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속적 합의, 기본권 침해 없어… 심판대상 아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체결된 한일 위안부 협정은 헌법소원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3년9개월 만이다.
헌재는 27일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 할머니 29명과 유족 12명이 한국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 발표가 위헌임을 확인해달라며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해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각하는 소송의 조건을 갖추지 못해 심판 대상이 되지 않는 경우 본안(본 재판) 심리 없이 소송절차를 종료하는 것을 가리킨다.
문제가 된 합의는 2015년 12월 28일에 체결된 것으로, 일본 정부가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약 103억원)을 출연하는 대신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마무리하기로 한 것을 골자로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최종적ㆍ불가역적 해결’이란 부분이 배상청구권 실현의 장애를 가중시키는 등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쟁점은 한일 위안부 합의가 조약인지, 비구속적 합의인지다. 비구속적 합의의 경우, 그로 인한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는 우선 형식 면에서 “일반적 조약이 서면의 형식으로 체결되는 것과는 달리, 이 사건 합의는 구두 형식으로 체결됐고, 표제도 ‘기자회견’”이라며 “국무회의 심의나 국회 동의 등 헌법상 조약체결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내용 측면에서도 △재단설립이나 일본 정부의 출연금에 대해 구체적 계획이나 의무이행의 시기ㆍ방법 등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해결시기나 미이행에 따르는 책임도 정하지 않아 양국의 권리와 의무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헌재는 “이 사건 합의를 통해 피해자들의 권리가 처분됐다거나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한이 소멸됐다고 하기 어렵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미치거나 배상청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도 2017년 12월 28일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정부의 이 같은 판단에 따라 화해치유재단도 지난 7월 공식 해산했다.
이날 헌재 결정은 위안부 합의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파기나 재협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정부에 압박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피해자 측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이동준 변호사는 “합의 자체의 성격과 효력 등을 감안해 정부가 보다 과감하게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하게 하는 단초를 마련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일본 정부가 지급한 위로금 반환 조치 또한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교부는 헌재 결정 직후 “각하 결정을 존중한다”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헌재는 이날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에서도 각하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들은 과거 일본 소속 회사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받지 못한 급여를 한일 양국 견해차 때문에 아직까지 환급 받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분쟁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헌재는 “외교행위의 특성상 정부에 상당한 재량이 인정된다”며 “가시적인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고 해도 정부가 자신에게 부여된 ‘적극적 행위를 할 의무(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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