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기기 탭틸로 개발한 이경황 오파테크 대표
점자는 시각장애인의 언어다. 앞을 보지 못하는 그들에게 점자는 중요한 사고의 도구다. 점자를 통해 글을 읽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시각장애인이 점자에 능숙한 건 아니다. 2017년 보건복지부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장애등급 1~4급을 가진 시각장애인 7만4,300여명 중 12.4% 정도만 점자를 읽고 쓸 수 있었다.
이경황(40) 오파테크 대표는 점자를 배우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스마트 점자 학습 기기 ‘탭틸로’를 개발했다. 기기에 부착된 점자블록을 직접 조립하며 즐겁게 놀다 보면 자연스레 점자를 배울 수 있도록 설계했다. “탭틸로를 사용하면 (점자를) 처음 배우는 시각장애인이라도 지루하지 않다”고 밝힌 이 대표는 “탭틸로를 통해 전 세계 점자 문맹률을 연 1%씩 낮추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귀여운 실로폰을 연상케 하는 탭틸로는 첫인상부터 친근했다. 탭틸로에 연동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음성이 흘러나온다. ‘엄마!’ 하단 디스플레이에 이 ‘엄마’에 해당하는 점자가 올라오면 사용자는 그 점자를 만지며 학습한다. 그리고 상단 점자블록에 자신이 학습한 점자를 입력하면 센서가 오답 여부를 판단하고 핸드폰이 이를 다시 음성으로 알려주는 식이다. 쉽고 간단한 학습 방식 덕에 빠르고 시각장애인은 수월하게 점자를 배울 수 있다고 한다. 이 대표는 “개인 차는 있지만 탭틸로를 통해 점자 학습 시기를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한 단어 학습에만 그치지 않는다. 사용자는 탭틸로를 통해 음악과 외국어도 학습할 수 있다. 음악 학습이 어려운 기존의 점자 학습기를 보완하기 위해 이 대표는 탭틸로에 음악 학습 기능을 추가했다. 6점 체계를 따르는 점자에서, 위 4개 점으로 음계(도레미파솔라시도)를 표시하고 아래 2개 점으로 음의 길이를 표시하는 식이다. 이 대표는 “점자는 세계적으로 6점 체계를 사용한다”며 “탭틸로 하드웨어에 외국어 소프트웨어만 입력하면 외국어도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시각장애인을 돕는 사회적 기업을 창업하려던 건 아니었다. 대학원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는 원래 제3세계 국가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연료전지를 연구해왔다. 하지만 연료전지 사업 전망이 밝지 않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동료들과 함께 다른 사업 아이템을 찾아야 했다. “전공을 살리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 연구와 개발을 하고 싶었다”는 이 대표는 우연히 주변의 권유 덕분에 시각장애인의 점자 학습을 돕는 보조공학으로 눈을 돌리게 됐다.
사업 시작을 위한 시장 조사 진행 과정에서 이 대표는 점자를 혼자서 학습하기 어려워하는 시각장애인을 여럿 만났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워 대개 보조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보조교사의 수가 적고 일주일에 한 두 번 방문 하는 수준”이라며 “점자를 스스로 학습할 기회가 적어 점자를 혼자 깨우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점자는 비효율적이라거나 배우기도 까다롭다는 세간의 편견 탓에 점자 학습을 도와줄 교보재나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기도 하다”고도 했다.
탭틸로가 거둔 가장 큰 성과는 시각장애인에게 공부 흥미를 일깨워준 점이었다. 이 대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탭틸로를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인상 깊은 피드백을 받았던 적이 있다. “우리 아이가 드디어 앉아서 공부를 시작했다”는 한 현지 학부모의 평가였다.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어린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탭틸로의 교육 효과를 확인 받은 순간이었다. 이 대표는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라서 놀랍고도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2019년 현재 전국에 위치한 13곳 맹학교 대부분에서 활용되고 있는 탭틸로는 특히 중도 실명한 시각장애 청년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이들의 경우 선천적인 시각장애인과는 다르게 어렸을 때부터 점자를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점자를 스스로 학습할 때 어려움을 겪는다. 이 대표는 “(중도실명) 청년 장애인들은 바로 맹학교 교육 과정을 따라갈 수 없어 스스로 점자를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며 “탭틸로는 장애 청년들에게 확실한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탭틸로는 더 이상 국내 시장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2017년 미국 세계보조공학박람회에 참가한 이래 이 대표는 현재 미국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점자교육을 통해 전 세계 문맹률을 매년 1%씩 낮추는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이자 비전이라는 이 대표는 “저희의 보조공학 솔루션을 통해 그분들이 각자의 삶을 풍성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궁극적 목표”라고 덧붙였다.
김민준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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