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고사(枯死)위기 내몰린 소아외과
소아외과 전문의로 일하는 마지막 날이다. 지난 5년간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보람을 느꼈지만 보람만으로는 ‘소아외과’의사로 살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아이들을 치료할 자신이 없어 도망가는 것이다.
말만 소아외과 전문의일 뿐, 소아보다 성인 환자를 더 많이 봤다. 1년에 300건이 채 되지 않는 소아 환자에 집중하라고 할 병원은 대한민국에 없다. 병원에서는 환자가 많은 유방외과에 집중하면서 소아 환자를 보라고 대놓고 지시했다. 환자가 없다는 이유로 응급실 야간당직을 한 달에 6회 이상 서야 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별일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며 버텼지만 ‘선천성 거대결장’에 걸린 소아 환자를 수술하면서 소아외과 의사 ‘완장’을 반납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선천성 거대결장은 대표적인 소아의 선천성 질환으로 장 근육을 움직이는 신경절세포가 장의 하부까지 도달하지 못해 발생한다. 장 하부에서 장 운동이 이뤄지지 않아 장 상부에 대변과 가스가 차고 장염이 생기는데 이를 알지 못하는 의사가 부어 오른 장 상부만 절제하고 수술을 끝내면 결과적으로 장 전체가 썩어 환자가 사망할 수 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6개월 만에 선천성 거대결장 수술을 했더니 손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수술을 하면서 내가 소아외과 의사인지, 일반외과 의사인지 정체성이 흔들렸다. 수술을 끝내고 연구실에 들어가 주저 없이 사직서를 썼다.
◇소아외과 운영 병원 30곳 중 22개 의사 1명
2018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소아외과 교수를 그만둔 A씨의 이야기다. 신생아를 비롯한 소아를 수술하는 소아외과 의사들의 ‘씨’가 마르고 있다. 소아외과 의사들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병원 현장에서 소아외과 전문의를 볼 수 없게 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소아에게 발생한 각종 질환의 수술을 담당하는 소아외과가 몰락한 가장 큰 이유는 저출산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3년 42만7,888건이었던 분만건수는 2018년 32만7,120건으로 10만건 이상 감소했다. 6년 사이 23.6%나 줄어든 셈이다. 치료할 환자 자체가 급감하다 보니 병원에서는 ‘돈’이 되지 않는 소아외과에 인력을 투입할 리 만무하다. 대한소아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으로 국내 소아외과 전문의는 모두 48명에 불과하다. 지역별로는 서울 및 수도권에 24명, 경상권에 11명, 충청ㆍ전라ㆍ제주권에 7명 등 42명이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병원별로 살펴보면 소아외과의 인력난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있는 전국 30개 병원 중 22개 병원은 전문의 1명으로 소아외과를 운영하고 있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2명인 병원은 4곳이고, 소아외과 전문의가 3명인 병원은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들이다.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들 중에도 소아외과 전문의가 없는 병원이 10곳이나 된다.
소아외과 의사들은 소아외과 전문의를 하면 할수록 일에 회의를 느낀다고 말한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에서 혼자 소아외과를 담당하고 있는 B씨는 “소아외과 교수로 발령을 받아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열정만 있으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해가 갈수록 진료실적에 대한 압박, 24시간 ‘콜’을 받아야 하는 심리적ㆍ육체적 부담감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소아외과 교수로 일하는 C씨는 “소아외과 의사 중 오로지 소아 환자만 치료하는 의사는 없을 것”이라며 “4년간 이 병원에서 일하면서 얻은 것은 스트레스와 부정맥”이라고 말했다. 그는 “병원장에게 진료 실적이 없다고 세 차례 경고를 받았다”며 “또 병원장에게 불려 가면 사표를 쓰라고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수술효과 좋아도 힘들고, 돈 못 벌어 외면 받아
소아외과 의사들은 미래가 더 암울하다고 말한다. 소아외과 전문의가 되려면 외과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세부전공으로 소아외과를 선택해 2~3년간 전임의 과정을 밟아야 하는데 해가 갈수록 지원자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철 서울아산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2016년부터 올해까지 그래도 매년 소아외과 전문의가 한두 명씩 배출됐는데 올해 소아외과를 지원한 외과 전공의(수련의사)는 전무했다”며 “소아외과는 동물로 비유하면 멸종위기종”이라고 씁쓸해했다.
스스로 멸종위기종이 됐다고 말하지만 소아외과 의사들은 병원에서 소아외과가 반드시 있어야 할 진료과라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소아외과의 필요성은 수술지표에서 드러난다. 대한소아외과학회가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신생아중환자실 환자가 일반외과 의사와 소아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후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유의미한 격차가 나타났다. 일반외과 의사에게 수술받은 환자의 30일 내 사망률은 9.2%, 소아외과 의사에게 수술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6.2%로 3%포인트 차이가 났다. 몸무게 별로 보면 출생 체중이 1,000g 이하인 영아가 일반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경우 30일 내 사망률은 23.7%에 이르지만, 소아외과 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12.6%로 크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외과학회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전체 소아외과 수술 건수는 23만2,022건으로 이중 소아외과 전문의가 집도한 수술 건수는 3만6,948건으로 15.9%였다. 일반외과 의사의 수술 건수는 19만5,074건으로 전체의 84.1%에 달했다.
소아외과 의사들은 성인 환자를 볼 수 있으면 소아 환자도 치료가 가능하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한다. 김현영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소아를 성인의 축소판이라고 생각하는데 소아는 어른과 다른 독립 개체라 치료방법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장혜경 경희대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횡경막 탈장, 선천성거대결장, 소장폐쇄, 직장항문기형 등 성인에게서 발생하지 않는 다양한 질환이 소아에게서 나타나므로, 이런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전문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연준 전북대병원 소아외과 교수는 “병원의 소아외과 외면, 이에 따른 전공자 부족, 그리고 소아외과 의사들의 처우 부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면서 소아외과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소아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사라지는 사태가 현실화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이면의 이야기를 전달합니다. <한국일보> 의 김치중 의학전문기자가 격주 월요일 의료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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