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시가 주는 매혹은 ‘거두절미-뜨거운 감각’이지요. 거두절미, 무릎을 치게 하는 호응이지요. 그래 맞아, 그래야겠어, 실천을 이끌어내지요.
지구를 지났다면, 제일 먼저 무엇을 벗어던지고 싶으신가요? “지구를 지났다, 신발을 벗었다”, 행성 입문을 하고 싶은 이 시의 화자는 신발부터 벗겠다는 것이지요. 발에 또 신는 발, 발을 보호하는 발, 발보다 견고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발보다 먼저 해지는 발인 신발은 인간, 나아가 문명인을 상징하지요. 문명인에게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신발이 중요한 바로미터지요. 인간이 쌓아올린 시스템이 겹겹인 만큼, 신발에 부여된 의미도 겹겹이지요. 가볍고 편해야 좋은 신발인데 점점 더 무거워지는 이 신발, 어찌해야 하나요.
그래서일지 모르죠. “신발을 벗었다”라고 선언하게 된 것은. 신발을 벗은 발은 딛고 있던 곳을 벗어나는 동력으로 전환되지요. 발은 드디어 발이 되는 것이지요. 열 개의 발가락은 워낙 질서정연하지 않고 각각의 방향을 가리키는 다양성이었거든요. 그러므로, 지구라는 하루를 지나 신발을 벗는 순간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도 벗는다는 뜻. “여기서부터는//나도 별이다”, 그 무엇과도 무관하게 반짝이는 나를 존재시키겠다는 뜻이지요.
별은 막막한 허공에 찍힌 점. 그런 의미에서 별은 용기. 땅만 갖고는 안 된다는 얘기. 땅의 문법이 아니라 땅에서 솟구쳐 오르는 문법이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별을 꿈꾼다면, 새로운 행성에 입문하고 싶다면, 즉 내가 별이 되고 싶다면, 일단은 날아오르자고요. 그러기 위한 첫 번째는 쌓은 것에 더 쌓지 않기. 신발 위에 신발 자꾸 겹쳐 신지 않기. 무거우면 못 날아올라요. 별은 지금까지 쌓은 것을 다 두고 허공에 갈 수 있다는 얘기잖아요.
별과 새의 공통점은 거느리지 않는다는 것. 2020, 지금은 이 멋진 숫자로 진입하기 직전이죠. 새로운 행성 입문을 3주 남긴 시점에서는 반성 말고, 계획 말고 날아오르기. 수평에서 솟아오르는 각자의 상상력이 필요해요. 왜냐고요? 반성과 계획은 매번 신는 습관의 신발이거든요.
이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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