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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성 칼럼] 참모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입력
2019.10.06 18:00
수정
2019.10.06 19: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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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수사 후 도의적 책임 져야

문 대통령, 더 개혁적 인물 임명

참모가 대통령을 위해 희생해야

지난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왼쪽)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기 앞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법무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 장관 임명으로 두 동강 난 현재의 난국을 헤쳐가려면 검찰 수사가 일단락된 뒤 조 장관이 물러나는게 순리다. 그리고 검찰 개혁에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면 윤 총장 역시 거취를 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위한 참모는 있어도, 참모를 위한 대통령은 없는 법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지난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왼쪽)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기 앞서 당시 민정수석이던 조국 법무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조 장관 임명으로 두 동강 난 현재의 난국을 헤쳐가려면 검찰 수사가 일단락된 뒤 조 장관이 물러나는게 순리다. 그리고 검찰 개혁에 어느 정도 진척을 이루면 윤 총장 역시 거취를 정해야 한다. 대통령을 위한 참모는 있어도, 참모를 위한 대통령은 없는 법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몇 년 전 한국일보 기자들이 재건 운동을 할 때 문재인 민주당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한국일보는 법정관리와 인수합병(M&A)을 통해 새 대주주를 맞아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당시는 구 사주의 비리 등으로 파산을 걱정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사회 각계 인사들이 기자들의 투쟁을 격려했고, 문 의원도 그중 한 분이었다.

그는 진지한 목소리로 “고생이 참 많지요. 희망을 잃지 말고 잘해 내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편집국장으로서 고마움을 표하고 “도와주십시오”라고 의례적인 부탁을 했다. 정치인이라면 당연히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답했을 텐데, 그는 놀랍게도 “제가 무슨 힘이 있나요”라고 말했다. 5개월 전(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19대 국회(2012년 4월 총선)의 초선 의원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였다. 잠시 머쓱한 침묵이 흐른 후 인사가 오가고 대화는 끝났다. 묘한 느낌이었다. 참 솔직하고 순수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과연 정치에 어울릴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 후 4년여가 지난 2017년 대선 직전, 문 후보의 핵심 참모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에게 이 일화를 얘기한 적이 있다. 보통 사람도 절망적이지만 웃어야 할 때가 있고, 미운 사람도 안아야 할 때가 있는데 나라를 이끌 지도자가 이러면 곤란하지 않느냐고 했다. 양 원장은 “그 부분을 많이 보완했다. 그래도 순수함이 바탕에 있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오래 전 일을 다시 꺼낸 이유는 문 대통령의 성품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사태가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통령을 위해 참모가 희생되는 일은 다반사지만, 지금은 조국이라는 참모를 위해 대통령이 엄청난 부담을 감수하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유추해 보면, 문 대통령의 인식은 두 가지 정도로 정리될 것 같다. 하나는 조 장관이 직접 법을 위반한 게 없지 않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비난도 정파적이며 공평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가혹한 언론 보도, 검찰의 전방위적 수사에서 살아남을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있겠냐는 것이다. 심지어 “윤석열 검찰총장도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며 구체적 의혹들을 적시하는 여권 인사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보통 사람의 몫이지 통치권자의 판단 근거가 돼서는 안된다고 본다. 조 장관의 위법은 드러난 바 없고 실제 없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과거에 비난하고 조롱했던 보수 인사들의 편법적 행각들을 버젓이 했다는 도덕적 하자까지 면탈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정권에서 하려다가 좌초한 검찰 개혁을 이루려면, 이를 추진할 수장이 명분과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조국 사퇴를 주장하는 야권 지도부, 가혹한 수사를 벌이는 검찰 수뇌부보다 더 깨끗하다는 첩보나 비교우위론에 빠져 있는 한 이 난국은 풀 수가 없다.

결국 해법은 조 장관에 달려 있다.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면 조 장관이 자진해서 물러났으면 한다. 설령 뚜렷한 위법사실이 없다 해도 도의적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할 듯싶다. 이어 문 대통령은 사법 개혁의 의지가 더 강한 인물을 임명하면 된다.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검찰 개혁법안이 처리된 이후 거취를 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동안 국민들은 두 동강 나고 국정은 마비될 것이며, 그 혼란은 내년 4월 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다.

윤석열 총장에 대해선 퇴진 압박을 가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자칫 보복으로 비치면 그 어떤 결단도 빛이 바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국회 청문회 전 압수수색으로 정치 개입을 한 데다 과잉 수사의 비난을 받고 있어 역설적으로 공정한 수사와 검찰 개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검찰 개혁이 일단락되면 윤 총장 스스로 거취를 정하면 된다.

거듭 말하지만 참모를 위한 대통령은 없다. 밀릴 때는 밀려야 한다. 그런 모습이 민심을 돌아오게 하고, 정권이 원하는 개혁을 가능하게 한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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