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달빛 덮고 잠들어요. 오늘은 반만 덮어요. 반달이거든요. 달도 오늘은 반만 덮고 잠들어요. 보이지 않는 반은 잠들지 않는 나의 반이 덮어주고 있거든요. 오늘은 반달이라면, 나도 반만 잠드는 날, 달도 반만 잠드는 날, 그러니까 달과 나는 반반 이불을 덮고 지내는 사이. 나의 반은 달빛을 덮고 자고 나의 반은 반달을 덮어주고, 이런 모양이죠.
반만 잠든다는 것. 반만 덮어준다는 것. 복잡함을 지난 정확함이지요. 복잡함과 정확함의 공통점은 자세해진다는 것이지요. 둘의 차이는 핵심만 남겼느냐 아니냐에 있지요. 분명 회로가 들어 있는데, 엉킨 그 외의 것들이 많아, 회로를 찾을 수 없는 상태가 복잡함이지요. 엉킨 것들을 걷어내 회로가 잘 보이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정확함이지요. 복잡함을 지나야 정확함을 만날 수 있는데, 우리는 흔히 복잡함을 그만 멈추라는 신호로 받아들이지요. 그러면 내내 복잡함 속인데 말이죠. 이럴 때는 멈추는 대신, 수풀을 헤치듯, 정확하지 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대면해 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정확함이거든요.
가을은 까슬한 감촉의 계절이지요. 차곰차곰한 공기와 물기가 반, 바스락거림이 반인 그런 빛과 색을 보는 시간이지요. 새순, 뜨거운 태양, 열매를 지난 곳이어서 가을빛 속에 서면 기도의 자세가 되는 지도 모르겠어요. 복잡함을 지나 다다른 정확함, 복잡해? 스스로에게 물어 ‘응’이라는 대답을 하면 정확의 방향으로 걸어가야 할 때. 그래야 반만 잠들어도 생생한 잠이고 반만 덮어줘도 은은한 이불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요.
한 줄 한 줄 더해서 모두 네 줄, 한 행이 한 연인 시, 피아노 연주로 치면 여백이 아름다운 곡. 첫 번째 행에 -도, 두 번째 행에 -은, 세 번째 행에, -도-은, 네 번째 -도-만, 조사가 정확한 이 시를 읽고 나면, 반달이 뜨면 우선 반만 잘게요. 반은 반달 덮어주러 갈게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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