면서 비로소 거대한 세계가 완성된 느낌이었다. 슈퍼히어로들은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의 자신, 또는 자신에게 상처로 남은 그리운 존재들과 대면한다. 나 자신을 극복하면서 현재를 바꾼다는 건 대단히 철학적인 주제다. 여성과 흑인 등 마이너리티에 대한 확실한 지향도 선언적으로 보여 줬다.”
강= “하지만 그 방식은 세련미가 떨어졌다. 다소 작위적이라고 느꼈다. 서사가 아닌 장면의 나열로 여성 연대가 충분하게 전달될지 의문이다.”
양= “10년 여정을 마무리 지은 지금이야말로 마블이 진짜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본다. 팬덤을 형성한 원년 캐릭터 일부가 하차하는데 그 팬덤이 과연 유지될까. 팬들이 느낄 상실감이 만만치 않을 거다.”
강= “새 캐릭터들은 원년 캐릭터를 대체할 만큼 충분한 서사를 아직 쌓지 못했다. 팬들이 새 캐릭터의 성장을 기다려 줄까 의구심이 든다. 향후 10년의 성패가 캐릭터에 달려 있다.”
김= “오히려 새로운 팬덤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팬덤이 탄탄해졌지만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았다. 하지만 이번에 한 시대를 마무리함으로써 새로운 관객층이 MCU에 진입할 공간이 생겼다. 기존 팬덤과 신규 팬덤이 결합하면 한층 무시무시해질 거다.”
양= “마블의 거시적 스토리텔링 전략은 탁월하다. 지난 10년간 대중문화의 체질을 바꿨다. 대중문화에서 세계관이란 말이 자연스러워진 건 마블 때문이다. 방탄소년단의 음악도 세계관으로 설명되는 시대다.”
강= “산업적 측면에서도 마블은 롤모델이었다. 드라마와 온라인 플랫폼이 영화와 극장을 대체하고 있다. 마블은 관객을 끊임없이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연속성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줬다.”
김= “마블 영화와 함께 성장기를 보낸 10, 20대에 마블은 한 세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이다. 중장년층에게 마이클 잭슨과 비틀스, 퀸 같은 존재가 있듯이 말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마블 영화는 계속 소환될 거다.”
양승준ㆍ김표향ㆍ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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