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출범에 황 “기적” 자찬
유 ‘개혁보수’ 실종에 ‘도로 한국당’
공천 등에 혁신 있어야 진정한 통합
미래통합당의 대표로 승격된 황교안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보란 듯이 역사적 과업인 통합을 이뤄냈다”고 잔뜩 힘을 줬다. 지난해 11월 초 ‘자유 우파 대통합’을 위해 자유한국당 간판과 대표직도 내려놓겠다고 선언한 지 100여일 만에 통합신당을 창당했으니 자찬할 법도 하다. 그의 말처럼 진보 쪽에선 “그러다 말겠지”라고 비아냥댔고, 내부에서도 황교안의 정치력과 결단에 의구심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1월 중순 박형준이 이끄는 혁신통합추진위가 출범해 ‘범보수 빅텐트’ 그림을 구체화하고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양자 채널이 별도로 가동되는 상황에서도 통합은 마냥 먼 일로 보였다. ‘3원칙’을 둘러싼 황교안과 유승민의 미묘한 신경전에다 기득권에 편승한 한국당 내 반발이 적잖았고, 새보수당도 흡수 통합을 우려하며 머뭇거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총선을 불과 2개월 앞둔 탓에 지도체제와 공천을 둘러싼 각 정파의 이해다툼을 조정할 지도력을 찾기 어려웠다.
황교안의 종로 출마와 유승민의 신설합당 제안 및 불출마 선언이 매듭을 자른 결단임은 분명하다. 주변 요구에 떠밀린 것이든 선거 전략적 판단이든, 지금껏 살면서 부닥칠 일 없던 두 동년배가 같은 시기에 같은 지점에서 같은 목표 아래 헌신과 책임을 내세운 승부수를 던진 것은 흥미롭다. 더구나 ‘범보수 빅텐트’가 통합당의 지향점이라지만, 통합당의 키워드인 혁신ㆍ확장ㆍ미래는 두 사람을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때 주도권을 다투던 라이벌이 총선 승리와 문재인 정부 심판이라는 공통의 목표 앞에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동업자’가 된 셈이다.
하지만 통합당 출범식엔 황교안만 있고 유승민은 없었다. “국민의 명령과 부름에 따라 자유민주진영이 과거를 딛고 차이를 넘어 미래를 향해 하나로 결집하게 돼 가슴이 먹먹하다”는 황교안의 말에도 유승민은 없었다. 그는 몸집이 커지고 자리를 지킨 것만으로 배가 부른 듯 했다. 자유ㆍ민주ㆍ공화ㆍ공정에 기초한 신당의 가치와 비전을 소개하며 체질 개선을 강조한 박형준의 경과 보고나 세대교체를 표방한 조연의 출연이 없었으면 고함과 몽니에 익숙한 ‘한국당 시즌2’를 보는 듯했다.
황교안은 왜 유승민이나 그의 메시지를 소환하지 않았을까. 사전에 유승민과 만나 역할을 논의한 흔적도 없다. 당초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키로 했던 신당을 한국당 지도부가 장악하고 눈엣가시 같던 유승민 세력까지 흡수 통합하듯 끌어안았으니 용도가 다했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태극기 우파의 환심을 사려던 것일까. 엊그제 통합당 첫 의원총회장에서 벌어진 ‘인사말 소동’과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공천 잡음은 신당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유승민은 불출마에 이른 결심을 밝히면서 자신의 고민이 가장 깊었던 점은 개혁 보수의 꿈이라고 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 가치를 온전히 지키고 경제와 안보를 중시하며 따뜻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개혁 보수의 가치를 명확히 해야 통합의 의미가 산다는 진심을 남기기 위해 불출마를 선언한다고 했다. 그리고 ‘통합=승리’라는 낡은 도식에 안주하는 황교안을 안타깝게 지켜봤을 것이다. 김형오 공천관리위가 그나마 개혁 보수의 첨병이 되기 바라면서.
통합당 출범의 정치적ㆍ 시대적 의미를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외양만 보면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이합집산하던 보수 세력이 총선을 앞두고 허겁지겁 도로한국당 또는 도로새누리당을 꾸렸다는 조롱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통합 후 나온 첫 여론조사에서 통합당 지지도가 옛 한국당 수준인 것은 잡탕밥처럼 사람만 많이 모였을 뿐 감동과 흥행 소재가 거의 없었다는 방증이다.
황교안은 자신의 내려놓음이 통합의 불쏘시개가 됐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덩치와 머리가 따로 노는 통합당 모습은 총선도, 총선 이후도 기약할 수 없는 ‘떴다방’과 다름없다. 유승민 브랜드와의 궁합을 가볍게 여긴 탓이다. 패착에 가까운 무리수를 일삼는 여권에 ‘야당 복’을 안기지 않으려면 지금 황교안은 유승민의 손을 잡아야 한다.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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