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순간을 뉴스로 지켜보면서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도영이 이런 질문을 했다. “엄마, 남북통일과 기후위기, 둘 중 어떤 게 더 급한 문제에요?” 도영은 이어 물었다. “통일이 돼도, 기후변화로 사람이 살기 힘든 기후가 되면 소용이 없잖아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기후위기가 어린 아들에게 얼마나 큰 걱정인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도영은 돼지와 닭, 오리들이 공장식 축산에서 고통스럽게 사육된다는 것을 알면서 세 살 때부터 채식을 한다. 아들이 비건에 가까운 채식을 하고 있는 이유는 기후위기를 막고 동물들과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다. 뽀로로는 웃고 있지만 진짜 펭귄들은 남극에 비가 내려 얼어 죽고, 가축 방목과 사료작물 재배를 위한 인위적 산불이 대형화재로 이어져 아마존이 잿더미가 되며, 호주ㆍ 러시아ㆍ북미 등 세계 곳곳이 폭염으로 불타 코알라를 비롯한 수많은 야생동물이 멸종위기로 몰리고 있음을 도영은 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가축의 긴 그림자’라는 보고서에서, 전 세계 모든 교통수단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온실가스가 축산업에서 나오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총량에서 산업분야가 14%, 교통과 운송이 13.5%를 차지하는데 축산업이 18%를 차지한다는 놀라운 결과였다.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서구식 음식섭취가 지구온난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세계의 과학자들은 거듭 강조하고 있다. 올 8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특별 보고서에서도 과학자들은 “지구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육식 위주의 식습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 5일, 153개국 과학자 1만1,000여명이 공동 성명을 내 “즉시 기후위기에 대응할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인류가 막대한 고통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대부분 채소로 이뤄진 식단을 꾸리고 육류 소비를 줄일 것”을 또 다시 강조했다.
기후행동 최전선에 나선 스웨덴 소녀, 그레타 툰베리는 비건이다. 툰베리처럼 기후위기를 막고 멸종에 저항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국내외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올 7월 비거니즘으로 행동하는 청소년들의 모임 ‘비행청소년’도 깃발을 올렸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2015년 붉은 육류를 2군 발암추정물질로, 소시지ㆍ햄ㆍ베이컨 같은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미국영양협회는 잘 짜인 채식 식단이 건강식이며 질병 예방에 이롭고, 임신기ㆍ수유기ㆍ유아기ㆍ성장기 등 인생의 모든 주기에 적합하다고 발표했다.
이렇기에 미국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학교들은 학생 건강증진과 온실가스 감축, 두 가지 목표를 위해 채식 급식을 확대하고 있다. 네덜란드 교육부와 암스테르담 시정부는 주최하는 행사의 기본메뉴를 채식으로 한다. 독일 발도로프 학교는 채식이 기본이고 육류는 원하는 학생에 한해 제공하되 주2회로 제한한다.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은 캠퍼스에서 쇠고기를 퇴출시켰다. 포르투갈 의회는 학교, 병원 등 모든 공공급식에서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지 않은’ 채식 메뉴 제공을 의무화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반대로, 한국의 단체급식은 여전히 육류 중심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돼지 40만마리를 살처분하면서도 공장식 축산과 육식 위주의 식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돌아보지 않는다. 동물학대와 기후위기, 멸종에 저항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한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먹을 것이 없어 맨밥만 먹는 심각한 인권 침해를 겪고 있다. 동물을 착취하다 결국 스스로 일으킨 기후위기로 멸종위기에 직면한 호모 사피엔스. ‘동물을 먹지 않을 권리’는 인권 문제이며 생존의 문제다.
황윤 영화감독ㆍ‘사랑할까, 먹을까’ 저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