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서 제재완화 성과 못 얻자 체제보장 카드 활용 ‘성동격서’
“북한이 하노이 이후 안전 보장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북한이 제재 해제보다는 체제 보장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최근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미국에 대한 북한의 요구가 체제 보장에 집중되고 있다. 구체적인 체제 보장 방안으론 한미 연합훈련 축소ㆍ중단이나 미국 전략무기 반입 중단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제재 완화를 얻어내기 위한 북한의 협상 기술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많다.
사실 북한의 체제 보장 요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지난해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전후에도 북한의 요구는 종전선언 등 체제 보장에 집중됐다. 하지만 진척이 없자 북한은 그 해 10월 “종전 선언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이후 비핵화 상응조치(보상조치)로 제재 완화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 또한 올해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체제 보장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치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제재 완화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제 보장이란 협상 수단을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김형석 전 통일부 장관(대진대 교수)는 23일 본보 통화에서 “북한 입장에서 하노이 회담은 자신들이 제재 완화에 구걸하는듯한 모습이 됐다”며 “이젠 테이블에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 두 개 다 올려놓고 ‘원하는 체제 보장 못 해주면 제재라도 풀어주라’는 식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은 트럼프가 ‘돈 낭비’로 여기는 한미 연합훈련 축소와 전략무기 반입금지 등을 받아내고, 추가로 제재도 일부 완화해줄 수 있느냐고 타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들어 미국 또한 과거보다 제재 완화에 보다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강경화 장관은 22일(현지시간)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 대해 “북한이 얘기하는 안전보장 문제나 제재 해제 문제 등 모든 것에 열린 자세로 임한다는 것이 미국 측의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앞서 7월 백악관의 정통한 소식통 또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전면 폐기하고 모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면 12~18개월간 석탄과 섬유 수출 제재를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스냅백’(snapback·제재 원상복구) 조항을 넣어 유예기간 동안 북한이 비핵화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제재를 되돌리겠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체제 보장 논리는 단순 제재 완화를 끌어내기 위한 차원을 넘어, 북한이 생각하는 비핵화 정의 및 속도조절 명분, 주한미군 등의 군사적 위협을 철회하는 역할 등 다목적 포석이 담겨 있다”며 “체제 보장 요구에 대한 정교한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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