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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칼럼] 이래도 연예인이 꿈이란 말인가

입력
2019.10.17 18:0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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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의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그것이 단지 연예계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즉 설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서 어른거리는 건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혐오와,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비난만 폭주하는 엇나간 댓글 문화이고,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에서 엿보이는 건 불공정한 사회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피눈물 흘리는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연합뉴스
연예계의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그것이 단지 연예계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즉 설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서 어른거리는 건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혐오와,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비난만 폭주하는 엇나간 댓글 문화이고,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에서 엿보이는 건 불공정한 사회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피눈물 흘리는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연합뉴스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직업 1순위가 연예인이라지만 과연 이건 현실을 알고 하는 이야기일까. 이제 겨우 스물다섯의 나이에 생을 스스로 마감해버린 가수이자 배우 설리의 안타까운 소식은 연예인에 대한 선망이나 꿈이 어쩌면 막연한 판타지에 불과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다. 제아무리 일찍이 성공해 부와 명성을 갖게 되었다 하더라도 스물다섯의 나이에 모든 걸 접을 만큼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끊임없는 악플에 시달려왔던 설리는 혐오가 일상화된 사회를 끝내 버텨내지 못했다.

연예인들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화려한 만큼 길게 늘어져 있는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이 된다는 건 유명세를 치르는 정도의 차원을 훌쩍 넘어선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있는 성장의 사다리가 끊겨버리고,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을 말하는 이들의 좌절과 분노는 인터넷 댓글창의 익명과 만나면서 손쉽게 혐오를 양산해낸다. 특히 대중들의 사랑을 전제로 살아가는 연예인들은 사적인 것들조차 다르다는 이유로 혐오 공격을 받는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이 된다는 건 이런 잠재적인 정신적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야 하는 일이다. 이래도 연예인이 선망할만한 꿈이란 말인가.

최근 벌어진 케이블 채널 엠넷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의 생방송 투표 조작 논란을 들여다보면 연예인이 꿈이라는 이야기는 더더욱 허탈하게 느껴진다. 이 사안에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이 우리네 사회에서는 또 하나의 상업적 판타지가 된 현실을 발견하게 된다. MBC ‘PD수첩’에 나온 한 오디션 참가자는 미리 경연곡을 알고 있었는데, 추궁해 물어보니 안무선생님이 알려줬다고 한다. 그건 마치 시험문제를 미리 빼돌린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또 참가자들은 심지어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질 걸 이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특정 기획사의 입김이 작용했고, 그래서 그 기획사 소속 연습생의 방송 분량이 대폭 늘어나는 걸 봤기 때문이다. 이른바 ‘국민프로듀서’의 직접 투표로 이뤄지는 오디션에서 방송 분량은 당락에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연예인 데뷔라는 것도 노력에 의한 공정한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에서 드러난 것이다. 이래도 막연한 선망에 연예인이 되겠다는 아이에게 노력하면 된다며 등 두드려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성공한 연예인들은 어떤가.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젊은 나이에 일찍 거둔 성공이 가져오는 부작용도 만만찮다. 올해 초부터 지금까지 그토록 세간의 질타를 받았던 버닝썬과 YG 사태를 떠올려 보라. 거기에는 폭력, 마약, 성접대, 도박, 탈세 같은 범죄의 종합 선물세트 같은 일들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특히 성공한 이들이 가진 도덕적 해이나 그런 문제들이 터져도 돈과 권력으로 해결하면 된다는 특권의식이 어른거린다. ‘오너 리스크’라는 말이 실감나는 YG 사태는 한때 3대 기획사라 불리며 K팝 한류를 이끌었던 회사가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건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기득권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들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 기득권자들이 얼마나 있었던가. 버닝썬과 YG사태를 보면 그래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도덕적 해이의 심각성을 발견하게 된다. 이래도 성공하기만 하면 다 괜찮다며 어린 나이에 일찍이 살벌한 생존현실로 뛰어드는 아이의 꿈을 지지해줄 수 있을까.

연예계의 사건사고들을 접할 때마다 그것이 단지 연예계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하게 된다. 즉 설리의 안타까운 사망 소식에서 어른거리는 건 우리 사회에 일상화된 혐오와, 비판적 기능을 상실하고 비난만 폭주하는 엇나간 댓글 문화이고, 오디션 프로그램 조작 논란에서 엿보이는 건 불공정한 사회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피눈물 흘리는 청춘들의 좌절과 분노이다. 또 버닝썬이나 YG사태를 통해 보이는 건 기득권층이 가진 도덕적 해이와 범법 행위조차 돈과 권력이 있다면 처벌받지 않는 사법 정의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아이들이 꿈꿀 수 있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연예인이 되겠다는 아이들의 꿈이 잘못된 게 아니다. 다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치러야 할 가혹한 대가를 요구하는 사회가 문제이고, 지독하게 경쟁적인 현실이나 그 경쟁조차 불공정하게 치러지는 부정한 시스템이 문제이며 성공만 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윤리 의식 부재가 문제다. 이런 현실에서는 연예인의 자리에 정치인이든, 성공한 사업가든,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를 세워놔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내 아이의 성공만이 그 아이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그 아이를 둘러싼 현실들이 마음 놓고 꿈꿀 수 있게 바뀌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정함이 보장되고, 정의가 구현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만이 꿈은 꿀만한 어떤 것이 될 수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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