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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처벌, N번방 재범 막는 첫 단추다”

입력
2020.04.30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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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성범죄자 심리교정 전문가가 말하는 ‘n번방 강력처벌이 필요한 이유’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중 한명인 '켈리' 신모씨의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던 22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과 사법부를 비판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중 한명인 '켈리' 신모씨의 항소심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던 22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검찰과 사법부를 비판하고 있다. 춘천=연합뉴스

“성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재범을 막는 만능열쇠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없어선 안 될 첫 단추입니다.”

성폭력 가해자 심리교정 전문가인 현혜순(65) 한국여성상담센터장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상담보다는 강력한 처벌을 성범죄 우선 대책으로 꼽았다. 27일 서울 성북구 센터에서 만난 현 센터장은 “느슨한 사법체계로는 아무리 심리교정을 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현 센터장은 국내 성범죄자에 대한 교정 체계가 전무하다시피 했던 2000년부터 20년 가까이 전국 교도소, 보호관찰소, 구치소 등을 돌며 교정과 상담을 통해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해 온 베테랑 심리상담사다. 여성가족부 의뢰로 발간된 성폭력 가해자 교정ㆍ치료 매뉴얼(2005ㆍ2010년)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성폭력 가해자를 지근 거리에서 관찰해온 현 센터장은 텔레그램 ‘n번방’과 같은 디지털 성폭력 대책에서도 엄격한 처벌을 우선 대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재판에서 잘못을 뉘우친다고 말하는 가해자들도 막상 상담을 시작하면 90% 이상은 왜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으로 규정되는지 이해 못한 채 범행을 부인하고 정당화한다”며 “특히 성폭력의 원인인 왜곡된 성인식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자신은 ‘운이 나빠’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고 설명했다. 현 센터장은 “이런 가해자가 책임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수많은 교정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시작부터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다면 대체 어떻게 이들을 반성하게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재범 이상의 성범죄자 중에는 자신이 범행을 저지르고도 처벌 받지 않는 ‘적중률’이 80~90%라고 자랑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성폭력 가해자 심리교정 전문가인 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장. 본인 제공
성폭력 가해자 심리교정 전문가인 현혜순 한국여성상담센터장. 본인 제공

현 센터장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들의 초기 심리상태는 사실상 피해자와 동일하게 나타난다. 텔레그램 ‘박사방’을 운영한 공익근무요원 출신 강훈(18)이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에서 가해 행위에 대한 반성 없이 “제 가족과 지인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던 것이 절대 예외적인 일이 아니란 뜻이다. 현 센터장은 “본인이 가해자로 규정되는 데 대한 억울함, 수치심, 분노, 불안 등을 공통적으로 호소한다”며 “이를 넘어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게 만드는 게 교정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성범죄자들을 만난 현 센터장에게도 n번방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는 “n번방 가해자들은 피해자에 대한 감정이 말살된 채로 피해자를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점에서 더없이 악랄하다”며 “한 인간을 철저히 파괴시키면서 헛된 권력욕, 과시욕을 느낀 것인데, 우리사회가 키워 온 잘못된 남성성과도 연결된다”고 꼬집었다.

현 센터장은 무엇보다 n번방 피해자들에 대한 낙인을 경계했다. 그는 “n번방 피해자 여성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성폭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라며 “성폭력은 당사자 간 동의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피해자가 어떤 사람이든 협박을 동원한 성착취는 전적으로 가해자의 책임으로 사회가 받아들여야만 재범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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