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4개월, 그의 빈자리는 컸다. 많은 이들이 그의 복귀를 고대했다. 누구보다 MBC가 애간장을 태웠다. ‘무한도전’을 국민 예능프로그램으로 만들고, MBC의 광고수익을 보장해주던 스타 PD였던 김태호 PD의 귀환에 대한 기대는 클 수 밖에. 김영희 MBC 부사장은 지난 1월 MBC 최대주주이자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해 “MBC 예능의 파워 콘텐츠가 될 김 PD의 신작이 성공할 수 있도록 본부 내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까지 말했다.
김 PD의 복귀작은 두 편. 지난달 27일 첫 방송한 ‘놀면 뭐하니?’와 지난 18일 시작한 ‘같이펀딩’이다. ‘놀면 뭐하니?’는 여러 연예인이 셀프 카메라로 만든 ‘릴레이 카메라’부터 ‘조의 아파트’, ‘유플래쉬’까지 다양한 포맷을 선보이고 있다. ‘같이펀딩’은 온라인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자금을 모집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기초로 한 예능프로그램이다.
성적은 아직 기대에 못 미친다. ‘놀면 뭐하니?’의 시청률은 4%(닐슨코리아 집계)대에 머무르고 있으며, ‘같이펀딩’은 3.4%를 기록했다. 참신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김 PD가 ‘무한도전’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 대중문화팀 기자들이 두 프로그램을 요모조모 따지며 국내 예능프로그램의 현황을 진단해봤다.
◇즉흥성 살린 ‘놀면 뭐하니?” 초기 ‘무도’와 교집합
강진구 기자(강)= “김 PD의 과감한 시도를 ‘놀면 뭐하니?’에서 엿볼 수 있었다. ‘무한도전’은 ENG 카메라가 멤버당 하나씩 있었을 정도로 촬영에 신경을 많이 썼다. ‘릴레이 카메라’와 ‘조의 아파트’는 소형 카메라 3, 4대가 전부다. 대신 편집과 구성이 좋다. 유재석의 초보적인 드럼 비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인이 참여해 곡을 만드는 ‘유플래쉬’는 특히 신선했다. 릴레이 형식의 프로그램 구성이 카메라뿐만 아니라 음악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양승준 기자(양)= “릴레이 카메라로 배우 이동휘와 박병은 등 기존 예능에서 보지 못했던 연예인의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카메라가 세포 분열하듯이 늘어나면 나중엔 연예인을 넘어 일반인 그리고 대한민국 곳곳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도 됐다. 다만, 이 실험적 포맷에 때론 옛날 방식의 콘텐츠가 담겨 혼란스러웠다. 유재석 등의 지인이 모여 만든 콩트 ‘조의 아파트’는 프로그램과 겉돌더라."
김표향 기자(김)= “컨셉트 없는 것이 컨셉트인 초창기 ‘무한도전’과 교집합이 많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즉흥성이 살아있다. 김 PD가 ‘무한도전’을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이 ‘놀면 뭐하니?’가 아니었을까 싶다. 현재는 씨를 뿌리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이들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에 따라 거대한 세계관까지 형성될 수 있다.”
강= “유준상이 출연한 ’같이펀딩’ 1화는 2000년대 방송된 공익 예능프로그램 ‘느낌표’ 냄새가 물씬 풍겼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한 내용 없이 태극기가 가진 의미와 역사만 설명하다가 끝났다. 프로젝트의 마무리 없이 다음 순서로 넘어가니 당연히 내용이 산만해진다. 시청자의 주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 “재미가 좀 없었다. 역사와 힙합을 합친 ‘무한도전’의 코너 ‘위대한 유산’은 참신한 발상이 눈길을 끌었다. ‘같이펀딩’은 김 PD만의 새로운 시도가 없었다. 되려 유준상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클로즈업 하는 등 감동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면이 있었다. 시청자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양= “'같이 펀딩'의 틀은 좋았다. 시청자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져 생명력도 있고. 김 PD는 2015년 본보 창간 기획 '한국 대중문화 빅10'에서 5위에 꼽혔다. 당시 인터뷰에서 김 PD는 '만들고 부수고 만들라(Make break make)'가 제작 모토라고 했다. 그는 판을 새로 짜는 사람이다. 당시 김 PD는 온라인 콘텐츠 제작 방식에 관심이 매우 컸다. 그 갈증을 '놀면 뭐하니?'에서 푼 것 같다.”
◇1020 타깃 프로그램, 토요일 오후 편성 실패
강= “낮은 시청률은 MBC와 김 PD 모두 고민할 지점이다. 회사의 대형 적자를 해결할 희망으로 여겨졌던 ‘놀면 뭐하니?’와 ‘같이펀딩’ 모두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나영석 PD의 예능프로그램이 지겹다곤 하지만 tvN ‘삼시세끼 산촌편’은 시청률 7~8%가 나온다. 김 PD와 MBC라는 이름값만으론 프로그램의 화력이 붙지 않는 상황이다.”
양= “편성 전략의 실패다. 토요일 오후 6시 30분은 '시청률 사각지대'다. '무한도전'이 첫 방송된 2000년대 중반과 달라졌다. 프로그램 특성상 주 시청 타깃이 10~20대다. 토요일 오후 이 시간에 본방을 사수하는 10~20대가 얼마나 될까. 같은 요일 심야에 편성했다면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지 않았을까.”
김= “잘 나갔던 ‘무한도전’도 마지막에는 한 자리 시청률로 고전했다. MBC가 이 시간대를 살려 토요일 예능 왕국을 부활시키겠다는, 자존심 섞인 야심이 너무 컸던 것 같다. 프로그램 형식은 새로운데, 편성 전략은 구태의연했다.”
강= “두 프로그램 모두 매 회마다 새로운 출연자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고정 MC도 각각 한 명뿐이다. ‘무한도전’이나 KBS2 ‘1박2일’ 등 과거 예능프로그램은 수년 간 동일 멤버가 출연하는 것이 일종의 미덕이었다. 시즌제가 활발한 현재는 그렇지 않다.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 “나 PD가 대중에게 익숙한 것의 편안함을 안겨주는 사람이라면, 김 PD는 혁명가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무한도전’은 매주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놀면 뭐하니?’는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같이펀딩’도 어떤 아이템이 소개되느냐에 따라 충분히 새로울 수 있다.”
양승준ㆍ김표향ㆍ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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