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n번방을 막아라] <중>왜곡된 성의식, 겉도는 성교육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성범죄 근절을 위한 범정부 대책까지 나왔지만 이를 비웃듯 온라인 메신저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아직도 성착취물이 공유되고 있다. 공급자나 수요자의 다수가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10대들이다. 입장 면접을 거치는 등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 일당이 검거된 이후 이들의 공유 방법은 더욱 은밀해졌다.
28일 확인한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 중에는 사전에 면접을 통해 회원을 가려서 받는 불법 음란물 공유방도 존재했다. 수사망이 촘촘해지자 대화방 참여자의 신원을 더욱 철저히 검증하기 위한 ‘그놈’들만의 절차다. 이 대화방에서는 △면접 신청 △면접관에게 ‘갠텔’(개인 텔레그램 메시지)로 여자 중ㆍ고등학생 사진 10장 전송 △보내준 인터넷 링크를 통해 입장이란 순서를 안내한다. 따르지 않을 경우 대화방에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다.
이런 대화방들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게릴라식으로 새로운 방으로 옮기고 이전 방은 ‘폭파’하는 게 특징이다. 입장을 했더라도 음란물을 올리지 않거나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회원들을 가려내 주기적으로 탈퇴시킨다.
박사방은 암호화폐로 입장료를 받고 대화방 링크를 보내주는 식으로 유료회원을 모집했다. n번방은 링크를 검색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대학생들로 구성된 ‘추적단 불꽃’과 수사관 등도 대화방에 들어갈 수 있었고, 추악한 범행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텔레그램 성착취방 관련 제보자 김재수(가명)씨는 “음란물을 먼저 보내게 하는 면접 과정은 만일에 대비해 공범으로 만들려는 꼼수”라고 설명했다.
비뚤어진 성의식이 텔레그램에서 발현되는 이유로는 수사가 제한적인 현실도 거론된다. 그들의 세계에선 ‘증거만 잘 없애면 잡히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통한다. 텔레그램 사용에는 전화번호 이외 어떤 개인정보도 필요하지 않아 잘만 하면 익명성을 유지할 수 있고, 텔레그램 본사가 어떤 국가 수사기관에도 자료를 주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다.
조주빈이 범죄 수익 세탁에 활용한 암호화폐 역시 쉽사리 수사망에 잡히지 않고 있다. 조씨는 익명성과 보안등급이 가장 높은 ‘모네로’를 주로 사용했다. 조씨가 스스로 암호를 제공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이 거래 내역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홍준영 핀테크연합회 의장은 “수사를 피하기 위한 기법들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어 모네로보다 더 강력한 암호화폐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장담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성착취물에 중독된 이들이 ‘수요자’에서 ‘제작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특히 지난 22일까지 경찰에 검거된 디지털 성범죄자(340명) 중 10대는 106명(31%)에 이른다. 미성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함께 올바른 성의식 교육이 필요한 상황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조종하는 과정에서 쾌감을 느끼는 왜곡된 성인식을 가진 이들은 외부의 비난에도 쉽게 끊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입시나 성적의 압박이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성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부인할 수 없어 처벌과 동시에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안하늘 기자 ahn70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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