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도쿄 우리가 간다] <10>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김현우
레슬링은 한국의 올림픽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종목이다.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장창선이 2위에 올라 한국 레슬링의 첫 올림픽 메달을 수확했고, 1976년 몬트리올 대회에선 양정모가 한국 스포츠 사상 첫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에도 1988년 로스앤젤레스 대회 김원기, 1988년 서울 대회 김영남 한명우,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안한봉 박장순, 1996년 애틀랜타 대회ㆍ2000년 시드니 대회 심권호, 2004년 아테네 대회 정지현이 ‘금빛 구르기’에 성공하며 효자 종목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2008 베이징 대회 ‘노골드’에 그치면서 한국 레슬링은 위기론이 불거졌다. 이 때 구세주로 등장한 건 김현우(32ㆍ삼성생명)다. 열악한 저변 탓에 한국 레슬링이 쇠퇴할 때 김현우는 강원고 3학년 때부터 국내 최고 실업팀인 삼성생명으로부터 육성 지원금과 체계적인 관리를 받으면서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 결과, 2012 런던 대회에서 한쪽 눈이 퉁퉁 부은 상태에서도 ‘피멍 투혼’을 발휘해 8년 만에 금맥을 다시 캤다.
위기의 한국 레슬링을 구한 김현우는 2013년 세계선수권, 2014년 아시안게임을 석권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2연패를 기대했던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석연찮은 판정 탓에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경기 중 팔이 빠진 고통 속에서도 동메달을 획득한 그는 매트에 태극기를 깔고 관중석에 큰 절을 했다. 아쉬운 마음에 한 동안 일어나지 못한 채 펑펑 눈물을 쏟았다.
4년 전 아픔을 딛고 김현우는 이제 2020년 도쿄 대회에서 마지막을 준비한다. 1차 관문인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그는 내달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쿼터 대회에 도전한다. 이번에도 어깨는 무겁다. 리우에서 다시 한번 ‘노골드’로 침묵했던 한국 레슬링을 침체기에서 건져내야 한다. 김현우는 “다리가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부상은 하나도 안 두렵다”며 “런던 금메달은 나 자신을 위한 메달이었지만 도쿄에서는 대한민국 레슬링을 위한 금메달을 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쿄올림픽 출전까지 한걸음 다가섰는데.
“3월에 올림픽 티켓 대회가 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수로 두 번이나 이겼던 선수(무함마드 게라이ㆍ이란)한테 졌다. 올림픽을 앞두고 좋은 약이 됐다. 이번엔 같은 실수가 없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
-10년간 정상급 선수로 지낸 만큼 전력이 많이 노출됐을 텐데.
“확실히 오래 하다 보니까 경쟁자들에게 내 기술이나 경기 운영 방법이 노출됐다. 그래서 나 또한 항상 도전자의 마음으로 상대를 분석하려고 한다. 어느덧 국가대표로 10년째인데, 아직도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항상 부족함을 채우고 더 완벽하게 하려 노력한다.”
-세계선수권대회 후 상심도 컸을 텐데.
“기운이 좀 빠졌다. 승부욕이 강해서 지난 경기를 복기하다 보면 자신에게 화가 나고 운동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 힘들다. 세계선수권대회 당시 준비를 잘하고 몸도 좋았는데, 너무 좋았나 보다. 의욕적으로 한번에 끝내려고 하다가 경기를 그르쳤다. 서두르는 게 내 약점인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침착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게 힘든 순간이 오면 어떻게 이겨내는지.
“요즘 말로 하면 ‘아싸(아웃사이더)’ 기질이 있다. 대인 관계가 부족한 건 아니지만 한번에 두 가지를 못하는 성격이라 운동에 집중하면 다른 걸 안 하게 된다. 운동을 하면 외롭지만 내 운명이다. 챔피언은 쓸쓸하고 고독한 법이지 않나. 물론 올림픽 금메달은 예전 얘기라서 더 겸손해지고 도전자라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외로움은 승부욕 탓인지, 훈련으로 극복한다. 쉴 때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라이벌들의 훈련 영상을 보며 자극을 받는다. 그리고 언제나 가족은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도쿄올림픽에서 레슬링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금메달 예상 종목에 없다.
“레슬링 꿈나무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면목 없다. 선배들이 성적을 못 내고 못난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 선수층이 얇다 보니까 아직 비인기 종목인데, 이 부분도 내 잘못이다. 원래 레슬링은 효자 종목인데 리우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안 나왔다. 책임을 통감한다. 도쿄에선 나 자신이 아니라 후배들과, 대한민국 레슬링을 위해 금메달을 따내겠다.”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 그리고 2020년 도쿄 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의 차이가 궁금하다.
“벌써 8년 전, 4년 전인데… 런던 때는 정말 올림픽 금메달에 내 모든 걸 걸었다. 리우 때도 큰 차이는 없지만 항상 최선의 목표는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후회를 안 남기는 거다. 사람이기 때문에 후회가 안 남을 수 없는데, 남더라도 조금만 남게 준비하려고 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전부 진인사대천명이었다. ‘하늘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게으름을 피울 수 없고 하늘을 감동시켜야 금메달 딸 수 있다’는 생각으로 10년간 해왔다.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 있는 도쿄 역시 같은 마음으로 준비한다.”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했는데, 특별히 다르게 준비하는 게 있는지.
“점점 더 고독해진다. 사람들과 더 단절되고, 가족 아니면 거의 연락 안 한다. 올림픽에 집중하려고 노력할 뿐이지, 따로 준비하는 건 없다. 올림픽 말고는 없다.”
-라이벌 선수를 꼽아본다면.
“로만 블라소프(러시아)가 강하지만 라이벌을 단정 짓고 싶지 않다. 자신에게만 집중하면 다 이길 자신이 있다. 라이벌들의 특기 기술을 비디오로 분석하고 있지만 특기 기술은 알면서도 당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려고 한다.”
-팀 동료이자 ‘절친’ 류한수와 함께 하는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
“(류)한수 형과는 서로 의지한다. 내가 뛰는 것처럼 한수 형의 경기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한다. 올림픽에서 같이 금메달 따는 게 꿈이다.”
-마지막으로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를 말해달라.
“국민들에게 금메달을 안겨드리고 싶다. 금메달에 대한 부담감을 가졌다면 진작 힘들었겠지만 부담이라 생각 안하고 책임감이라 생각한다. 런던 때 금메달을 따고 인터뷰를 하면서 ‘눈이 실명되더라도 금메달과 바꾼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간절하다. 다리가 부러지든, 팔이 부러지든 부상은 하나도 안 두렵다. 런던 금메달은 나 자신을 위한 메달이었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도쿄 금메달은 대한민국 레슬링을 위한 메달이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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