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먹거리 부족한 축구장
※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기업 및 지자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자생력을 찾아야 할 때란 평가입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목요일 연중기획 ‘붐 업! K리그’에서 K리그 흥행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합니다. 한국일보>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수원삼성 팬 10년차 이보람(27ㆍ경기 평택시)씨는 홈 경기 때마다 ‘먹는 재미’를 충분히 누리지 못해왔다. 경기장 내부 식음료 판매 부스 상당수가 문을 닫았고, 요즘 먹거리라곤 매점에서 파는 컵라면이나 핫바, 쥐포, 과자, 치킨 정도가 전부다. 서울과 ‘슈퍼매치’가 열린 6일 수원월드컵 경기장에서 만난 이씨는 “맥주와 소주를 섞어주는 ‘소맥’까지 팔았던 과거에 비해 경기장의 먹거리가 줄어든 이유를 모르겠다”며 아쉬워했다.
축구장에서의 먹는 재미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구단들이야 다양한 먹거리를 팔아 수익은 물론 팬들의 만족도도 높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지만, 매점 등 식음료(F&Bㆍfood and beverage) 사업권이 대부분 구단이 아닌 지방자치단체 소속 시설관리공단이나 별도의 재단에 귀속돼 외부 업체가 운영하고 있어 경기장 먹거리 콘텐츠 발굴ㆍ확대는 언감생심이라고 한다.
K리그 붐을 타고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지만 정작 팬들은 경기장의 먹거리 부족을 크게 아쉬워했다. 본보가 지난달 4일부터 26일까지 전국 6개 K리그 구장(춘천ㆍ제주ㆍ서울ㆍ전주ㆍ대구ㆍ광주)에서 317명의 여성 축구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경기장 내 먹거리’ 만족도는 5.9점(10점 만점)을 받아 팬 서비스(7.3점) SNS채널운영(7.5점) 머천다이징(6.3점) 등 4가지 항목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 이번 시즌 본보가 둘러본 K리그 구장 안팎의 먹거리 콘텐츠는 웬만한 학교 매점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K리그1 선두를 달리고 있는 울산은 한시적으로 울산종합운동장을 홈 구장으로 쓴다지만, 햄버거와 컵라면, 계란, 핫바 등 먹거리 종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울산은 직접 매점운영권을 따내 당시 핵심선수들 이름을 딴 ‘시누크버거(김신욱 햄버거)’ ‘승규치맥(김승규 치킨ㆍ맥주세트)’ 등을 출시해 상당한 인기몰이를 했지만,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경기장 매점운영을 접었다고 한다. 팬들의 큰 즐거움 하나가 사라진 것이다.
거의 모든 구단들이 같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구단들은 “수익은커녕 본전을 건지기도 어렵다”며 F&B사업에 대한 투자를 꺼리고 있다. 구단 매점운영권을 구단이 똑같이 입찰에 참여해 따내자니 영업일수가 적은 점이 걸린다. 1주일에 한 두 차례, 그마저도 2시간 남짓의 경기가 전ㆍ후반으로 나뉘어 열리는 종목 특성상 음식을 팔아 수익을 남기기 어렵단 판단에서다. 한 수도권 구단 고위 관계자는 “쉽게 설명하자면 1억원을 벌면 9,000만원을 공단에 낸다고 보면 된다”며 “1,000만원을 남기자고 직원을 투입해 매점운영에 뛰어드는 건 기회비용 면에서 오히려 상당한 손해”라고 했다. 일주일 평균 3일 홈 경기가 열리는 데다 9회 동안 공수가 꾸준히 바뀌어 쉬는 시간도 많은 프로야구와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게 축구관계자들 설명이다.
2010년 개정된 스포츠산업진흥법 17조 2항에 따르면 지자체나 공공기관은 프로스포츠 육성을 위해 공유재산을 25년 이내에서 사용ㆍ수익을 허가하거나 관리를 위탁할 수 있도록 돼있다. 하지만 구단이 구장을 운영하는 공단 또는 재단들을 상대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해 쉽지 않다. 구단들은 “사실상 법률보다 조례가 상위법으로 여겨진다”며 고개를 젓는다. 조례 개정 등 변화를 기피하는 공단, 재단 직원들이 구단의 요구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K리그1 구단 중 구장 내 시설 운영을 위탁 받아 운영하는 곳은 인천과 대구 두 곳뿐인데, 이는 지자체의 적극적인 협조가 이뤄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구장 내 F&B 사업 활성화 필요성을 부정하는 구단들은 거의 없다. 한 지방구단 고위 관계자는 “K리그 인기도 늘어나고 팬층도 다양해지는 이 시기에 먹거리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수익이 거의 없더라도 팬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구단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기업구단 관계자도 “(F&B)사업은 어떻게든 키워야 할 콘텐츠”라며 “다만 현재 구조상 지자체 협조 없인 활성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도 지자체의 협조 속에 구장 먹거리도 늘리고 사회적 의미도 찾은 구단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성남은 경기 날이면 ‘치떡치떡(치즈맛 쌀떡볶이)’, 남한산성막걸리 등 전통시장에서만 파는 명물들을 경기장으로 끌어들였다. 구단은 팬 만족도를 높여 더 많은 관중을 불러 모으고, 상인들은 수익과 함께 홍보를 할 수 있는 상부상조가 이뤄지고 있다.
푸드트럭으로 돌파구를 찾은 구단도 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 북측 광장에는 홈 경기 때마다 15대 이상의 푸드트럭이 팬들을 맞이한다. 음식 종류도 다양해 족발부터 피자, 츄러스 등 없는 게 없을 정도다. 서울시설관리공단과 계약을 맺은 협동조합 소속 푸드트럭들이 경기 날마다 찾는 방식이다. 팬은 물론 푸드트럭을 운영하는 청년 사업가들의 만족도도 높다. 핫도그를 파는 ‘옐로우트럭’의 윤성환(34)씨는 “예년과 달리 올해는 서울의 성적도 좋아 매출이 괜찮다”며 “홈 경기 때마다 온다“고 웃었다.
경기장 내 시설운영권을 갖고 있는 대구는 애초 F&B 사업을 염두에 두고 DGB대구은행파크를 설계했다. 1층 출입구 바로 옆 호프집에선 갓 튀긴 치킨을 판다. 맥주와 치킨을 손에 들고 입장하기 편한 구조다. 삼겹살 구이부터 프레즐 전문점, 심지어 푸드코트도 있다. 경기 전후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좋다. 무엇보다 구장 입지가 좋아 입점한 가게 모두 경기가 없는 평일에도 정상 영업을 한다. 개인사업자들이 큰 고민 없이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뉴욕핫도그’를 운영하는 박미정(47)씨는 “경기장 리모델링 덕분에 주변 상권이 살아났다”며 “경기장 주변 정비 사업이 끝난 뒤 공원까지 들어서면 유동 인구가 더 많아질 것”이라며 기대를 전했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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