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자’
※극장가 최대 성수기인 여름을 맞아 대작 영화들이 쏟아지고 있다. 관객들의 선택을 돕기 위해 한국일보 대중문화 담당 기자들이 여름 영화 5편을 차례차례 뜯어 보고 별점을 매긴다. ‘라이온 킹’과 ‘나랏말싸미’에 이어서 이번엔 ‘사자’다.
영화 ‘사자’(31일 개봉)는 올 여름 충무로 최고 기대작으로 꼽혀 왔다. 안방극장을 평정한 박서준과 베테랑 안성기, 주목받는 신예 우도환 등 캐스팅 면에서 경쟁작을 압도한다. 2017년 여름 565만명을 동원하며 극장가를 깜짝 놀라게 한 흥행작 ‘청년경찰’의 김주환 감독이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격투기 선수 용후(박서준)는 원인 모를 환청과 악몽에 시달린다.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일어난 그는 손바닥에 깊은 상처가 생긴 것을 발견한다. 병원 치료를 받아도 손바닥 출혈이 멈추지 않자 용후는 바티칸에서 온 구마 사제 안 신부(안성기)를 찾아가고, 상처 난 손에 특별한 힘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을 의심하고 원망하면서도 안 신부의 구마 의식에 동참하게 된 용후는 마침내 ‘악령의 대리자’ 검은 주교(우도환)와 맞닥뜨린다.
◆‘사자’ 20자평과 별점
20자평 | 별점 | |
양승준 기자 | 의심 없이 굴러간 공포의 헛헛함. | ★☆ |
강진구 기자 | 엑소시즘 영화에 한숨과 헛웃음뿐이라니. | ★ |
김표향 기자 | 과유불급. | ★★☆ |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철인 주먹’의 사자… 난감하네
창세기 없는 성경 같다. 아버지 사망 후 신을 버린 사내는 어떻게 구마 사제가 됐을까. ‘사자’는 주인공 용후의 변화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다.
격투기 선수였던 용후는 악령으로 잠을 못 이룬다. 그가 용한 무속인에게 들은, 귀신에 홀린 이유는 ‘마음을 못 되게 먹어서’였다. 오컬트 영화가 선과 악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 평면적이다.
용후에겐 어느 날 악령을 쫓는 능력이 주어진다. 신을 믿지 않는 그에게 신이 보여준 ‘신의 존재 증거’라니. 더 촘촘했어야 할 반전의 근거가 부실하다 보니 공포는 반감된다. 악과 선이 맞서는 구마 의식도 ‘검은 사제들’(2015)에 비해 심심하다.
합리적 의심이 공포를 키우기 마련이다. 스릴러 영화이기도 한 ‘사자’는 오히려 엉뚱한 길을 택해 마지막 남은 오싹함을 증발시킨다. 끝나기 5분 전에 나오는 구마 사제의 ‘철인 주먹’은 판타지 액션 히어로물의 문법에 가까웠다.
영화가 끝난 후 기억에 남는 건 폭주족이 된 신부, 패션뿐이다. 작품이 흔들리다 보니 안성기도 박서준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감독의 흥행작 ‘청년경찰’처럼 여성 캐릭터의 수동적 활용도 풀어야 할 숙제. 속편을 만들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양승준 기자
◇헛웃음 나오는 엑소시즘 영화
한국에서 엑소시즘 장르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영화에선 ‘검은 사제들’과 ‘곡성’(2016)이 대표작이다. 드라마도 tvN ‘싸우자 귀신아’(2016), OCN ‘프리스트’(2018)에서 구마 의식을 다뤘다. 작품이 쌓일수록 관객의 눈도 그만큼 높아졌다. 좋은 엑소시즘 콘텐츠에 대한 열망도 크다. ‘사자’는 이런 가운데 등장한 영화다.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상영 시간은 2시간을 넘기지만, 남은 것이라곤 안성기의 ‘아재개그’와 박서준의 ‘불 주먹’뿐이다. 무엇보다 서사가 빈약하다. 안성기와 박서준이 동일한 방법으로 악령을 해치우는 모습만 여러 차례 반복된다. 처음은 흥미로울지 몰라도, 금세 지루해진다. 더군다나 그 방식 또한 수많은 엑소시즘 영화에서 나왔던 구마 의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 쉽게 퇴치되는 악령은 공포를 남기지 못한다. 주ㆍ조연들의 훌륭한 연기만 빛을 바랜다.
캐릭터 매력도 떨어진다. 박서준 오른손에 생긴 성흔(聖痕)이 영화에서 핵심 역할을 하지만, 정작 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하다.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만나 각성한다는 설정은 1990년대 만화 영화를 떠오르게 할 뿐이다. 구마 사제인 안성기에 대한 배경 설정도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검은 주교인 우도환은 박서준과 마지막 결투에서 악마로 변신하지만, 조악한 분장에 헛웃음만 나온다.
강진구 기자
◇패기인가 과욕인가
재료가 아무리 좋아도 맛의 균형과 조화를 따지지 않고 한 그릇에 욱여넣으면 잡탕밖에 되지 않는다. ‘사자’의 문제점이다. 드라마, 오컬트, 미스터리, 액션, 급기야 슈퍼히어로물까지 여러 장르를 무리하게 욕심 내다 보니 오히려 제 살 깎아먹기가 됐다. 장르 혼합의 새로운 재미는커녕 개별 장르의 익숙한 재미마저 잃어버렸다. 그나마 공포가 상대적으로 수위가 높은 편이지만, 오컬트 호러로 정의하기에는 약하다.
장르 간 유기성이 떨어지는 건 서사가 빈약한 탓이다. 격투기 선수 용후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를 통해 신이 부여한 초월적 힘을 깨닫고 결국 신앙적 소명을 받아들이기까지 내적 각성과 성찰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모든 건 신의 뜻”이라는 대사로 용후의 성장과 장르 변주의 개연성을 한번에 설득하려는 영화의 태도는 매우 안이하다.
악령의 대리자인 검은 주교와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상상력이 지나쳤다. 이전까지 내내 비장하다가 슈퍼히어로 같은 초능력 액션이 튀어나오니 당황스럽다. 이 액션 장면을 보기 위해 2시간을 달려 왔다고 생각하면 허탈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감독의 전작 ‘청년경찰’이 보여 준 재기발랄함이 사라져 아쉽다.
박서준은 연기력에다 뚝심까지 보여 준다. 안성기는 특유의 인간미와 여유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데, 최근 몇 년간 그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이다. 두 사람의 기발한 조합을 다시 보고 싶고 영화도 에필로그를 통해 의지를 드러내고 있으나, 속편이 나올지는 의문이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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