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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만나다] 연습벌레 정영식이 말하는 ‘최고’가 되는 법

입력
2019.11.14 07: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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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한국 탁구의 대들보 정영식과 유망주 길민석

※ 어린 운동 선수들은 꿈을 먹고 자랍니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를 보고 자란 선수들이 있어 한국 스포츠는 크게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스타의 발자취를 따라 걷습니다. <한국일보> 는 어린 선수들이 자신의 롤모델인 스타를 직접 만나 궁금한 것을 묻고 함께 희망을 키워가는 시리즈를 격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한국 탁구 국가대표팀 정영식(왼쪽)과 유망주 길민석이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이승엽 기자
한국 탁구 국가대표팀 정영식(왼쪽)과 유망주 길민석이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이승엽 기자

“제일 존경하는 선수요? 당연히 (정)영식이 형이죠.”

한국 탁구의 미래라 불리는 길민석(대광중2)은 자신의 롤모델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정영식(27ㆍ국군체육부대)을 꼽았다. 사실 길민석은 초등부 시절만 해도 크게 두각을 나타낸 선수는 아니었다. 어린 선수가 구사하기 어려운 기술을 고집하면서 범실을 많이 범하는 스타일 때문에 연령대 4, 5위권 성적에 맴돌았다. 나쁜 실력은 아니었지만 늘 뒤쳐졌던 그에게 최고가 될 수 있는 희망을 심어준 건 정영식이었다.

지금은 대표팀의 대들보지만, 정영식도 어린 시절 늘 2등이었다. 화려하고 번득이는 천재형 선수는 아니었던 정영식은 트레이드마크인 성실함과 연습으로 결국 성인 무대에서 국내 최고 자리를 꿰찼다.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는 마룽(31), 장지커(31) 등 중국 선수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올해 7월 코리아오픈 8강에서도 세계 최강 판정둥(22)을 잡아냈다. 불가능할 것 같은 내년 도쿄 올림픽 단식 금메달도 정영식이 있기에 꿈만은 아니다.

길민석은 그런 정영식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며 결국 해답은 연습이란 걸 깨달았다. 중학교 진학을 앞둔 2018년 겨울 방학. 길민석은 이른 새벽마다 훈련을 했고, 밤에도 개인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성과는 당연히 따라왔다. 대표팀 상비2군에도 당당히 선발됐고, 지난해 종합탁구선수권대회 32강에선 실업팀 성인 선수를 꺾는 파란을 일으키며 대회 역사상 최연소로 16강에 진출했다. 이제 길민석은 연령별 1, 2위를 다투는 최고의 유망주 중 한 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그런 지독한 연습벌레 두 명이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마주했다. 우상을 만나 긴장한 듯 했지만, 길민석은 정영식에게 품어왔던 고민을 털어놨다. “형도 연습이 너무 힘들거나, 절대 지고 싶지 않은 선수에게 졌을 때 탁구를 그만두고 싶지 않았나요?”

정영식은 허공을 응시하더니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탁구가 너무 하기 싫었어.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었지만, 현실에 막히고 경기에 지는 불안한 상황에 직면한 거야. 그런데 돌이켜 보면 ‘결국 마지막엔 내가 이긴다’는 확신으로 극복한 것 같아. 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이었다면 한계에 부딪쳤을 때 쉽게 포기했겠지만, 꾸준히 하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겨낼 수 있었어. 우리는 재능이 없어도 나중에 잘하는 스타일이잖아. 너무 걱정하지마.”

알고 보니 정영식도 자신과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 길민석을 눈 여겨 보고 있었다. 정영식은 “대표팀 훈련 때나 대회장에서 자주 봤었다”며 “(길)민석이는 백핸드 디펜스가 좋고 포핸드에도 힘이 있어서 이대로 자신만의 플레이를 만들어가면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말에 신이 난 길민석은 “세계 최고 백핸드를 가진 형을 보고 배웠어요”라며 “예전엔 백핸드를 안 했는데, 요샌 연습을 많이 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공격하다 맞드라이브로 잡는 경우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한국 탁구 국가대표팀 정영식(왼쪽)과 유망주 길민석이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이승엽 기자
한국 탁구 국가대표팀 정영식(왼쪽)과 유망주 길민석이 지난달 30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진천=이승엽 기자

정영식은 큰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는 후배의 말에 대견하다는 듯 당부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중국리그에 가보니 정상급 선수들은 항상 중요한 순간에 과감하게 먼저 선택을 하더라”라며 “한 점 승부 때는 누구나 다 불안해. 그런데 안전한 선택을 하면 결과는 안전하지 않더라고. 마지막 순간엔 서브든, 리시브든 무조건 상대보다 먼저 결단을 내리는 게 좋아”라고 강조했다.

정영식은 자신이 유독 중국의 톱 랭커들을 상대로 자주 승리를 거두는 것도 ‘거북이처럼 가다 보면 언젠간 이긴다’는 마인드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대회, 중요한 경기. 그 한 번을 이기기 위해서 훈련을 하는 거잖아. 그러니 계속 진다고 상심할 필요 없어. 포기하면 그 기회조차 잡을 수 없거든.” 인프라에서 중국 탁구를 앞설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불리한 상황에서도 금메달을 따냈던 기라성 같은 선배들처럼 큰 대회에서 오히려 해볼 만하다는 의미였다.

정영식의 속 깊은 이야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취미조차 탁구여서, 쉴 때도 유튜브로 중국 선수들의 영상을 돌려 보는 연습벌레다. 벌써 국가대표 13년차지만 자신도 늘 선배들을 보고 배웠다며, 그렇기에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기 위해 늘 자신을 채찍질한다고 했다.

리우에서 메달을 따지 못했는데도 국민들에게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았다는 정영식. 그의 탁구 선수로서의 마지막 목표는 내년 도쿄 올림픽 단식 금메달이다. 정영식은 이날 같은 의정부 출신 길민석에게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약속을 했다. “민석아, 형이 내년에 꼭 금메달 딸게. 도쿄 갖다 오면 의정부에서 같이 부대찌개 먹자.”

진천=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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