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보내는 연말에도 ‘레벨’이 있다. 집에 틀어박혀 ‘러브액츄얼리’나 각종 시상식 본방 사수에 나서는 ‘방콕파’는 하수다. 똑 같은 휴식이라도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 쉬어가는 게 진짜 고수다. 그 곳에선 밀린 업무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집안일도 딴 세상 이야기다. 집 떠나면 사서 고생이라지만, 집을 떠나야 진정한 힐링도 찾을 수 있다. 이번 연말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나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나서보는 건 어떨까.
◇도심 속 ‘컬처 노마드’를 위한 공간
6살, 4살 남자 아이 둘을 키우는 전업주부 홍지혜(36ㆍ서울 송파구)씨. 학창시절 문학도를 꿈꾸며 책을 옆에 끼고 살았지만 출산 이후엔 책 대신 아이들을 끼고 사느라 ‘활자’를 마주할 일이 없다. “책을 소개해주는 팟캐스트나 오디오북을 찾아 듣긴 하지만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보는 시간이 너무나 그립더라고요.”
홍씨처럼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책의 세계에 빠지고픈 이들에게는 ‘북스테이’가 적당하다. 멀리 갈 것 없이 도심에서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창경궁 맞은편에 자리한 복합문화공간 ‘틈’은 연말에만 한시적으로 북스테이를 운영한다. 작은 마당을 품은 ‘ㄷ’자 형태 한옥인데 서재 침실 거실 화장실 부엌 할 것 없이 시, 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돌아다닌다.
틈을 운영하는 박초롱 딴짓매거진 대표는 “원래 잡지 사무실로 쓰며 출판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공간이었는데 북스테이 문의가 너무 많아서 올해부터 한번 시작해봤다”며 “집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멀어져 조용히 연말을 정리하고 싶어하는 30대 여성들, 육아에 지친 엄마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복궁을 지척에 둔 보안1942는 온라인서점 예스24와 함께 내년 1월 12일까지 색다른 책 전시장으로 변신한다. 예스24 독자들이 직접 뽑은 올해의 책 24권과 올해의 문장들을 소리, 맛, 향 등 다양한 감각을 책과 연결시킨 이색 체험공간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아방의 드로잉 클래스를 비롯해 물리학자 김상욱, 작가 이슬아, 영화 ‘벌새’ 김보라 감독과의 북토크 등 다채로운 행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보안1942 신나라 팀장은 “혼자 책을 보며 조용히 휴식할 수 있도록 TV나 오락시설은 배제하는 대신 음악 감상 룸은 따로 만들어놨다”며 “최고급 문화를 즐기려는 이들을 위한 일시적 거주지인 셈”이라고 말했다.
◇명상부터 서핑…. 새로운 나를 발견하다
평소에 미처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취미나 문화 경험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곳도 있다. 제주의 ‘플레이스캠프’는 커피 드립 클래스, 칵테일 클래스, 요가 클래스를 비롯, 제주만의 특성을 살린 오름 트래킹, 자전거 투어, 서핑, 스쿠버다이빙, 바다낚시 등 다채로운 액티비티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또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플리마켓, 맥주 페스티벌, 라이브 피아노 공연까지 즐길 수 있다. 플레이스캠프 관계자는 “문화콘텐츠를 중심에 두고 있어 오히려 숙박은 부가적 요소”라고 말했다.
체험의 즐거움보다 마음의 고요가 필요하다면,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권한다. 강원 원주에 위치한 뮤지엄산이 운영하는 명상관은 머리 속과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성지 같은 곳이다.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미술관 개관 5주년을 맞아 지은 명상관은 40평 면적의 돔 공간으로, 유리창을 통해 숲 속의 고요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릴렉스종’으로 알려진 싱잉볼과 숲 속의 소리를 감상하는 명상부터, 간단한 호흡법과 스트레칭도 배우는 명상까지, 프로그램도 취향별로 선택할 수 있다.
직장인 이소영씨(36ㆍ서울시 강동구)는 “일과 사람에 치여 내면의 에너지가 고갈됐다는 느낌이 들 때마다 찾게 된다. 일상에서도 명상을 통해 내 마음을 마주 보는 연습을 하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책 음악 디퓨저 사진기는 필수
나만의 완벽한 휴식을 위해 꼭 챙겨야 할 물건들이 있다. 자신의 취향대로 고른 책 한 권과 음악은 필수다. 뻔한 것 같지만 혼자 즐기면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몸과 마음에 힐링을 안겨줄 좋은 차와 와인, 아로마 향초, 추억을 남길 사진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다이어리도 잊지 말자. 휴대폰은 웬만해선 꺼두기를 추천한다. 박초롱 대표는 “휴대폰이나 태블릿 PC 등 억지로 나에게 말을 거는 물건은 잠시 일상에 맡겨두고 오는 걸 추천한다”고 말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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