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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32% “아동 음란물 제작죄 3년형이 적정”… 구시대적 양형 인식

입력
2020.04.28 04:30
수정
2020.04.28 17:0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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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n번방 막아라] <상>잔인한 범행, 무딘 법

아청법 음란물 제작죄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 및 관리에 관여한 '부따'(텔레그램 닉네임) 강훈이 지난 17일 오전 얼굴을 노출한 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을 도와 대화방 운영 및 관리에 관여한 '부따'(텔레그램 닉네임) 강훈이 지난 17일 오전 얼굴을 노출한 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3일 아동ㆍ청소년 이용 성착취물 제작 등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대책을 내놨지만 현실에서 처벌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디지털성범죄의 양상이 기존 성범죄와는 완전히 다른데도 범죄 특성에 대한 구체적 검토 없이 관행대로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정부가 법정형이나 양형 기준을 높이더라도 정작 디지털 성범죄자에 대한 법원 판단은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회의론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판사들 “아청 성착취물 제작 형량 3년이 적절”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법관들의 보수적 인식부터 강력한 처벌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다수의 판사들이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판매ㆍ유포한 범죄자의 양형에 관해 현행 법정형보다도 관대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도 설문조사 등을 통해 드러났다.

27일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업무보고서에 따르면, 양형위가 지난달 4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법원의 1심 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68명 중 아동ㆍ청소년 음란물 제작 범죄에 대한 적정한 양형(감경ㆍ가중을 배제한 양형)으로 ‘징역 3년’을 꼽은 판사가 211명(31.6%)으로 가장 많았다. 아동ㆍ청소년 성보호법 11조 1항 음란물 제작죄의 법정형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인 점을 고려하면 법정형 하한보다도 낮다.

징역 3년에 이어 ‘5년’ 23.7%(158명), ‘2년6월’ 14.8%(99명), ‘3년6월’ 12.9%(86명) 순이었다. 설문에 응답한 판사의 절반 이상의 인식은 법정형 하한 이하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피해자의 연령과 죄질 등을 따져 형량을 높이는 ‘가중 형량’(665명 응답)도 ‘5년’(37.9%ㆍ252명)이 가장 많이 나왔다. 가중 사유를 고려해도 ‘4년 이하’가 적당하다는 의견도 14.1%(94명)나 됐다. 범행 빈도나 반성의 정도를 따져 형량을 깎는 적정 ‘감경 형량’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7.9%(385명)가 ‘2년6월’이라고 답했다.

아동청소년음란물범죄
아동청소년음란물범죄

제작 이외의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 판매 및 배포(응답자 각각 662명ㆍ661명)에 대해서도 법정형 하한에 못 미치는 의견이 주로 제시됐다. 아동ㆍ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영리 목적으로 판매하는 범죄에 대해선 ‘3년 이상’(33.4%ㆍ221명)이, 배포 범죄에 대해선 ‘1년’(20.0%ㆍ132명)이 적정하다고 답한 판사가 가장 많았다. 현재 영리 목적 판매ㆍ배포 등 행위에 대한 법정형은 ‘10년 이하의 징역’, 단순 배포ㆍ제공 및 전시 행위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현재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양형위원회는 다음달 18일 기준안을 의결한 뒤 오는 6월 22일 공청회에서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기존 형량보다는 높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형사사법 전문가들 사이에선 판사들의 인식에 더해 과거 판결을 바탕으로 하는 관행상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결과가 도출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양형기준은 과거 1심 판사들이 특정 범죄에 대해 선고한 형량의 평균 값을 구해 이를 약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제정돼 왔다”며 “종래 방식을 답습한다면 디지털성범죄에 대응해 양형 기준을 새로 만들어도 실효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성ㆍ심신미약 등 감경 요소 도입도 논란

양형기준 제정 과정에서 ‘진지한 반성’ 등의 감경 요소 도입이 검토되는 데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성착취물이나 불법 촬영물은 완전히 삭제되지 않아 사실상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존 범죄 양형기준과 동일선상에서 평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양형위 업무보고서에도 전문위원 12명은 ‘자수’ ‘심신미약’ ‘소극가담’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등 감경 요소를 설정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형위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려도 판사들의 찬성 비율이 높아 도입이 검토될 가능성이 큰 감경 요소들도 있다. 피고인이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했을 경우’의 특별 감경 요소가 대표적이다. 전문위원 12명은 이에 대해 찬ㆍ반 의견을 절반씩 냈으나, 판사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유포된 음란물을 상당한 비용, 노력을 들여 자발적으로 회수한 경우’ 감경이 가능하다는 응답 비율이 73%나 됐다. ‘본인이 제작한 아동ㆍ청소년 음란물을 스스로 폐기한 경우’에는 감경이 가능하다는 응답도 64.2%였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성범죄는 한번 유포되면 순식간에 2, 3차 피해가 발생하고 피해자 낙인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기존 범죄와 양상이 전혀 다르다”라며 “양형기준 마련에도 완전히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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