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호 메디트 대표
항공기 제조업체 미국의 보잉, 자동차 제조기업 메르세데스 벤츠와 테슬라, 한국의 삼성과 LG, 그리고 고가의 보석기업 까르띠에, 티파니, 샤넬, 쇼메…. 이름만 들어도 눈이 번쩍 뜨이는 세계적인 기업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국내 한 중소기업의 고객사들이다.
주인공은 컴퓨터지원설계(CAD) 기술을 활용한 3차원(3D) 스캐너를 개발한 ‘메디트’다. 메디트의 CAD 기술은 비행기나 자동차, 전자제품, 보석 등의 정밀한 품질검사를 가능하게 했다. 설계가 끝난 각 제품들이 제조 과정에 돌입하면 다양한 오차들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공정상의 오류를 잡아주고, 그 오차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검사해주는 게 CAD 기술이다.
이런 기술을 보유하고 사업을 확장시킨 이가 장민호(51) 메디트 대표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CAD 분야를 전공해 석ㆍ박사 학위를 받은 장 대표는 2000년 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다 2008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치과용 3D 스캐너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치과용 3D 스캐너는 지난 1년간 세계 시장에서 ‘톱 3’ 안에 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서울 안암동 메디트 본사에서 만난 장 대표는 “구강 스캐너 매출은 미국이나 유럽 등에서 80%가 나온다”며 “이 지역에 경쟁업체들이 있는데 경쟁사 제품보다 가볍고 정밀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는 게 우리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구강용 3D 스캐너는 치과 치료 때 틀니 등 보형물을 만드는 과정을 쉽고 빠르게 진행하도록 돕는다. 보통 치과에 가면 환자들은 고무찰흙을 입에 물고 치료할 치아의 형상을 만든다. 치아 모양으로 굳으면 석고를 부어 틀을 만들고, 그 모양대로 치아에 끼울 보형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과정 속에서 환자는 보통 일주일 이상 기다려야 치아 보형물을 받아볼 수 있다. 그러나 구강 스캐너는 이러한 시간을 단축해준다. 진동칫솔처럼 생긴 스캐너가 1~2분 안에 입 안을 스캐닝하면 거의 1시간 만에 치아 보형물이 완성된다. 석고 틀을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장 대표는 “환자도 자신의 데이터(의료정보)가 디지털로 존재하기 때문에 치료한 치아나 보형물에 문제가 생겨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빠른 시일 내에 기존과 똑 같은 보형물을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 그 데이터를 갖고 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했다.
위생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예전 방식으로 치아 보형물을 만들 경우 본을 뜬 틀을 기공소에 택배로 보내는 과정에서 세균 감염도 배제할 수 없었다. 3D 스캐너를 사용하면 환자 데이터만 기공소로 보내면 되기 때문에 위생과 시간적인 면에서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일부러 구강 스캐너를 구비한 치과 병원을 찾는 환자들도 있다.
특히 노인들이 구강 스캐너를 더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고무찰흙 등으로 치아 본을 뜰 때는 이물감을 느끼거나 헛구역질을 하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그런데 단 몇 분만 투자해 치아 스캐닝만 하면 금새 치아 보형물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6월 신제품 ‘구강스캐너 i500’을 출시해 더 주목 받고 있다. 글로벌 시장의 30%를 점유하고 있는 이 제품 덕에 지난해 매출은 전년 대비 90% 가까이 증가한 328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매출 목표도 620억원으로 두 배 가량 높게 잡았다. 전 세계 치과 수가 160만개에 달하는 만큼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메디트의 미래는 이미 국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지난 8일 벤처기업협회가 선정한 ‘최우수벤처기업’에 메디트가 이름을 올렸다. 벤처기업협회는 비상장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최근 3년간 경영 성과를 토대로 성장성, 고용창출, 지속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했다.
장 대표의 꿈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그는 “3D 스캐너가 사용되는 영역은 굉장히 넓다”고 말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의료분야를 비롯해 보청기, 가발, 장갑이나 헬멧 등 맞춤형 제품에 3D 스캐너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메디트는 세계를 무대로 설립한 회사라서 어떻게 하면 더 글로벌화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많습니다. 현재 회사 직원들의 10%는 13개국의 외국인 직원들입니다. 더 많은 다국적 직원들과 함께 사업 아이템을 다각화해 더 큰 무대로 뻗어나갈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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