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또다른 화약고, 카슈미르를 가다] <하> 모디 집권 2기, 흔들리는 ‘제한적 자치’
지난 2일(현지시간) 인도 잠무-카슈미르주(인도령 카슈미르)의 ‘여름 수도’인 스리나라그 시내 한 골목 식당에서 만난 50대 남성 무다시(가명)는 ‘잠무카슈미르해방전선(JKLF)’의 집행부 대원이다. 1989년 인도령 카슈미르에서 독립을 꿈꾸며 무장투쟁의 서막을 열었던 이 조직은 1994년 무기를 내려놓은 뒤로는 비폭력 정치투쟁의 길을 걸어왔다. “무기를 내려놓은 이래, (25년간) 우리 대원 약 600명이 (인도 보안군에 의해) 살해됐다. 그 정도면 다시 무기를 들 만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린 폭력투쟁으로 되돌아가지 않았다. 비폭력 정치투쟁 노선을 유지해야 국제사회가 우리 목소리를 들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무다시는 낮고 걸걸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비폭력 정치조직 금지… 대대적 체포ㆍ구속도
그는 이내 주변 공기가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애초 예정했던 30분도 안 돼 “자리를 뜨는 게 좋겠다”고 했다. 곧바로 일어섰다. 기자는 시장통 인파 속으로 들어갔고, 무다시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날 저녁, 무다시를 만난 식당에 인도 경찰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경찰 정보국에 해당하는 범죄수사국(CID) 요원으로 추정됐다.
인도 정부는 지난 3월 22일 테러방지법 3조에 근거해 JKLF를 ‘금지 조직’으로 규정했다. JKLF 대원들은 하루아침에 지하로 숨어들었다. 이보다 한 달 전인 2월 22일에는 JKLF 의장 야신 말리크를 포함, 카슈미르 분리주의 진영에 속하는 정당 ‘자마테 이슬라미(JeI)’ 지도부와 당원 등 300여명이 대거 체포됐다. 다음날 카슈미르 남부를 비롯, 거리 곳곳은 이들의 체포에 항의하는 돌멩이 시위가 이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당국이 JKLF를 금지하면서 적용한 여러 혐의들 중에는 “돌멩이 시위를 부추겼다”는 조항이 있다. 말리크는 현재 공공안전법(PSA) 위반죄로 델리의 티하르 감옥에 수감돼 있다. 그는 단식 투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JKLF의 또 다른 대원인 샤비르(가명)는 “만일 야신 말리크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카슈미르는 불타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금지된 조직은 JKLF뿐만이 아니다. JeI도 지난 2월 28일부로 5년간 금지됐는데, 이 조처는 그들에 대한 지지 세력이 적지 않은 시골 마을의 당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컨대 카슈미르 남부 쿨감 지구 람푸르마을에 사는 75세 노인 무함마드 람잔 셰이크는 2016년, 그러니까 ‘JeI 금지’ 한참 전에 이미 체포돼 PSA 위반 혐의로 구금 중에 있다. 아내 무갈라 비굼(70)에 따르면 당국은 남편에게 PSA 위반죄를 물을 만한 구체적 근거가 나오지 않자, 그가 올해 2월 ‘불법 조직’ JeI의 모임에 참석했다며 풀어주지 않고 있다. “2월이면 그가 감옥에 있을 때인데 어떻게 모임에 갔단 말인가?” 무갈라는 남편의 새로운 죄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 같은 대대적 체포와 구금은 지난 2월 14일 무장단체 ‘자이시 에 무함마드(JeM)’의 풀와마 지구 자살폭탄 공격에 따른 즉각적 여파로 풀이된다. 올해 4~5월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공격은 나렌드라 모디 정부에 있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親)정부 성향 언론에서 일하는 카슈미르 기자 쿠람(가명)은 풀와마 공격 직전 델리 도심을 메웠던 농민들의 상경 시위, 농민 자살 사태 등을 상기시키면서 “민생고가 촉발한 반(反)정부 분위기 때문에 모디 총리의 인도국민당(BJP)이 재집권을 할 수 있을지 솔직히 미지수였다”고 했다. 그러나 풀와마 공격 이후 선거 분위기는 온통 ‘국가안보’ 의제로 들끓었다. 2월 26일 인도군은 파키스탄 영토 발라콧을 공습했고, ‘풀와마 공격을 감행한 JeM 대원 300명 안팎을 사망케 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미국 싱크탱크 ‘아틀란틱카운슬’을 비롯, 디지털 포렌식 전문 연구소들은 위성 사진 검토를 통해 인도군의 공격이 발라콧 주변의 주요 지점 어느 곳도 타격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쿠람은 ‘파키스탄에 제대로 된 보복을 했다’는 통쾌감을 주는 ‘300여명 사망’이 실제로 인도의 시골 유권자들에게 먹혔다고 말했다. 물론, 모디 총리의 ‘강한 지도자’ 이미지 메이킹, 야당인 의회당의 초라한 정치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모디 재집권, 카슈미르 자치엔 ‘먹구름’
그동안 카슈미르 이슈에 관한 한, 집권 BJP이든 의회당이든 기본적인 정책적 토대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모디 집권 2기를 맞는 카슈미르는 그나마 형식적으로 주어진 자치와 관련, 먹구름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대(對)반군 군사작전의 강화도 예고돼 있다. 카슈미르 역사학자 시디크 와히드 교수는 “카슈미르에 있어 모디 재집권의 ‘최악의 영향’은 지속적인 인권침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자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그는 “인권침해 다음으로는 인도 헌법이 보장한 카슈미르의 독특한 지위(조항)를 무시하는 것이다. 더 힘든 시간이 오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잠시, 잠무-카슈미르주(J&K)의 정치 세력을 간략히 살펴보자.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주류 정당들이 있다. 인도연방 내 카슈미르의 ‘자치’를 추구하는 국민의회(NC), 인민민주당(PDP) 등이 대표적이다. 힌두민족주의 정당인 BJP도 카슈미르에 지부를 두고 있다. ‘BJP J&K’ 대변인 칼리드 제항기르는 기자에게 “BJP는 전국 정당으로서 ‘하나의 노선과 정책’이라는 일관성을 갖고 있는 만큼, 잠무-카슈미르주의 특별한 정책 노선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카슈미르 문제가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이 있다는 점, 이 지역이 ‘분쟁 영토’라는 사실을 모두 부인하기도 했다.
둘째, JKLF와 JeI, 그리고 카슈미르 최대 이슬람사원 ‘자미아 마스지드’의 최고 이맘인 미르와이즈 우마르 파룩 등처럼 비폭력 방식으로 분리주의 정치투쟁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다. 이들은 최근 ‘공동저항지도부’를 구성, 주요 이슈에 함께 대응해 왔다. 그러나 풀와마 공격 후 카슈미르를 휩쓴 대대적 체포와 가택연금 등으로 이제는 손발이 묶여 버렸다. 미르와이즈 파룩 정도만 모스크(이슬람사원) 설교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 모디 총리의 카슈미르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대화 노력도 지지한다’는 게 그가 반복적으로 밝히는 메시지다.
셋째는 폭력투쟁 그룹이다. 주류 정치나 비폭력 노선을 모두 거부하고 ‘무장투쟁’으로 인도의 억압에 맞서겠다는 노선이다. 당연히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되는 대반군 군사작전의 타깃이다.
결국 ‘비폭력 분리주의’ 세력의 활동마저 사실상 차단돼 있음을 감안하면, 친인도계 주류 정당들만 이 지역에서의 정치 활동이 허용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 주류 정치인의 행보에 대해 카슈미르 시민들은 매우 냉소적이다. 와히드 교수는 “(이번 총선의) 낮은 투표율은 카슈미르 주민들이 인도 중앙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총선이 그들에겐 별 상관이 없는 이벤트라는 점을 가리킨다. 지난 30년간 카슈미르는 이 메시지를 꾸준히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최근 5년 동안 이런 민심은 더욱 악화했다. 특히 2014년 카슈미르주 의회 선거에서 최대 의석을 얻은(총 87석 중 28석) PDP가 주정부 집권연정 파트너로 BJP(25석)를 끌어들인 건 ‘형식적 민주주의’가 카슈미르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날린 셈이 됐다. 와히드 파라 PDP 대변인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BJP와의 연정을 후회하진 않는다”면서도 ‘연정의 실패’는 인정했다.
실제로 PDP-BJP 연정은 무너졌다. 앞서 BJP가 지난해 6월 갑자기 연정을 탈퇴, 주정부가 공중분해된 것이다. 이에 잠무-카슈미르 주헌법 92조에 따라 주지사의 통치가 시작됐다. 람 나트 코빈드 인도 대통령은 주지사로 BJP 출신 정치인 사티야 팔 말리크를 임명했다. 결과적으로 잠무-카슈미르주는 BJP 통치로 넘어간 셈이 됐다. 주지사 통치가 6개월이 지나도록 주의회 선거도, 정부 구성도 이루어지지 못하면 헌법 356조에 따라 대통령을 통한 중앙정부의 통치로 넘어간다. 카슈미르가 바로 그런 상황에 놓여 있다.
‘자치 보장’ 헌법 조항 2개, 폐기 위기
이번 인도 총선에서 ‘카슈미르 지방’에 배정된 지역구 의석 3개를 모두 NC가 다시 확보한 것도 바로 전 정권인 PDP-BJP 연정의 실패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린 것이다. 나머지 잠무 지방과 라다크 지방은 BJP에 넘어갔다. 임란 나비 다르 NC 대변인은 기자에게 “전 정권(PDP-BJP 연정)의 불찰에 대한 민심이 반영된 결과”라며 “이길 줄 알았다”고 했다. 주의회 선거에서 “(정부 구성을 주도할 만큼 좋은 성적이 나오면) 우리가 BJP와 연정을 맺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그는 다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 주의회 선거마저 위태롭고, 또 요원해 보인다. 모디 정권 2기를 맞아 들어선 새 내무부가 지난 1년간 미뤄 왔던 잠무-카슈미르 지방선거를 치르기보다는 7월 초에 끝나는 지금의 ‘대통령 통치’ 체제를 6개월 더 연장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모디 집권 2기에 ‘카슈미르 자치’가 위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헌법 조항 2개의 개정과도 맞물려 있다. BJP는 카슈미르 자치를 임시 규정한 헌법 370조, 그리고 카슈미르주의 재산권과 토지소유권 보장을 골자로 한 35A 조항을 삭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디크 교수는 그러나 “370조를 (BJP의 의도와는 달리) 제거하면 카슈미르는 더 이상 인도의 일부로 편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자치 보장’을 조건으로 잠무-카슈미르주를 인도에 편입시키는 ‘임시 조항’이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면 잠무-카슈미르주의 위상은 ‘인도로의 완전 편입’이 아니라, 정반대인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다. 여기서 원점이란 당연히 카슈미르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BJP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는 없다. 그러나 BJP는 해당 조항을 둘러싼 논쟁을 통해 안티-무슬림, 안티-카슈미르 정서에 불을 붙이며 정치적 이득을 제대로 보고 있다. 오히려 진짜 폐기될 우려가 있는 건 ‘35A’ 조항이라는 게 다수 전문가의 지적이다. 이 조항은 다른 지역에서 카슈미르로의 이주, 특히 토지와 부동산의 구매를 불허하는 것으로 ‘인구 이동을 통한 카슈미르의 식민화, 경제적 종속’을 차단하는 게 주된 목적이다.
“BJP는 이것(35A)을 ‘무슬림 편애 조항’이라고 왜곡하고 있다. 절대적으로 틀린 말이다. 이건 친무슬림 조항이 아니다. 잠무-카슈미르주에는 시크교 신도도 있고, 힌두교도도 있다. 무슬림도, 불교도도 살고 있다. (35A는) 이 지역에 사는 모든 공동체의 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힌두 대 무슬림’ 구도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NC의 임란 대변인은 이같이 말했다. NC와 PDP는 두 조항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손에 좌우돼 온 이들 주류 정당이 카슈미르의 형식적, 제한적 자치를 지키기 위해 이번 총선 승리와 함께 개막한 ‘모디 2.0’ 시대에 최선을 다해 맞설지는 의문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