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그린란드 북동쪽에 있는 엘라섬에 다녀왔다. 북극 생태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현장 탐사였다. 흰뺨기러기, 아비 등 총 15종의 조류가 확인됐고, 이와 함께 사향소, 북극토끼, 북극곰 등 포유류의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사향소는 부모와 새끼가 함께 무리를 이뤘으며 최대 16마리가 동시에 관찰되기도 했다. 약 2주일 동안 섬 곳곳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뼛조각과 털 시료를 주워 담았다.
사향소의 조상은 아메리카 대륙의 중위도 내륙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약 3만년 전, 기온이 낮아지면서 거대한 빙상이 아메리카와 유라시아 대륙 북부를 덮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평균 온도가 불과 6도 가량 낮았을 뿐이지만, 이로 인해 대륙의 4분의 1이 얼음으로 가득 찼고 해수면은 지금보다 125미터나 낮았다.
미국 애니메이션 ‘아이스 에이지’는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한 매머드와 검치호랑이는 멸종해서 이제 볼 수 없지만, 이들과 함께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이동을 했던 사향소는 고위도 북극 해안가에서 살아 남았다. 덴마크 헬레(Helle) 박사 연구팀의 2018년 발표 논문에 따르면, 사향소는 약 2만1,000년 전 ‘마지막 최대 빙하기(Last Glacial Maximum, LGM)’라 불리는 시기를 거치며 피난처를 찾아 캐나다 북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약 2,000년 전엔 캐나다를 넘어 그린란드로 옮겨간 것이 밝혀졌다. 현재 야생 사향소 개체군은 캐나다 북동부 도서 지역과 그린란드 북쪽과 동쪽 해안을 따라 일부 지역에 남아 있다.
최근 사향소에겐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ational Snow and Ice Data Center, NSDC)에 따르면 올 여름 북극 해빙 면적은 위성 관측이 시작된 1979년 이래 역대 두 번째로 좁았다. 지난 9월 18일 기록된 면적인 415만㎢였으며, 1981년부터 2010년까지 평균 수치가 720만㎢인 것을 감안하면 예년의 절반 수준에 그친 것이다. 세계기상기구에 따르면 관측 이래 최근 5년(2015~2019)이 가장 더웠으며, 이산화탄소 농도 또한 가장 높은 값을 기록 중이다.
기후학자들은 앞으로 온난화가 더욱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말하는데, 그린란드는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지역으로 꼽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린란드 매입을 거론하며 조만간 얼음 밖으로 드러날 지하 자원에 주목하고 있지만, 필자는 사향소가 겪게 될 미래가 걱정된다. 힘든 빙하기도 버텨낸 만큼 온난화도 이겨낼 수 있을까.
엘라섬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10명 남짓 탑승이 가능한 작은 경비행기 창 밖으로 빙하와 바다가 보였다. 그린란드의 내륙 빙하가 녹으면서 바다로 흘러 들어 마치 흙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코발트 바다에서 퍼져나갔다. 불과 10년 전 지도엔 하얀 얼음으로 표시돼 있던 곳이 지금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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