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우리가 간다] <7> 여자 수영 김서영
한국 수영은 1964년 도쿄올림픽에 처음 도전장을 던졌다. 40개가 넘는 메달이 걸린 올림픽 기초 종목이지만 한국은 세계 수준에 크게 뒤처져 메달은커녕 8명이 겨루는 결승전에 오르는 것조차 꿈꾸기 힘들었다. 그렇게 40년이 흘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남유선(은퇴)이 한국 선수로는 처음 결승 출발대 위에 서 7위를 차지했다.
4년 뒤엔 최고의 순간을 만끽했다. ‘마린 보이’ 박태환(31)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에서 한국 수영의 첫 올림픽 메달을 ‘금빛’으로 장식했다. 박태환은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자유형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며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박태환이 도핑 스캔들에 휩싸이고, 전성기를 지나면서 한국 수영은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단 한 명도 결승에 오르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은 솟아났다. ‘꿈나무’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던 여고생이 리우 올림픽,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거치면서 한국 수영을 대표하는 간판으로 떠올랐다. 아시안게임 여자 개인혼영 200m 금메달리스트인 김서영(26ㆍ경북도청ㆍ우리금융그룹)은 한국 수영이 올림픽 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
김서영은 아시안게임 개인혼영 200m 결승에서 2분08초34의 한국 신기록, 대회 신기록으로 맞수인 오하시 유이(일본)를 제치고 ‘금빛 역영’을 펼쳤다. 기세를 몰아 지난해 안방에서 열린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메달도 노렸지만 결승에서 6위(2부10초12)로 레이스를 마쳤다. 접영-배영-평영-자유형의 순서로 헤엄치는데, 약점으로 꼽히는 평영에서 뒤처진 부분이 아쉬웠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1위를 차지한 세계 최강자 카티나 호스주(헝가리)를 제외하면 2, 3위로 터치패드를 찍은 예 시웬(중국ㆍ2분08초60), 시드니 피케름(캐나다ㆍ2분08초70) 기록은 김서영이 개인 최고 기록에 근접하면 따돌릴 수 있을 만하다. 경북 경산시 경북체고 수영장에서 만난 김서영은 “좀 더 단단해져서 원하는 걸 이루는 2020년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도쿄올림피의 해가 밝았다. 어떤 마음으로 새해를 맞았는지.
“작년은 시행착오가 있었던 한 해였다. 2018년 아시안게임 금메달 이후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결과적으로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결과(개인혼영 200m 6위)가 안 나왔다. 장점을 살릴 수 있는데, 단점만 보완하려고 치중했다. 올해는 내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지난해 경험은 분명 헛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장점을 살린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준다면.
“난 힘이 좋은 선수가 아니다. 원래 잘할 수 있는 수영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내 몸에 집중해서 하는 수영이다. 물을 잘 타고 거기서 추진력을 얻는 방법으로 수영을 하려고 한다.”
-어느덧 세 번째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2012년 런던(개인혼영 400m 예선 탈락) 2016년 리우(개인혼영 200m 준결승 진출)는 어떤 경험으로 남아 있는지.
“중학교 때 꿈나무 타이틀을 갖고 선수촌에 입촌했다. 런던 올림픽 당시엔 그 무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올림픽 환경이 신기하고 마냥 즐거웠다. 내 기록도 잘 나오긴 했지만 참가에 의의를 두고 즐겼다. 리우 올림픽 때는 준결승을 목표로 했고, 준결승에 진출한 다음은 결승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런던을 다녀온 이후로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도쿄올림픽은 아직 준비하는 과정이고, 일단 대표 선발전(4월말 또는 5월초 예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번엔 결승 진출을 넘어 메달을 목표로 잡았다. 내가 원하는 기록만 나온다면 주위에서도 만족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것이다.”
-이번 올림픽은 4년 전 리우 때와 달리 결승을 이튿날 오전에 치르는 것으로 변경됐는데.
“아무래도 힘을 더 쓸 수 있는 오후에 경기를 뛰는 게 좋다. 하지만 선수 모두 공평한 조건에서 수영을 하니까 크게 개의치 않는다. 좋은 기록을 내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오래 견뎌낼 힘이 있어야 결승에서 파워를 낼 수 있다.”
-일본의 맞수 오하시 유이, 오모토 리카와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경쟁자들을 신경 못 쓴다. 올림픽에서 후회 없는 경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에 누군가를 의식하기보다 자신에게 집중하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물 안에서 하루 평균 6,000~7,000m 물살을 가르며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고 들었다. 그 순간 상당히 고독할 것 같은데.
“항상 7,000m 수영을 하는 건 아니다. 훈련 강도에 따라 다르다. 고독함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몸이 아플 때 특히 그렇다. 그러다가 몸이 다 낫고 수영이 괜찮아지면 힘든 순간은 잠깐에 그친다. 그리고 다시 훈련에 집중한다.”
-힘들고 답답할 때 책을 읽는다고 들었다.
“힘들 때 독서를 하면 좋다. 요즘은 오프라 윈프리가 쓴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읽고 있다. 자신을 소중히 하라, 자신에게 감사하라는 내용인데 나를 사랑하는 게 첫 번째다. 그래야 다른 것도 사랑할 수 있다. 책은 지인에게 선물 받기도 하고, 직접 고르기도 한다.”
-박태환은 경기 전 헤드셋으로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영 황제’ 카엘렙 드레셀(미국)은 대회 때마다 은사의 스카프를 들고 다닌다. 그들처럼 긴장을 다스리는 특별한 방법이 있는지.
“어렸을 때는 루틴을 만들고 그랬는데, 커서는 징크스를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단순히 경기 전 물 속에서 내가 신경 써야 할 부분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접영 때는 급하게 가지 않고 물 미는 타이밍에 맞추자’ ‘평영 때는 글라이딩(물에 들어간 팔을 진행 방향으로 길게 뻗는 것) 넘어가는 거에 집중하자’는 생각 등을 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초심은 무엇인지.
“5살에 엄마를 따라 수영을 처음 시작했다. 선수반은 초등학교 3학년에 들어갔고, 5학년 때 선수로 정식 등록해 전국대회에 나갔다. 당시엔 좋아하는 수영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수영 자체를 즐겼다. 하지만 2018년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더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에 갇혔다. 그 순간 ‘왜 수영을 좋아하지 못하지, 즐기지 못하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내가 수영을 즐길 때 더 좋은 성적이 나온 걸 떠올리며 이겨내려고 했다.”
-수영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고, 슬럼프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어깨 부상이 심할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다쳐서 2014년 초반까지 계속 아팠다. 고등학교 시절엔 올림픽만 보고 버텼는데, 스무 살이 넘어선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수영을 그만두기엔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깨에 부담이 덜 가는 영법으로 바꿨는데, 이게 좋은 선택이 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동기부여는 어떻게 하는지.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 경기가 끝났을 때 ‘내가 열심히 준비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안 날 정도로 준비하려고 한다.”
-지금은 올림픽만 보면서 달려가고 있는데, 올림픽 끝나고 해보고 싶은 게 있는지.
“모든 운동선수는 항상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데, 목표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지내보고 싶다. 그 동안 일주일 이상 쉬어본 적이 없다. 원래 쇼핑을 좋아하고 1~2년 전만 해도 쉬는 날 카페를 가거나, 맛집을 찾아 다녔는데 지금은 흥미가 없다.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게 좋다. 그래야 뭔가 쉰 것 같다. 누워서 TV를 보고, 따뜻한 이불 안에서 귤을 먹는 게 ‘힐링’이다.”
-수영장에서는 승부욕이 강한 선수인데, 일상 생활에선 어떤가.
“칠칠치 못하다. 운전을 못해 숙소(경산)에서 부모님 집(수원)에 갈 때 KTX를 타고 간다. 운전면허증은 있다. 스무 살에 모닝을 끌고 다녔는데, 하이패스를 지나다가 사이드미러가 뜯겨 나갔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어이가 없어 계속 웃었다. 그 때 견인차도 처음 타봤다. 그 이후로 엄마가 다음부터는 택시 타고 다니라고 하셨다(웃음).”
-마지막으로 새해 소망이 있다면.
“올해는 제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건강하고 행복한 한 해가 되면 좋겠다. 한국 수영이 어렵다고 하지만 세계를 바라보며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더 훌륭한 선수가 나올 수 있다. 선수들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다 같이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산=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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