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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우 칼럼] 기자와 취재원

입력
2019.10.29 18:0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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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 영향에서 독립하기 어려운 기자

맹목적 공격에 이용되는 미디어 환경

언론의 독자적 뉴스판단 가치 이해해야

주어진 정보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고 보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언론의 가치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의 생각이 갈라지고, 매체도 노골적으로 정파의 노선을 따르는 새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진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운데)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서 있는 모습. 박형기 인턴기자
주어진 정보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고 보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언론의 가치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의 생각이 갈라지고, 매체도 노골적으로 정파의 노선을 따르는 새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진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운데)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도착해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해 포토라인에 서 있는 모습. 박형기 인턴기자

1972년 미국에서 기자가 헌법상 일반인과 다른 특별한 지위를 갖는지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의 베테랑 기자 얼 콜드웰은 흑인 혁명조직 ‘블랙팬서 파티’의 본부를 방문해 지도부를 인터뷰했다.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이 블랙팬서를 ‘국내 최대의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소탕작전을 벌일 때였다. 위대한 악당에 의해 수사기관의 존재 가치가 부각되듯, 당시 언론도 베트남전 기밀과 워터게이트 스캔들 폭로로 한껏 힘이 커지고 있었다.

대배심은 블랙팬서에 대한 증언을 요구했지만 뉴욕타임스와 콜드웰은 거부하고 헌법소원을 냈다. 앞서 미 연방최고법원에는 마약 재배를 취재했다가 경찰의 소환장을 받은 폴 브란츠버그 기자, 블랙팬서 지역본부를 취재한 매사추세츠주 TV 기자의 사건이 계류돼 있었다. 이 사건들을 병합 심리한 결과가 언론자유의 주요 결정 중 하나인 ‘브란츠버그 대 헤이즈’ 사건이다. 기자가 취재원의 증언과 정보 공개를 거부할 특권을 갖는지, 법원과 학계가 찬반으로 갈렸다. ‘브란츠버그의 분열’이란 말이 생겨났다. 5대 4로 결정난 법원 다수 의견의 결론은 이랬다. “다른 시민이 갖지 못한 권리를 기자에게 주라는 요구, 우리는 거절한다.”

짧고 리듬 있는 이 문장에 당연하면서도 다행스러운 결과가 담겨 있다. 우선 기자라는 직업군을 시민사회와 분리하지 않았다. 이 시기 미국에선 언론이 권력과 싸워 이긴 획기적 사건과 판결이 잇따랐다. 60, 70년대에 수정헌법 1조가 다시 쓰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언론의 승리는 바로 시민권 신장으로 이어졌다. 정부와 기업의 투명성 제고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 중 하나인데, 그 방향도 같은 흐름이 돼야 한다고 본다. 기자는 시민의 한 사람이지 시민을 대표하지 않는다. 제4부란 개념처럼 언론이 특별한 힘을 갖는 상태가 아니라, 모든 시민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법원 결정 덕에 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독립을 지키게 됐다. 만일 기자의 특권을 인정했다면 소송의뢰인과 하나로 묶인 변호사와 다름없다. 주어진 정보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고 보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언론의 가치로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시민들의 생각이 갈라지고, 매체도 노골적으로 정파의 노선을 따르는 새 환경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자는 평생 취재원의 영향을 받는다. 지금도 미 직업언론인협회(SPJ) 윤리규정은 취재원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옥에 갈 각오를 하라고 요구한다. 한편으로 어떤 취재원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는 기자의 직업적 성공을 결정한다. 뉴스 가치가 높은 취재원일수록 접근이 어렵고 경쟁도 심하다. 그래서 기자는 어느 나라나 취재원을 개발하고 가꾸는 일 (Develop and Cultivate)에 전력을 다한다. 그 노력의 한 단계, 한 단계는 취재원에게 자신의 판단력을 팔아넘길지 모르는 시험대가 된다.

미국 뉴스룸에는 “기자의 가치는 오직 취재원으로 결정된다(A reporter is only as good as his sources)”란 극단적 격언이 있다. 한때 뉴욕타임스의 에이스 기자였던 주디스 밀러가 최근 자서전에서 이 말을 재인용했다. 미국 언론이 있지도 않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던 시기, 밀러는 그 선봉에 섰다. 정치 보복을 위한 정보를 흘렸을 때도 취재원을 밝히지 않고 감옥에 있었다. 그는 이 말을 인용하며 대이라크 여론 호도는 정부 책임이지 언론 책임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기자가 믿을 수 있는 소스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다. 대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꼴이다. 기본적 사실 확인을 위한 접촉을 언론의 내통으로 취급하고, 내용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사실 왜곡으로 간주하는 일도 흔하다. 물라면 가서 물어뜯듯이 공격에 이용되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취재원과 기자 관계를 시민사회가 올바로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취재원에 대한 독립은 저널리즘과 뉴스를 퍼뜨리는 다른 직업을 구분하는 기본 조건이다.

유승우 뉴욕주립 코틀랜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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