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은 정부ㆍ시 예산으로는 비싼 역세권에 부지를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땅을 가진 민간 사업자로 하여금 주택을 지어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등에게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살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대신 서울시는 사업자들에게 용적률 제한 완화 등으로 당초보다 더 큰 건물을 지을 수 있게 한 뒤 대신 8년의 의무 임대 기간이 끝나면 일반에 분양ㆍ매각할 수 있게 해준다. 민간 사업자가 나서야 사업 추진도 빨라질 수 있다는 판단에 용적률이라는 공공재를 활용한 정책 실험이다.
하지만 청년주택은 걸음마 단계다. 서울시는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만8,000실, 2022년까지 8만실(공공임대 1만6,000실, 민간임대 6만4,000실)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사업을 시작한 2017년 이후 지난달까지 서울시로부터 인ㆍ허가를 받은 청년주택은 41건으로 예정대로 공사가 진행된다 해도 1만6,351실만 확보할 수 있다. 3만8,000실이라는 목표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이다. 그 나마 첫 입주 시점은 내년 1월이다.
청년주택의 속도가 더딘 것은 애초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은 최소로 쓰고 민간이 가진 땅, 자본을 활용하려다 보니 사업 속도가 민간 사업자의 뜻에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서울시 청년주택 통합심의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 인사는 “민간 사업자들은 임대료 협의나 이자 차액 지원 등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개발 이익을 얻으려 하는데 서울시는 언제까지 얼마를 짓겠다고 발표해 버렸으니 협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단 버티면 시로부터 얻을 게 많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속도 조절에 나서는 사업자도 생겨나고 있다. 청년주택 사업을 진행 중인 A사 관계자는 “2ㆍ3년의 공사 기간, 8년의 의무 임대 기간 등 최소 10년은 이익을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대출 이자 등 금융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2017년 이후 개별 공시 지가는 25%가 오르고 공사비도 오르니 계산기를 두드려 보고 아니다 싶으면 발 빼려는 분위기도 있다”라고 전했다. 실제 금융권 대출을 위해 서울시 여신위원회의 심사 통과를 한 26개 사업주 중 10월 말 현재 대출을 실행한 곳은 14개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역에서 임대 주택이 들어서면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거나 임대 수입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주민들이 반발하고, 일부 자치구는 이를 의식해 건축 허가 내주기를 주저하는 점도 사업주들이 시를 압박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진남영 원장은 “시가 속도전으로 나올수록 개발 이익을 노리는 사업주들은 사업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있다”라며 “용적률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얻은 이익도 땅 주인이나 사업주가 아닌 공공 영역으로 더 많이 돌아가게 하는 장치를 마련한 뒤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24일 서울시는 청년주택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공급촉진지구 지정 가능 면적을 2,000㎡에서 1,000㎡로 완화했다. 시는 이를 통해 도시, 건축, 교통, 경관 등 그 동안 따로 진행했던 9개 분야의 심의 과정을 한꺼번에 진행할 수 있게 되고, 사업 기간도 약 3~5개월 짧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개발 이익에 치중하는 민간 사업자가 아니라 공공이 주도해야 사업이 안정적으로 오래 갈 수 있다”라며 “서울시나 SH공사가 지분에 참여하는 리츠(REITSㆍ부동산투자회사)를 만들어 리츠가 청년주택을 사들이는 방식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ankookilbo.com
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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