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글로벌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우리네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에 대한 해외의 관심 역시 커졌던 시기가 있다. 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7년여의 장기계약을 하고, 춤과 노래는 물론이며 외국어 같은 다양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아 데뷔하는 그 시스템에 대해 주로 비판이 쏟아졌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걸 배우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실제로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경우는 그 연습생 시스템을 가져와 자국의 아이돌을 양산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서 이런 방식은 애초부터 가능하지가 않다. 그건 ‘인권 침해’의 요소들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시스템이 생겨난 건 독특한 우리 사회의 교육 문화가 투영된 면이 있다. 즉 될성부른 소수 정예만 뽑아서 성장시키는 엘리트 교육이 그것이다. 고등학교에서 명문대에 갈만한 학생들을 뽑아 일종의 엘리트반을 만들어 집중 육성하는 그 시스템은 아이돌 연습생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교육 시스템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었다.
국가대표를 뽑아 집중 육성하는 스포츠 분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 몇 년 간 스포츠업계에서 불거져 나온 인권유린 사건들과 승부 조작 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최근 아이돌 연습생들을 상대로 벌어진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권유린과 투표 조작 사건과 겹쳐져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토록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쉬쉬하고, 심지어 연습생들(혹은 운동선수들) 또한 이를 감내하며, 관련 업계에서도 그리 문제 삼지 않았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다. 그들은 일단 성공하면 모든 걸 보상받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 아래 그걸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그걸 감내해야 겨우 성공의 발판을 유지할 수 있는 그 공고한 시스템 앞에서 이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 연습생이라는 우리만의 특이한 시스템에서 엿보이는 건 ‘빠른 성공’에 대한 집착이다. 아이돌 1세대인 보아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연습생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다. 이토록 어린 나이부터 연습생이 됐던 건 ‘아이돌’에 목표가 맞춰져 있어서다. 아이돌은 십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를 뜻하지만, 나이 어린 인기 가수를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연습기간을 거쳐 데뷔한 후 최대한 오래 활동하려면 더 어린 나이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런 면은 대학을 마치 인생의 데뷔 무대이자 삶의 궁극적 목표처럼 세워놓아 그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어린 나이부터 조기교육을 시키는 우리네 현실 그대로다.
우리 사회가 특히 천재니 영재니 하는 어린 나이에 특출 난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에 집착하게 된 건 그것이 일찌감치 그들의 장밋빛 미래를 결정지을 거라는 환상 때문이다. 유일한 성장의 사다리 역할을 교육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부모들은 그래서 내 아이가 천재거나 영재이길 은근히 바란다. 하지만 이른 천재성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또 빠른 성공을 이뤘다고 해도 그 사람의 행복까지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걸 부모들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아이가 아이돌처럼 빠른 성공을 하길 원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명문대 같은 빠른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그 이후로 불공정한 현실을 맞이하게 된다는 걸 부모들이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이란 무대에 제대로 화려하게 데뷔하지 못하게 되면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취업과 결혼 등등의 무대에서 공정한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게 우리네 현실이다. 이러니 부모들의 조급증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강남의 돼지엄마들이 탄생하고 JTBC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김주영 선생 같은 입시 코디네이터를 찾는다. 아이를 단박에 키워줄 학원을 찾고 엄마들은 매니저가 되어 쉴 틈 없는 아이의 학업 스케줄을 챙긴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대학을 가도 점점 미래가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만난다. 명문대를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우리 사회의 오디션은 끝없이 이어진다. 하나를 넘으면 또 하나가 가로막는 오디션의 연속이고, 그 안에 들어간 우리들의 삶은 아이돌 연습생의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아이돌만이 아닌 다양한 성공의 서사를 갖지 못할까. 젊어서의 성공만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그 오래된 믿음을 언제까지 계속 놔둘 것인가. 결국 이런 믿음이 만들어내는 치열한 경쟁과 좌절의 서사를 언제까지 아이들이 경험하게 할 것인가. 누군가를 밟고 올라야 비로소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입시교육의 공포 속에서 마치 아이돌을 키워내기 위해 매니저를 자임하는 부모들이나, 대학입시라는 오디션 무대를 통해 단기간에 성공의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는 아이들은 과연 그 안간힘으로 원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최근 빠른 성공을 이뤘다 싶었던 아이돌들이 한 순간에 추락하고, 공정하다 믿었던 오디션 혹은 교육 시스템의 불공정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을 아이돌 연습생 같은 치열한 경쟁 속으로 내몰고 싶은가.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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