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끝> 전진을 위한 제언
※올해로 37번째 시즌을 맞는 K리그는 아시아 최고수준의 프로축구 리그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스타들의 해외 이적과 기업 및 지자체의 지원 축소 등 악재가 겹치며 자생력을 찾아야 할 때란 평가입니다. <한국일보> 는 격주 목요일 연중기획 ‘붐 업! K리그’에서 K리그 부활 방안을 심도 있게 모색합니다. 한국일보>
2019년 K리그는 유래 없는 흥행 가도를 달렸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시작으로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 신화까지, 국제대회에서의 연이은 호성적으로 팬들이 유입된 데다, K리그 본연의 재미 또한 커지며 237만명의 관중을 경기장으로 불러들였다. 치열한 순위 경쟁과 ‘돌풍의 팀’ 대구와 강원의 선전, 선수들의 적극적인 팬 서비스 등으로 인기 몰이를 했다.
하지만 이 열기가 앞으로도 계속될지는 미지수다. 모처럼 불어온 훈풍을 타고 비상하기 위해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각계 전문가 6인에게 K리그 발전을 위한 심도 깊은 조언을 들어봤다.
“미래를 꿈꾸려면 K리그 역사 바로 세우기부터”
-한준희(KBS 해설위원)
저는 앞으로의 K리그 발전을 위해 2가지를 당부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해외 선진 축구 기준에 준하게 통계와 기록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부터 시작해 도움, 출전 횟수, 팀 연속 기록 등 우리 K리그의 역사적인 기록들은 기본적으로 문제가 있습니다. 1부와 2부리그, 정규리그와 컵대회가 혼합돼 있기 때문입니다.
부연하자면 우리는 어떤 팀이 리그 4연승 후 리그컵에서 1패를 하고, 다시 리그에서 3연승하면 7연승으로 기록되지 않습니다. 같은 연맹 주관이라고 연승이 끊겼다고 간주합니다. 프리미어리그(EPL)와 카라바오컵 기록이 뒤섞인 꼴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1부리그 30골, 2부리그 50골 넣으면 이걸 리그 통산 80골로 칩니다. 이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세군다리가 기록이 합해진 꼴입니다. 그 어떤 선진 리그도 이렇게 계산하지 않습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최다 출전, 최다골 기록이 다 바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역사 흔들기가 아니라 바로 세우기입니다. 귀찮더라도 한 번쯤 털고 가야 합니다.
둘째는 전술적 다양성이 지금보다 더 늘어나야 합니다. 분명 올 시즌은 좋은 모습을 보인 팀이 적지 않았습니다. 김병수(강원)의 혁신성, 김태완(상주)의 유연성, 최용수(서울)ㆍ남기일(성남)의 실리성 등입니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의 학구적 탐구열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올 시즌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더 늘어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구단, 지도자들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또 단순 중계 이외에 하이라이트, 분석, 쟁점 토론 등 연맹이 제작하는 다양한 파생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좋을 것 같습니다.
“K리그판 ‘펭수’ 키워 스토리 늘리자”
-장부다(스포츠 디자인 마케팅사 ‘BUDAJANG’ 대표)
올해 K리그 상품가치는 더 커졌지만, 안주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도약해야 할 때입니다. 모든 경기가 매진을 기록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구단 총 지출을 메우기 힘듭니다. 디즈니가 영화를 ‘영혼’으로 두고 수익은 다른 영역에서 얻듯, 구단들도 경기 외에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브랜딩이 중요합니다. 캐릭터 같은 영역에 대한 구단들의 고민 또한 한 단계 올라서야 합니다. 캐릭터를 미취학 아동의 눈높이에 맞춘 구단들이 많은데, 이는 구색 갖추기 정도지 캐릭터로서 매력이 없습니다.
EBS에서 내놓은 캐릭터 ‘펭수’를 예로 들면, 펭수가 그저 귀엽기만 한 건 아닙니다. 까칠하고, 누구나 하고 싶은 얘기를 대신 해주고 있어 인기가 높죠. 어떤 정치인 때문에 승점이 깎이고 상당한 벌금을 낸 구단의 캐릭터가 시원하게 한 마디 해준다면 팬들에게 와 닿고, 스토리도 차곡차곡 쌓일 겁니다. 모든 구단이 한 단계씩 올라서기 위해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메이저리그사커(MLS)가 흑자로 돌아선 데는 할리우드의 엔터테인먼트 전문가 영입이 수익 증대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과감한 시도들도 필요합니다. 구단들이 당장의 앞가림 하기도 벅찬 게 사실이지만, 예를 들어 제일기획이 운영하는 수원 삼성 같은 경우도 모기업 역량이 더 적극적으로 투입돼 새로운 시도들이 이뤄졌으면 합니다.
“심판들, VAR 의존 줄여야”
-권종철(전 대한축구협회 심판위원장)
K리그에서 비디오판독(VAR) 정착이 이뤄지고 있지만, 간혹 VAR가 있어도 오심이 생기기도 하면서 신뢰에 흠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심판들이 VAR 활용조차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체력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죠.
선수나 지도자들은 피땀 흘려 경기를 준비합니다. 올해 K리그 흥행 속에서도 오심 논란은 여전히 불거졌는데, 심판들도 정신적, 체력적 준비가 돼 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무결점 판정’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심판에 대한 동업자 정신을 선수와 지도자들도 조금 더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현역 심판 때나 지금이나, 어떠한 판정으로 손해 본 건 오랜 시간 기억하고 원망하지만, 이득을 봤다고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내년부턴 K리그 심판 배정 및 교육 기능을 프로축구연맹에서 대한축구협회로 이관합니다. 두 단체가 많은 고심을 해 결정을 내렸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두 단체 모두 일원화가 됐을 때 장점을 더 살리고, 단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도록 서로 다투기보단 협조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나아가서 협회는 K리그 심판이 월드컵 무대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체계적으로 관리, 보호하고, 재정적 지원은 물론 외교적 지원도 아끼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K리거는 공인… 음주운전 사태 더는 없어야”
-김보경(울산 현대ㆍ2019시즌 K리그1 MVP)
2019년은 잊지 못할 한 해였습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팬들이 보내주신 사랑은 저희 선수들이 느끼기에도 그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이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합니다.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 근본적인 이유는 흥미진진한 경기를 보기 위해서,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축구 시합의 박진감을 가르는 것은 결국 ‘속도’입니다. 선수들도 각 팀 전술에 맞게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체계적인 잔디 관리와 함께 경기장 잔디를 충분히 적셔 볼의 스피드를 빠르게 해야 합니다.
하지만 K리거라면, 무엇보다도 개인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둬야 합니다.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훈련에 진지하게 임해야 합니다. 또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선배들부터 나서서 사인부터 사진 요청까지 최대한 응해드려야 합니다. 최근에는 선수들이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통해 팬들과의 접점을 늘리고 있습니다. 저도 올해 ‘KBK Football TV’를 통해 유튜버에 도전했습니다. 기량 발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선수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합니다.
그라운드 밖에서의 처신도 중요합니다. 최근까지도 선수들의 음주운전 적발 사고가 수 차례 이어졌습니다. K리거는 공인입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손해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갑니다.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코어 프로덕트는 결국 ‘선수’… 유소년 정책에 심혈 기울여야”
-이종성(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올해 가능성을 본 K리그가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정공법을 써야 합니다. 이번 시즌 K리그 경기당 평균 관중 수가 8,000명을 넘어선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시청률과 중계권 가치 상승을 바라서는 안 됩니다. 이는 가장 변화가 느린, 보수적인 지표입니다.
단기적 성과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올해 U-20 월드컵 준우승으로 증명됐습니다. K리그가 칭찬 받아야 할 점은 유소년 정책만큼은 2002년 이후 꾸준히, 잘 밀어붙였다는 것입니다. 시스템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거둔 것이 리그 흥행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축구만큼 연령대별 시스템이 잘 갖춰진 종목도 없습니다. K리그1 구단들이 한 해 평균 20~30억원을 유소년 시스템에 투자하는 데,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합니다.
K리그 발전의 핵심이 육성이라면, ‘어떤 팬’을 핵심으로 설정해야 하는가가 다음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역밀착 마케팅에 집중한 일본 J리그보다 코어 팬층을 집중 공략한 미국 MLS의 사례를 배워야 합니다. 지역 분산이 약한 지금의 한국에서 지역성을 강조해선 효과를 보긴 힘듭니다.
MLS는 리그 출범 초기 마케팅 역량을 축구를 좋아하는 히스패닉 팬들에 집중했습니다. 히스패닉 인구가 많은 지역에 구단 출범 허가를 많이 내주면서 중남미 선수들을 응원하던 MLB 팬들을 흡수했고, 축구 인기가 점차 백인 주류 사회까지 번졌습니다.
K리그가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10~20대 여성 팬입니다. 야구도 2008년 이후 호재가 겹치며 젊은 팬들을 흡수, 유래 없는 흥행에 성공했는데 대부분의 여성 팬도 이때 유입됐습니다. 현재 KBO 팬의 절반이 여성입니다.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팬을 유입시킬 수 있는 결정적인 모멘텀이 오길 기대합니다.
“성적 안 좋을수록 SNS 홍보하는 ‘파격’ 있어야”
-박성희(좋은스포츠 대표ㆍ한국외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교수)
축구가 가진 가장 큰 특성은 90분간 터프하고 빠르게 몰아친다는 것입니다. 이는 큰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몰입감이 큰 대신 하프타임을 제외하고는 미디어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스포츠는 미디어의 간섭 여지가 없으면 외면을 받고 상품 가치는 떨어지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타파하기 위해 미국 대학농구에선 경기 중간 순수하게 광고만을 위한 ‘커머셜 브레이크 타임’을 도입했습니다. 흥행을 위해서 경기 룰까지도 바꿨습니다.
K리그도 구조적으로 미디어가 개입할 여지가 필요합니다. 최근 VAR이 도입되긴 했습니다만,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축구도 45분씩 2번이 아니라 30분씩 3번할 수 있다는 식의, 파격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합니다.
핵심은 팬들이 경기 내외부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MLB에선 성적이 안 좋은 스몰마켓 구단일수록 SNS에 올인합니다. 보수적인 락커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입니다. 당장 경기를 이기는데 급급할 뿐입니다. 흥행을 위해서라면 성적이 안 좋을수록 SNS에 올인하는 ‘파격’은 보고 배워야 합니다.
e스포츠도 좋은 벤치마킹 사례입니다. 최근 젊은 세대는 축구, 야구보다 e스포츠에 열광하는데, 이는 게임을 보는 사람들이 곧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즐길 콘텐츠가 많다는 뜻입니다. 연맹과 구단들이 콘텐츠 개발에 발벗고 나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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