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연쇄살인, 폭염] 국내 편 <4>일기예보가 알려주지 않는 것
“폭염은 기후 재앙이라고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제가 매일 같이 최고기온 38도, 39도 이런 예보를 했는데 마음 속으로는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이었죠.”
이시우 기상청 총괄예보관실 예보관은 2018년 8월 1일 오전 교대근무를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기상청 2층 국가기상센터 직원들은 한국 기상 역사를 새로 쓴 아침을 맞았다.
최저기온 27.8도에서 온도가 치솟기 시작한 서울을 비롯해 전국 상당수 지역이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서울 39.5도, 일부 지역은 41도까지 올랐다. 열기는 끈질기게 이어져 다음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한낮을 방불케 하는 30.3도를 기록했다. 숱한 사람이 열사병으로 쓰러졌다. 8월 1일과 2일에만 전국에서 최소 9명이 사망하고 53명이 중환자실로 실려 갔다. 보통 기상청에는 비 예보가 틀렸을 때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지만 이때는 “밤새 한숨도 못 잤는데 언제 더위가 가시냐”는 불만 섞인 문의 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흔히 예보관은 최첨단 슈퍼컴퓨터가 만들어 준 자료를 토대로 일기 예보를 생산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업무는 조금 다르다. 이 예보관은 “내 일은 슈퍼컴퓨터의 분석 결과를 의심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슈퍼컴퓨터는 지구를 가로ㆍ세로 수 ㎞씩 쪼갠 전 구역의 기상 관측 수치를 모으고, 복잡한 수식을 이용해, 예상 날씨 자료를 만든다. 하지만 해상이나 오지는 실제 관측치가 없어 추정치를 사용하게 되고, 많은 오차도 발생한다. 업무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이를 바로잡는 게 바로 예보관이다. 일부 국민이 “수백억짜리 슈퍼컴퓨터가 있어도 날씨를 못 맞춘다”고 비난할 때마다 예보관들이 억울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차와 힘겨운 씨름 끝에 예보를 낸다고 해도 미리 폭염을 예상하고 대비할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버는 것은 현재 과학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부분 국가의 기상당국이 예보할 수 있는 미래의 날씨는 길어야 10일 가량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가 시급히 인력과 재정을 투입해 폭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실질적인 경고를 할 수 있는 수준의 예보가 이뤄지려면 그 범위는 다시 2, 3일 정도로 줄어든다. 지난달 프랑스를 중심으로 최고 45.9도를 기록한 갑작스런 폭염 앞에 세계 최고 예보 기술을 자랑하는 유럽 기상 당국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예보관은 “우리도 1, 3개월 단위로 장기 예보를 하지만 기온의 경향을 추정할 뿐”이라며 “세계 어느 국가도 신뢰할 만한 완벽한 예보 정확도를 갖추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평상시 폭염 대비 수준과 언제 누가 폭염에 가장 위험한지 정교하게 경고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사상자를 줄이는 핵심일 수밖에 없다. 많은 기상 선진국들이 자기 환경에 맞는 폭염 특보 체계 개발에 힘을 쏟는 것도 이 때문이다.
◇11년째 흉내만 내는 폭염 특보
한국 폭염 특보 시스템은 어떤 수준일까. 기상전문가들은 ‘선진국을 단순 모방하는 수준’, ‘끼워 맞추기 식으로 마련돼 무려 11년간 이어져 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한다.
2008년부터 시행된 폭염 특보는 낮 최고기온이 33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이 되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날이 2일 이상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 ‘폭염경보’를 발령하는 2단계 체제다. 하지만 왜 이런 기준으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설명된 적은 없다.
기상청에 따르면 폭염 특보는 2006년 12월 한 대학 연구팀이 작성한 ‘폭염 특보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보고서는 세계 각국의 폭염경보 시스템을 참고해 폭염 특보를 발효하기에 적합한 세 가지 기준을 후보로 추렸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일 때 ▲평균기온이 평소보다 월등히 높을 때 ▲일 최고기온이 평소보다 월등히 높을 때 등이다. 이어 평소 사망자 숫자보다 더 늘어난 사망자(초과사망자) 숫자를 무더위가 극심했던 1994년을 기준으로 조사했다. 세 가지 기준 중 어떤 것과 가장 일치하는지 비교한 결과 1994년 여름 초과사망자는 주로 평균기온이 평소보다 월등히 높은 시점에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폭염 사상자 발생에는 최고기온뿐만 아니라 최저기온의 강도도 고려된 평균기온이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막상 폭염 특보 기준으로 채택된 것은 평균기온이 아닌 일 최고기온이었다. 보고서는 “평균기온 기준이 (특보에) 가장 적합하지만 (현재 기상청이) 최저기온과 최고기온만을 예보하고 있으므로 실제 적용 시에는 최고기온과 습도가 고려된 열지수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밝혔지만, 보고서 결론 중 일부만 채택된 것이다.
고온 다습한 한국의 여름철 특성에 맞게 특보를 내릴 때는 습도를 고려해야 한다는 권고도 있었지만 이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 보고서가 사용한 습도 적용 방식은 미국에서 개발돼 서양인 체격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국 실정에는 맞지 않다는 지적 등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임연희 서울대 의대 환경의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고기온만 기준으로 하면 신속한 측정이 가능한 장점은 있지만 실제 폭염 피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경고하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에 따라서도 시민들이 체감하는 온도가 다르다. 예를 들어 대구의 33도는 일반적인 여름 날씨로 여길 수 있지만 강원도의 33도는 심각한 온열질환자가 다수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점도 고려돼야 한다”고도 했다. 임 교수는 또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계속 높아진 상황에서 10년도 더 된 연구 자료를 토대로 현재까지 같은 특보 기준을 적용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혼란만 부추기는 각종 더위지수
일 최고기온만 따지는 폭염 특보는 곳곳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한국일보가 지난해 응급실로 이송될 당시 심장이 멎었거나 중환자실 치료를 받아야 했던 초고위험군 온열질환자 366명의 증상 발생 시간대를 분석한 결과 절반 정도인 184명만 하루 중 기온이 가장 높은 낮 12시부터 오후 5시 사이 온열질환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182명의 경우 해가 진 저녁 시간은 물론 이른 새벽에도 쓰러졌다. 기온이 33도 또는 35도에 미치지 않았더라도 심각한 온열질환자가 끊임없이 발생했다는 얘기다. 또 366명 가운데 111명이 집 안에서 온열질환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돼 외부기온 외에도 집 안 구조 등에 따른 습도나 복사열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요인을 감안한 폭염 특보 시스템이 필요한 이유다.
기상청 역시 폭염 특보의 한계를 인식해 여러 자구책을 내놓고는 있다. 그러나 일관된 기준 없이 혼란만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기상청이 더위와 관련해 현재 생산하고 있는 지표는 폭염 특보 외에도 폭염 영향예보, 더위체감지수, 열지수, 불쾌지수 등 네 가지가 더 있다. 영향예보는 폭염 특보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위험 단계를 늘리고 보건ㆍ농업ㆍ산업 등 분야별 대응요령을 포함시켰다. 더위체감지수는 일본의 더위지수(WBGT)를 참고한 것으로, 주변 환경에 따른 온열질환 위험을 측정하기 위해 마련했다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그 밖에 미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열지수가 있고, 불쾌지수는 기온 외에 습도를 계산에 넣은 지수다.
사실상 기존의 폭염 특보 체계는 그대로 유지한 채 일부만 바꾸거나 기상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예보를 국내 환경에 맞게 가공하는 과정 없이 그대로 들여오기도 했다. 게다가 각각의 지수는 국민들이 생소해 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정부 부처도 폭염 특보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의 폭염 특보를 보완해야 하는 과정에서 기상청이 일관된 폭염 지수 기준을 만들지 못한 채 여러 가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폭염이 사회적인 재난 성격을 갖는 만큼 효과적인 경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온열질환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통계조차 없는 상황이다. 기상청 혼자서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데이터분석 박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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