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호숫가. 공원 산책로를 따라 한 마리 개가 여유 있게 걸어가고 있다. 편안한 운동복 차림에 한 손에 커피를, 한 손에는 목줄을 잡아든 모습이 영락 없는 사람 같다. 그러나 웬걸, 정작 사람은 목줄에 꽁꽁 매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다. 혓바닥을 내밀고 눈을 치켜 뜬 사람은 손과 발로 힘겹게 기어서 ‘개 주인’을 따라가고 있다. 또 다른 그림에선 올빼미들이 인간을 만지고, 사진을 찍으며 마치 장난감 다루듯 한다. 애견카페를 본 딴 ‘휴먼카페’다.
권정민 작가의 ‘이상한 나라의 그림 사전’은 이처럼 인간과 동물의 입장을 뒤바꿔 놓은 도발적인 그림들로 가득하다. 인간을 잡아 올린 토끼 사냥꾼, 매미채로 인간을 잡는 매미들, 낚시대로 인간을 잡아 올린 물고기, 인간을 훈련시키는 돌고래들, 예쁘고 멋진 인간을 뽑는 인간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다양한 개들이 충격을 안긴다.
그런데 인간 행세를 하는 동물들의 표정은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 같이 심드렁할 뿐. 동물이 된 인간들은 당연히 두려움과 슬픔으로 몸부림 친다.
권 작가는 동물들의 무력한 처지와 이를 바라보는 인간들의 오만함과 무심함을 도치시켜 표현했다고 말한다. 보는 순간 당황스럽고 불편한 그림들은 인간에게 묻는다. 과연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지. ‘반려’동물이란 아름다운 말 뒤에 숨어 따뜻한 관계를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린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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