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가는 짐을 꾸리다 지인의 안부 전화를 받았다. 몇 주에 걸친 여름휴가 여행 동안, 그는 단 3장의 비닐 쓰레기를 발생시켰다고 했다. 나도 ‘노 임팩트(No Impactㆍ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물론 지구에 폐 끼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방콕’이지만, 집은 너무 더웠고 1년 동안 애쓴 식구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다. 과도한 관광 산업으로 몸살을 앓는 제주를 우리 가족이 더 아프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플라스틱 쓰레기 제로, 그리고 채식. 평소에도 채식을 하고 쓰레기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여행 중에는 동반자들의 동참도 필요하고, 방심하는 사이 쓰레기가 발생할 수 있기에 더 신경 써야 했다. 지구인의 3종 필수품, 텀블러와 장바구니, 손수건을 챙겼다.
도착 후 마트에서 과일을 사고, 숙소에서 밥솥을 빌렸다. 제주에서 매일 발생하는 돼지 분뇨만 2,800여톤. 아침 식사는 과일을 배불리 먹는 것으로 충분했고, 점심과 저녁은 채식 식당이나 채식이 제공되는 식당에 갔다. 식당을 찾는 일이 다소 번거롭기도 했으나 가까운 채식 식당을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유용했고, 네티즌들의 후기도 많아 어렵지 않게 식당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침마다 텀블러에 물을 채워 나갔다. 텀블러는 보온ㆍ보냉 효과가 커서 종일 시원함이나 따뜻함이 유지됐고, 페트병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일등 공신이었다.
남방큰돌고래를 육지에서 가깝게 볼 수 있는 대정읍에 숙소를 잡았다. 우리는 돌고래를 거의 매일 만날 수 있었다. 적게는 5-6마리, 많게는 30여마리 무리가 파도를 타며 헤엄치는 광경을 바위에 앉아 경외심 가득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동행한 후배가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니, 등지느러미에 2번 숫자가 새겨진 돌고래가 있었다. ‘제돌이’와 함께 자유를 찾은 ‘춘삼이’였다. 제주 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수족관에서 쇼를 하다 고향으로 돌아간 제돌, 춘삼, 삼팔, 복순, 태산은 인간의 예상을 뛰어넘어 새끼까지 낳으며 완벽하게 야생에 적응해 살고 있다.
춘삼이를 만난 감동도 잠시, 해변에 온갖 쓰레기가 나뒹구는 광경을 보았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페트병, 칫솔, 어업용 밧줄과 스티로폼. 놀랍게도, 쓰레기에 조개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조개들에 의해 스티로폼과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분해되어 바다 생명들과 인간의 배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저 플라스틱 컵을 삼켜 제돌이가 죽을지도 몰라’ 이런 생각에 이르자, 해변을 그냥 떠날 수 없었다. 둘러보니 마침 포대자루가 있었다. 자루 가득 쓰레기를 담아 들고 나왔다. ‘나 홀로 해변 청소’로 치운 쓰레기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대정읍사무소에 전화를 했다. 위치를 알려주고, 쓰레기를 치워 달라 부탁했다.
얼마 전 ‘쓰동시(쓰레기와 동물과 시)’ 행사에 다녀왔다. 쓰레기 최대의 피해자, 동물들을 주제로 시를 쓰는 자리였다. 세월호에서 딸 예은이를 잃은 유경근씨는, 빨대에 콧구멍이 막혀 죽어간 거북을 떠올리며 이런 시를 썼다. “빨대에 박힌 그 코는 내 딸의 코였어. 빨대가 막아버린 그 숨은 내 딸의 숨이었어. 한순간 멋과 편리를 위해 잠깐 쓰고 버린 것들이 내 딸의 숨을 막고 내 딸의 삶을 후벼 판 거지. 내가 그런 거지. 내가 쓰레기인 거지. 거북아, 미안해. 딸들아, 미안해.”
오늘 참석한 회의에는 마치 ‘예의’인 듯 플라스틱 물병이 놓여 있었고, 동물을 보호하자고 열린 행사에서는 플라스틱 기념품이 배포됐다. 개인의 실천을 넘어 거대한 습관이 되어버린 플라스틱 세계에, 나는 오늘도 저항한다.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다. 우리의 생명이 일회용품처럼 버려지지 않기 위한 삶의 방식을 위하여.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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