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봄, 최자영의 ‘시민과 정부 간 무기의 평등’(헤로도토스, 2018)을 읽고 어느 지면에 독후감을 쓴 바도 있으나, 여러 책과 아울러 소개하는 바람에 정작 이 책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했다. 이후 여러 사람에게 본서를 권했고, 이름난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들을 만났을 때 여러 분야 전문가의 릴레이 서평을 기획해 보라는 제안도 했다. 지은이는 보기 드물게 그리스 국가장학생(1987~1991)으로 발탁되어 이오니아대학교 역사고고학과에서 고대 아테네 의회제도 연구로 박사학위(1991)를 받았다.
많은 정치학자는 정치 이론이나 민주주의를 논할 때 항상 고대 그리스(아테네)를 원형으로 소급하며, 우리의 상식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때 우리가 귀감으로 삼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특징이 직접민주주의와 추첨민주주의 등속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가 모범적으로 운용된 밑바탕에 시민들의 자체 무장(武裝)이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이 사실은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인 학교가 민주주의에 대해 가르치면서 누락시킨 중요한 기밀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국가 당국의 권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폭력의 속성과도 거리가 아주 멀었다. 폴리스를 이루는 것이 시민단이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모여야 전쟁도 할 수가 있고 또 돈을 갹출하여 무슨 행사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정에서 민중이 공직자를 감시할 수 있는 권한도 사실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다. 즉, 국가는 군대, 경찰 등 조직적 폭력을 소유하지 않았고, 필요한 경우 국가의 주체가 되었던 시민들 각자가 직접 그런 역할을 수행했다. 자유민주주의는 말이나 의지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먹혀들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국가의 무력조직이 시민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국가와 시민 간의 무기의 평등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는 서력 기원전 478년, 델로스 해상동맹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국가가 관리하는 상비군이 없었다. 이웃의 도시 국가와 전쟁이 벌어지면 생업에 종사하던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 있는 창과 방패를 들고 전투에 참여했고, 식량도 각자가 짊어지고 나갔다.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 집에 녹슨 채 나뒹구는 탱크나 전투기,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몰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이처럼 시민이 자체 무장을 할 수 있었기에 고대 그리스 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이나 무력을 전유한 계층에 의한 사회적 억압이 후대에보다 덜했다. 델로스 동맹으로 아테네가 제국이 되면서 상비군이 발달하고, 정부와 시민 간 무기의 평등이 깨어졌다. 이로 인해 정치 권력의 전횡이 가능하게 되었고,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눈덩어리같이 커져 갔다.
고대 그리스의 사례는 좌우 이념을 불문하고, 한 번도 현실 정치에서 고려된 바 없다. 도리어 사회계약론을 최초로 제기한 토머스 홉스(1588~1679)에서부터 비교적 근대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1864~1920)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는 오로지 국가만이 무력을 합법적ㆍ독점적으로 소유하고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결과 1%의 특권 계급이 지배하고 조종하는 국가가 무력을 개인의 용역처럼 사용하면서도, 합법하다는 정당성을 얻게 되었다.
집집마다 대한민국 육군의 개인 화기인 K2로 무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해 ‘시민과 정부 간 무기의 평등’에 나오는 한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역사적 사실을 극적으로 부풀렸을 뿐, 지은이가 주장하는 것은 그런 무기의 평등이 아니다. 지은이는 “시민이 가진 무기란 권위적, 비합리적 공권력의 부패를 고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를 일상화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민은 시민이 법안을 발의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 공권력을 남용하거나 태만한 공직자의 책임을 묻는 국민소환제, 국회가 발안된 법안을 묵혀서 폐기할 때 필요한 법안을 시민이 직접 통과시킬 수 있는 국민투표권, 실질적인 시민배심제도와 국민(주민) 투표에 의한 대법원장ㆍ법원장ㆍ검사장 선출권 등을 무기로 가져야 한다. 여기에 광장과 노동조합을 추가한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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