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ㆍ끝> 르네 마그리트의 ‘보이지 않는 선수’
※ 경제학자는 그림을 보면서 그림 값이나 화가의 수입을 가장 궁금해할 거라 짐작하는 분들이 많겠죠. 하지만 어떤 경제학자는 그림이 그려진 시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답니다. 그림 속에서 경제학 이론이나 원리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하죠. 미술과 경제학이 교감할 때의 흥분과 감동을 함께 나누고픈 경제학자,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한국일보>에 격주 토요일 연재합니다.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99)를 보면 흥미롭게도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 1898-1967)의 그림이 나온다. 주인공(피어스 브로스넌 분)이 모네 진품을 다시 미술관에 갖다놓기 위해서 작전을 펼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그리트의 ‘사람의 아들(Le Fils de L’Homme)’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림 속 인물처럼 검은 중절모에 외투를 입고 신사 수십명이 검은 가방을 들고 미술관에 나타나서 주인공을 잡으려는 경비원들을 혼란시키는 대목은 상상을 넘어서는 반전을 보여준다.
◇익숙한 대상이 선사하는 충격
마그리트는 벨기에에서 출생해서 죽을 때까지 자신만의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창조하였다. 초현실주의는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촉발된 다다이즘(Dadaism)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성과 합리주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 전반에 대한 반역을 꿈꾸었던 예술 운동이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이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 상상력의 세계를 회복시키고 인간정신을 해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무의식, 꿈, 판타지 등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고 했다
초현실은 낯선 세계다. 그래서 초현실주의는 현실과는 아주 다른 낯선 세계를 추구한다.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콜라주, 포토몽타주 등의 기법을 자주 사용한 이유다. 서로 다른 것을 묶어내거나, 정상적 형태에 압박을 가해 형태를 왜곡시키거나, 아무런 관련 없는 사진들을 오려내어 뒤죽박죽 결합시키는 방식으로 초현실의 낯설고 기묘한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들은 특히 꿈을 주목했다. 왜냐하면 꿈이란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아주 낯선 세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꿈과 무의식, 욕망의 세계에 매료되어 신비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논리적이며 철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끊임없이 존재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시각적으로 재현하고자 했다. 그는 일상의 평범한 사물을 화면에 도입해 환상적인 분위기 또는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시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면서 독자적인 초현실주의 세계를 개척하였다. 그래서 그의 그림 앞에 서면 뭔가 생각을 해야만 할 것 같다. 낯익은 형상들을 결합한 그림인데도 이미지나 느낌은 낯설다. 추상에 가까운 작품을 추구해온 다른 초현실주의자와 달리, 마그리트는 사과 돌 새 벨 등 낯익은 대상을 엉뚱한 환경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d´epaysement) 기법’으로 충격과 함께 신비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사물을 엉뚱한 곳에 갖다 놓는 ‘고립’, 이질적 사물을 결합하는 ‘사물의 잡종화’, 두 사물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축하는 ‘이미지의 중첩’,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사물을 한 그림에 넣은 ‘패러독스’ 등이 그가 즐겨 쓴 기법이다.
특히 마그리트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비정상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해 낯선 것으로 만들어 한층 신비롭게 보이도록 연출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또한 그의 그림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구(새알), 파이프, 새, 검은 중절모 등은 보통 작가들의 경우처럼 작품을 읽는 열쇠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 불가능한 모호함을 던진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생각하는 그림이며, 상식을 뒤엎는 창의적인 사고를 자극하는 그림이다. 작품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 한 그의 시도는 항상 신비와 환상과 미스터리를 자아낸다.
◇마그리트 그림에 비춰본 경제학 사고실험
마그리트의 그림은 비틀즈의 음악, 소설이나 영화, 광고와 같은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많은 창작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는데, 이런 면은 그가 광고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가상현실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1999)에서 스미스 요원 여러 명이 자기복제 되어 동시에 등장하는 유명한 장면은 바로 마그리트의 ‘겨울비(Golconde)’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마그리트 작품 중에서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는 날아가는 새와 알의 둥지를 대비한 ‘회귀’, 신사의 초상에 파이프를 갖다 둔 ‘신뢰’, 평야에 거대한 직육면체 돌덩이 구조물을 그린 ‘대화의 기술’ 등을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제목은 그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되는데, 그 이유는 제목이 사유(思惟)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보이지 않는 선수(The Secret Player)’(1927)를 보자. 이 그림은 마그리트 작품 중 가장 수수께끼 같은 작품일 것이다. 두 명의 남성은 분명 땅을 짚고 서 있는데 오히려 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코르셋으로 몸을 조이고 입까지 가려진 채 마치 작은 방에 가둬진 것 같은 여인을 보면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 선수’는 과연 어디에 있으며, 어색하게 보이는 이 선수들이 무슨 경기를 하고 있는지 관람객들은 알 수 없다. 작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인지 그 의도를 좀처럼 파악할 수가 없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안에서도 마그리트처럼 ‘보이지 않는 선수’가 있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한다. 경제학자의 사고실험(Gedanken-experiment)은 이렇다. 경제학자들은 시장 안에, 마치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요정과 같은, ‘보이지 않는 경매인’(invisible auctioneer)이 있다고 가정한다. 물론 현실의 시장에 요정처럼 안 보이는 경매인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시장 모형 구축의 논리적 편의상 이러한 경매인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보이지 않는 경매인의 임무는 가격을 정하는 일이다. 시장이 처음 열리는 날 아침, 이미 상품들의 가격은 매겨져 있다. 이 가격표는 누가 붙여놓은 것인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경매인에 의해서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시장에 오면 이미 매겨져 있는 가격표를 보고 자신들의 소비계획과 생산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수수께끼 달래주는 ‘보이지 않는 손’
그러면 과연 시장 참여자들의 거래 결과는 사회 전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초래하게 될까? 이에 대한 답은 쉽지 않다. 사실 이 주제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스미스는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 듯하다. 어떻게 해서 이기적인 동기에 의한 각 시장참여자의 행위가 총체적으로 사회적인 선(social good)을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다음과 같은 예화로써 시장의 기능과 그 혜택을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아침에 마시는 우유 한잔은 아침 일찍 배달한 우유배달부 덕분이다. 또한 우리가 아침에 먹는 따뜻한 빵은 고맙게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빵을 구운 빵장수 덕분인 것이다. 그들의 정성과 부지런함으로 우리는 아침에 편안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 목장이나 빵가게 주인은 우리의 아침식사를 위해서 그렇게 일찍 일어나 수고를 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 즉 자신의 이익과 소득을 위하여 열심히 생산하는 수고와 노동을 기꺼이 감당한 것이다.’
시장에 공급되는 상품은 소비자들의 만족을 위해서 생산자들이 이타심과 희생정신을 발휘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기적 동기에 의해서 생산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또 그러한 이기적 동기에 의한 경제활동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들의 후생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 시장의 기본적 기능이다. 이러한 시장 기능을 처음으로 보여주려고 한 사람이 바로 애덤 스미스다. 그는 시장에서 가장 효율적인 자원 배분 상태를 의미하는 균형상태에 도달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려고 하였으나, 그 과정을 명확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 도달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시장 메커니즘은 어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에 의해서 경제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시장의 균형상태는 그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가능하다’라고.
지난 1년 동안 귀중한 지면을 할애해준 한국일보와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