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에서나 보았던 일이었다. 미래의 재난으로 여겨진 상상이 바로 지금 현실에서 그대로 혹은 더 극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치료제 개발 전 급속히 번지는 신종 바이러스, 바이러스 확산을 제어하려는 국가 권력의 통제, 바이러스만큼 사람을 병들게 하는 불안 공포 불신, 사재기와 암시장, 사회 시스템 마비와 붕괴…
SF 작가는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했다.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동화 ‘두 개의 달’을 쓴 전성현 작가는 “메르스 유행을 겪고 작품을 썼는데 지금 현실을 보니 좀 더 적극적으로 상황을 광범위하게 그려도 괜찮았겠다”고 말한다. 갈수록 실제 현실이, 문학이 재현하는 현실을 가뿐히 뭉개고 앞질러 간다. 만약 문학 작품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한 종교집단에서 급속도로 이루어졌다고 썼다면 논리적 개연성이나 설득력 없는 전개, 특정 종교 혐오로 비판받을 게 분명하다.
지금 재난 상황을 문학이나 영화가 재현한 현실에 앞서 실제 현실로 경험하는 어린이들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싶다. 온 사회에 불안과 공포가 스며들 때 어린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미세먼지가 최악인 날에도 답답하다며 마스크를 쓰지 않던 어린이가 스스로 마스크를 챙기고 실내에서도 벗지 않는다. 개학이 연기되고 학원도 안 가니 심심해서 친구와 만나 놀고 싶을 텐데 다들 참고 집에만 있다. 부모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어린이들은 스마트폰으로 확진자 동선 안내 문자를 받고, 포털 사이트에 수시로 업데이트되는 확진자 수를 파악한다. 어린이 스스로 접근하는 정보를 무턱대고 막을 수도 없고, 가짜 뉴스 속에서 유익한 정보를 가리고 불필요한 공포에 노출되지 않게 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기침의 원인은 바이러스다. ‘말을 안 들어서’ 기침하는 게 아니다. 죄인이어서, 벌을 받느라 아픈 게 아니다. 현대인이라면 징벌적 질병론 따위는 접어두어야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우리의 약한 부분을 건드리고 드러낸다. 공공의 건강보다 조직 안위를 우선하는 집단, 안전이라는 명분 뒤에 숨은 혐오, 이 상황에서마저 일확천금을 노리는 욕망, 개인의 의료 위생을 보장받을 수 없던 환경까지. 나는 어린이가 이를 지켜볼 일이 실은 바이러스만큼 두렵다.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멀리 있는 사람의 바이러스가 내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은 물론 공포다. 그러나 공포가 알려주는 건 반대로 나 역시 바이러스를 옮길 가능성이다. 바로 우리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 마스크는 내 건강을 철통 방어하는 장벽만이 아닌 시민으로 공유하는 신뢰와 약속의 표지이고, 마스크 뒤 보이지 않는 타인의 입은 앙다물지 않고 미소 짓고 있다는 것. 오늘 재난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이 이를 깨닫고 믿을 수 있는 사회이길 간절히 바란다.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