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젊은 정치] 릴레이 인터뷰<27> 김종현 ‘퇴근길 책 한잔’ 대표 (구의원출마프로젝트 제안자)
※ ‘스타트업! 젊은 정치’는 한국일보 창간 65년을 맞아 청년과 정치 신인의 진입을 가로막는 여의도 풍토를 집중조명하고, 젊은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하는 기득권 정치인 중심의 국회를 바로 보기 위한 기획 시리즈입니다. 전체 시리즈는 한국일보 홈페이지(www.hankookilbo.com)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작지만 아주 특별한 사건이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무소속으로 구의원에 출마하려는 모임이 떴던 것은. 회사원, 취준생, 자영업자, 아기 엄마 등 누구든 환영한다는 취지 아래 예비 후보들이 결집했다. 매주 모여 선거법, 선거전략을 공부했다. 총 4명이 선거에서 완주했고, 모두 빛나는 낙선을 받아들었다.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의 이야기다. 이 기막힌 계획을 처음 제안한 독립서점 ‘퇴근길 책 한잔’의 주인장, 김종현 대표를 만나 프로젝트의 막전막후를 들어봤다.
◇ 다음은 일문일답.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제안하신 계기는?
"우선 전제는 제가 이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를 대표한다거나, 제가 말씀 드리는 게 전체의 생각인 것은 아니에요. 다만 구의원 출마 프로젝트의 모티브를 처음에 가지고 있던 건 맞아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분들은 각자 구상과 생각을 다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에요.
처음 착안한 이유는, 당시 시점이 2016년 겨울에 한창 최순실 게이트 이후에 촛불정국으로 이어지던 때였어요. 2017년에 정권이 교체가 됐죠. 그 때쯤 약간 갈급함, 의아함 같은 것이 있었어요. 저도 그런 경험을 처음 해봤거든요. 광장에 나가서 투표가 아닌 어떤 액션으로, 우리의 뜻이 모여지는 걸 체감한 게 처음이거든요. 탄핵이야 전 국민이 처음 겪은 일이었고. 그 다음에 책방에서 2030 청년들과 이런 저런 토론을 많이 했는데, 광장에서는 너무 감격하고 좋았는데 결론이 결국 이렇게 나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 찍어? 짝수 찍어? 홀수 찍어?'
그 중간 연결 고리가 뭔가 새는 느낌? 아주 강성의 레디컬한 페미니스트도 있고, 온건한 분도 있고, 이념을 떠나서 자기 논리와 정치관을 가진 분들이 많은데. 그 결과가 그냥 '몇 번 찍어야 해?'로 나는 것이 의아했어요. 또 그 과정에서 마치 몇 번을 찍으면 악이고, 몇 번을 찍으면 선인 것처럼 논의가 흐르기도 했고. 그리고 그 선을 주장하는 분이 이야기하는 기호 역시도, 그의 일상과는 직접적인 링크가 안 되는 느낌이 드는 거죠.
우리는 광장에서 그렇게 우리의 뜻을 이야기했다고 느꼈는데, 그렇게 해서 함께 차린 밥상에는 너무 구멍이 많이 나있다고 할까요. 1년 정도 고민을 했죠. 왜 이렇게 밖에 안될까. 그런 과정에서 총선을 생각하게 된 거에요. 총선도 우리가 그렇게 치러야 하나? 이런 고민이 시작이었어요. 그럼 그러지 말고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자. 이를테면, 나는 여성인데 우리 나라의 여성 정책을 고민하는 것도 좋지만, 그 이전에 우리 동네에서 여성 몫의 목소리를 내보자. 아니면 나는 아이를 키우는 데, 나는 취준생인데, 나는 청년인데, 우리 동네에서부터 우리 의견을 반영해 보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냥 출마를 한 번 해보자.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부터 혼자 이런저런 스터디를 해봤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의회 중 가장 낮은 단위, 구의회에 누구나 쉽게 출마는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고, 굉장히 진입장벽이 낮다고 저는 느꼈어요.
그때는 우선 사람들에게 이걸 좀 많이 알리자고 생각했죠. '우리가 뽑는 선거 안에 대통령, 국회의원, 시장만 있는 것은 아니고 구의원도 있다. 다만 우리가 너무 줄 세우기 식으로 뽑거나 그냥 아는 얼굴 뽑거나 해서, 고인물을 만들어왔다' 여기서부터 문제의식이 출발한 거였어요. 참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왜 투표로만 뜻을 표현하는 것에 그쳐야만 했나. 딱히 청년이나 제가 속한 계층만을 생각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꼭 청년 출마 프로젝트도 아니었어요. 동네 오래 사신 분, 아이 키우는 부모 등 누구라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거였죠. "
첫 모임 당시 분위기는 어땠나요.
"처음엔 다들 신기해 했었죠. 처음 오신 분들도 출마가 목적이 아니고, '뭐 하는 거야?' 하는 분위기랄까. (웃음) 그들도 그런데 좀 충격을 받은 것 같더라고요. 일단 구의회가 있다는 것 조차 새삼스러워 하는 분들도 많았고, 제가 '구의회를 아냐' 부터 물어봤거든요? 우리는 평소에 신호등이 고장나도 대통령을 욕하고, 우리 동네에 고가도로가 불편하게 지어져도 또 대통령을 욕하고 시장을 욕하잖아요. 구의회의 존재 자체를 신기하게들 생각했어요. 그걸 몇개월 동안 매주 모여서 스터디 식으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뜻이 없다가 출마를 하겠다고 생각하신 분도 있었고. 오히려 출마에 관심이 있어서 왔다가 내용을 알게 되면서 '나는 출마는 안하고 대신 스텝을 하겠다'고 생각한 분도 있고요. 시작 자체는 다들 흥미로워하긴 했어요. 내가 정말 얼굴 사진 찍고 선거 벽보에도 나갈 수 있다는 건가? 그러면서 아이디어들이 샘솟는 시기였죠."
어떤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이 많았을까요?
"일단 정책을 잘 모르는 정치 초보들이다 보니까, 별의별 의견이 다 나오기도 했죠. 선거운동 방식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았죠. 띠 두르고, 색깔 옷 입고, 장갑 끼고, 춤추고 그런 거 하지 말자거나. 우리는 정말 내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분들을 만나보자. 운동 예산이 한정돼 있다면 최소한의 선거비용을 쓰면서 어떻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았고. 공연식으로 선거운동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들도 있었고요."
스스로는 출마를 안 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총 네 분이 최종 출마를 했고, 저는 본선 입후보는 안 했어요. 처음 제안을 했을 때 마음은, 제가 낙선을 프로젝트가 사회에서 일종의 반향을 일으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당선이 안되더라도 유권자들에게 가 닿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캠페인으로서의 목적이 강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런 반향에 도움이 될 성격의 것이 아니라면 입후보를 안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진입장벽은 낮아'보여도 실제 과정 과정을 마주할 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은 순간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완전히 달랐죠. 어떻게 보면 제가 오판을 했다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었죠. 입후보까지는 가능한데. (웃음) 물론 우리가 보통은 '출마한 사람은 정말 남다른 사람일거야' '대단한 사람일거야'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문을 열려 있더라는 거죠. 형식적인 문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그럼 왜 사람들이 안 했을까. 그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거죠. 당선의 가능성이 워낙 낮고, 입후보 한다고 해도 자기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고. 어떻게 보면 하지 않을 바보 같은 짓 인거죠."
'당선이 참 어렵구나'를 느낀 시점이 있다면요.
"저는 의외로 아직도 가능하다고는 생각해요. 축구팀으로 치면 어떤 선수가 뛰어나야 하는 것도 있지만, 감독과 구단이 뒷받침 돼야 하고 무엇보다 그 팀을 사랑하는 팬들의 존재가 중요한 거잖아요. 당선도 결국에는 뛰어난 선수에 많은 팬들에게 사랑 받는다면 다른 것은 어려울 게 없는 건데, 역설적으로 그 팬들이 존재하도록 만드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 문제죠. 양당 체제, 선거 제도의 문제, 선거법의 문제 등도 있을 테고요. 일단 사람들이 투표를 하면서도 구의회가 있는지도, 구의원에 본인이 투표하는지도 몰라요. 정작 연봉 4,000만원씩 받는 수십 명의 의원들을 우리가 그렇게 뽑고 있다는 것을 다들 많이 생각해보지 않는 거죠."
'당에서 검증을 했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그렇다고 생각하기에는 선거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선거 제도만큼이나 중앙 집권적인 것 같아요. 나는 대통령을 바꿨으니까 구의회는 몰라. 나는 시장을 바꿨으니까 나머지는 몰라. 하는 식이랄까요. 저는 그런 인식이 사실 굉장히 많다고 느껴요. 이런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조금은 바뀔 수 있는데, 그러기에는 조금 멀었던 것이고. 의외로 가장 힘들다고 느꼈던 부분이에요."
다른 프로젝트 참가자들의 선거운동을 지켜보는 일은 어떠셨나요?
"선거운동의 제약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공연을 하고 싶다거나, 새로운 방식의 현수막이나 어깨띠를 시도하고 싶어도 규정에 어긋나서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왜 결국 다 띠를 두르고 인사를 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죠. 다른 후보들이 못했던 것도 이유가 있구나. 최대한 기존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안전하다 싶었죠."
다시 프로젝트를 띠울 계획은 없으신가요?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해서 유권자들을 향한 캠페인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국회의 대표성 문제를 많이 지적하는데, 구의회는 어떻던가요?
"구의회는 겸직이 가능하잖아요. 제가 받은 인상은 지역 유지 중심이에요. 동네에서 의원을 오래한 분, 고깃집을 오래한 분, 남편 분이 아파트를 그 지역에서 50채인가 가지고 계신 분 등. 어찌 보면 국회보다도 더 고여있다고 생각해요. 국회의원들은 오히려 더 조심을 많이 한다고 봐요. 주목을 받으니 그런데 군의원, 구의원만 가도 공천만 받으면 따놓은 당상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상황에서 과연 유권자를 위한 활동을 할까. 저는 공천권자에게 훨씬 더 잘 보이려고 애쓸 거라고 생각해요. 구조상 공천을 받으면 그만인데. 과연 유권자의 영향을 많이 받을까. 개개인의 유권자를 탓할 수는 없는데, 그렇다면 알리고 환기시킬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거고. 그게 제가 프로젝트를 통해 기대한 가장 큰 효과였어요. 낙선을 하더라도 큰 울림을 줄 거다."
그런 유의미한 낙선으로 눈 여겨 본 분이 있었나요?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 신지예 후보가 1% 넘는 득표를 했잖아요. 제가 특정 후보나 정당의 정치지향을 지지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낙선했지만 의미가 컸다고 봤어요. 그렇게 1% 넘게 득표를 하면,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그 1%를 무시할 수 없는 거거든요. 다음 선거에서도 그렇고. 마찬가지로 나약 어떤 구의원 선거에, 아이를 안고 어떤 어머니가 출마를 해서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동네 유아원만큼은 이렇게 바꾸겠다'고 주장을 했다면, 또 어떤 맥도널드 아르바이트생이 출마를 했는데 '알바하는 사람들, 비정규직들을 위해 이렇게 바꾸겠다'고 주장을 하고 유의미한 득표를 하면, 낙선을 하더라도, 당선된 이들이 그 정책들을 과연 싹 무시할 수 있을까. 아예 안 나오는 것보다 무시할 수 없는 거죠. 재미있는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선거 때 그런 지향들이 다양하게 터져나오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
세간의 편견을 경험할 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것도 있지만, 실은 제가 '청년정치'를 하고자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아닌데, 공교롭게 젊은 분들이 모여있다는 이유로 '청년정치'의 틀에서 많이 조명이 되기도 했죠. 도움을 주고자 오신 분들 조차도 잘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젊은 사람은 더 90도로 인사를 하고, 더 패기 있게 더 새벽부터 해야 해'라고 조언을 하시는 것을 보면서 참 의아했어요. 마음은 고맙지만. 마치 그것은 제가 어디에 일을 하러 갔는데, 그래서 '이 중에서 일 제일 잘하는 사람 누구야?'라고 제가 물었는데, 저에게 '자 신입사원 분위기 띄워, 자 노래 한 곡 불러봐'라는 말이 돌아온 것 같은 상황인 거죠. 그걸 많이 느꼈어요. 차라리 그런 말씀을 하신 분이 아예 반대진영이거나 꼰대 같은 분들이라면 모르겠어요. 소위 열려 있다는 분들 조차도 모든 젊은 후보들을 '청년 정치'라는 틀 안에 담아 놓고 보고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마치 본 메뉴가 아니고 사이드 메뉴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구나. 각 정당의 청년 대표가 당의 중앙에 있나요? 깨어있고, 정치가 바뀌길 바라는 사람 조차도 청년이라는 단어 안에 틀을 지우고 있다는 게 부담이고 압박이었어요."
현실적인 조언인 동시에 압박이었네요.
"제가 그냥 출마한다는 말을 안하고 이렇게 이야기했으면 다 동의 했을거에요. '그래 맨날 띠 두르고 인사하지 말고 정책토론 하는 게 나아.' 근데 제가 정말 출마를 하고 싶다고 하는 순간, 다들 진심으로 조언을 시작하는 거에요. '그런데, 명함은 만드셔야 하고요, 머리는 그렇게 노란색이면 안되고요.' 그 모순이 너무 의아했어요. 사실 유권자들은 의외로 지겨울 수도 있어요. 사실 저도 현수막이나 명함 보고 누군가를 찍은 경험이 한번도 없어요. 하지만 의외로 이런 제 생각에 동의하는 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생각보다 어르신들 표가 많기에 나온 조언 아니었을까요.
"그랬을 수 있죠. 하지만 우리가 그런 말을 자주 하잖아요.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다. 탈권위를 보고 싶다. 새로운 사람을 보고 싶다. 오바마처럼 친근한 정치인을 보고 싶다. 그런데 막상 누군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할 때 이들을 기존 틀에 가두는 인식이 상당하다는 거죠. 젊은 사람이 일단 나오면 '어? 이것 봐라, 나한테 인사 90도로 안 하네'. '어? 얘 좀 봐라? 머리가 노랗네?' 하는 거죠. 이런 인식을 누군가는 계속 타파하는 방식으로 가야 하지 않나. 전체 텃밭이 왜곡되고 병들었다면 누군가는 하나씩 타파하는 방식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모두가 '야 지금, 일단은 병들었잖아. 일단, 여기는 약 치고 들어가야 해, 우선은 그렇게라도 들어가서 뿌리를 박고 그 다음에 바꿔' 하고 있다는 거죠. 결국 정치판 들어가면 다 똑같아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말리지만 해보고 싶었던 운동이 어떤 게 있었을까요?
"혹시 직접 밖에서 구의원 연설 들어본 적 있으세요? 정책을 직접 종이로 본 적 있으세요? 저는 다 온라인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방구석 유세를 하겠다고 했었어요. 어차피 다 핸드폰으로 보지 않나요. (웃음) 방구석 선거유세라고 해서. A4용지 뒤에다 붙이고. 현재 선거운동법에 온라인은 제약이 적거든요. 문자발송만 해도 제약이 큰데. 그런데 정치는 바뀌어야 한다고 하는 분들일 수록, 이런 게 가능하다는 믿음이 없으시더라고요."
가장 어려웠던 제약이 그런 점이었겠네요.
"의외로 정치의 새로움에 대한 기대심리, 희망을 가진 사람들 조차도 관습적인 태도가 진짜 새 정치를 가로막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프랑스의 마크롱, 어디의 누구처럼 새로운 정치인이 나와야 해'라고 말하는 분들 조차도, 실제 우리나라에서 그런 후보가 출마하면 찍을 마음이 없어요. '40대가 뭘 안다고' 하는 유권자들의 인식이 견고하고, 그 벽이 단단해요. 어떻게 보면 '오빠가 인정한 페미니즘'처럼 '내가 인정한 청년정치'여야 하는 거에요. 뭔가 기존의 문법, 기존의 질서에 부합하고, 아무리 똑똑해도 중심이 아닌 곁다리에 서서 분위기를 띄워야 하고. 그러면서 말로는 우리 나라 정치가 젊어지기를 바란다고 하고. 저는 의외로 그것을 프로젝트 하면서 체감했어요. 저 역시도 반성하기도 하고요. 나 역시도 그런 식으로 투표한 적은 없었나? 생각해보고요. '젊은 사람은 경험이 없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장기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다시 어떤 캠페인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무엇보다 건강한 텃밭 가꾸기를 하고 싶어요. 가능하다는 유권자들의 믿음이 필요하다고 봐요. 말로만 마크롱을 원한다고 하는 분들의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봐요. 변호사가 아니어도, 여성이어도, 50대가 아니어도, 피부색이 달라도 대표자가 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는 것부터가 필요한 거죠. 유권자 인식이 공고한데, 이 와중에 누군가가 혼자 연꽃처럼 독야청청 피어나기는 어렵죠. 한편으로는 캠페인이 잘 일어나고 차근히 확산돼 나간다면 오래 걸리더라도 충분히 가능한 변화일거라고도 생각하고요."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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