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민심과 거리 먼 기득권 정파로 행동
대통령 정파 지도자 수준 넘어서지 못해
국민 길거리서 싸우게 하면 정부는 죽는다
조국 장관후보자 지명 이후, 66일 동안 갈등은 내전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미 두 번이나 글을 썼으나, 답답했던 과정을 되짚어볼 의무를 느낀다.
위법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는 순간,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가 되어버렸다. 그 말에 따르면 청문회조차도 불법을 법적으로 증명할 순 없다. 그러면 청문회도 필요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인권에 관한 기본 조건이지만, 고위직 임명에 동일하게 적용되긴 어려운 셈이다. 대통령의 말이 정치적 상식을 저버리고 검찰의 정치화를 부추긴 꼴이다. 믿는 사람을 끝까지 챙긴다는 대통령의 태도는 사적인 차원에선 의미가 클 수 있지만, 공적인 차원에선 불행한 일이다. 내심 임명에 반대하던 지지자들도 결국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하느라 정파적으로 결집했다. 사회적 갈등의 와중에서 정치적 상식을 유지하며 정파적 갈등을 최소화해야 할 대통령은 오히려 거꾸로 국민들에게 갈등과 정파 싸움을 부추겼다.
검찰 개혁,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 ‘조국 지지’ ‘조국 수호’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수사과정의 지나침을 비판할 수도 있고 현재 검찰 개혁안보다 더 강한 개혁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조국 수호를 전제하면서 검찰 개혁을 요구하는 일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조국 가족을 수사하며 과도한 수사력이 집중된 것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해야 할 다른 수사를 안 하는 것을 비판하는 것과 조국 수사를 비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애초부터 조국 관련 의혹들은 법무부 직무와 연관성이 큰 공정성의 문제들이었다. 정부와 여당이 정치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했으면, ‘정치 검찰’의 문제가 이렇게 확대되진 않았을 것이다. 정치의 부재가 검찰을 정치적으로 만든 면이 크다.
조국 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키운 건 대통령이지만, 그 둘을 꼬이게 만든 건 ‘조국 수호’를 외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서초동에서 그냥 ‘검찰 개혁’이라고만 했어도, 또는 조국은 사퇴시키더라도 대통령은 지키자, 라고만 했어도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조국 수호’라니? 자칭 진보 작가들까지 나서서 여당 대변인의 지원을 받으며 ‘조국 지지’라니? 공정을 무시한 사람을 지지하는 일이 작가의 의무? 말이 안 된다. 공정성을 크게 훼손하고 진보의 가치도 추락시킨 사람을 왜 지지? 그런 그를 정치인으로 키우는 정파적 프로젝트 때문에 국민이 갈라져 싸워야 하는가? 무거운 합리적 의혹을 받으며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된 사람이, 그 사람만이, 검찰 개혁을 할 수 있다? 사람 답답하게 만드는, 어설픈 궤변이었다.
공정 대신에 조국을 지지하면서 ‘진보’라는 이름은 하찮아졌다. 노무현 이후 자칭 개혁ㆍ진보였던 그들은 민심과 동떨어진 기득권 정파로 허둥댔다. 그들은 언제나 보수에 밀리면 안 된다고 하지만, 상투적인 핑계가 됐다. 비판적 상식을 지키는 중도의 목소리는 왜 안 듣는가? 한국당과 싸우기만 하면 모든 게 끝인가? 한심한 보수와 싸운다며 그들은 닮아버렸다. 최소한 상대에게 요구하는 만큼의 엄격함과 부끄러움을 유지하라.
광장에서 시민들이 증오를 키우며 싸우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국론이 분열된 건 아니라고 했다. 여론이 나뉠 때마다 국론 분열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통령은 정치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일을 키웠고 정파 지도자로 행동했다. 결국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여권에서도 출구를 찾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많은 갈등을 야기한 점에 대해 송구하다고 밝혔다. 다행이다.
그러나 씁쓸한 찌꺼기가 남아 있다. 국가 지도자는 지지자의 목소리만 듣는 정파 지도자의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울음을 참고 자기 사람 목을 치면서라도, 정파의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광장에서 국민들이 싸울 때, 청와대는 얼마나 형편없이 무력했고 초라했는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을 괜히 싸우게 만들면, 광기만 살고 정부는 죽는다. 2년 반 만에 촛불정부라는 명예는 실추됐다. 청와대와 민주당이 교만에서 벗어나기를.
김진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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