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이 코로나19에 침체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이후 이른바 ‘n번방 방지법안’들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는 20대 국회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범위와 형량을 높이는 안, 미성년자 성착취물의 소지를 처벌하는 안, 성폭력을 모의하는 예비ㆍ음모를 처벌하는 안뿐만 아니라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현재 13세에서 16세로 높이는 안도 포함이 되어 있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는 미성년자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강간으로 처벌하는 범죄로, 현재 우리 형법에서는 이 기준을 13세 미만으로 규정하고 있다. 13세 이상인 미성년자, 즉 대략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 정도에 해당하는 청소년과의 성관계인 경우에는 폭행이나 협박, 위력이 동원되거나 청소년을 속여서, 혹은 금전적인 대가를 주고 성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 인정되었을 때에 처벌받는다. 그러나 13세 미만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하는 경우에는 강압이나 강요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처벌되는 것이다. 13세 미만은 성관계에 동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이 미성년자 의제강간이다.
지난 23일 국무조정실은 관계부처 합동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했다. 청소년 성착취물만이 아니라 성인 대상 성범죄물을 소지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디지털성범죄의 처벌을 확대ㆍ강화하려는 이번 정부의 종합대책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지지부진한 대응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16세 미만으로 상향하겠다는 정책이 담겨 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통해 미성년자에 대한 보호의 사각지대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기준 13세가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논란이 되어 왔다. 13세는 너무 낮으며 적어도 중학생인 16세까지는 포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준 것은 13년 몇 개월인 청소년들의 성폭력 사건들이다. 가출한 13세 지적장애인인 피해자가 6일 동안 7명의 성인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과 법원은 이들을 아동성폭력이 아닌 아동성매수로 처벌하였는데, 그 이유는 피해자가 13세가 된지 몇 개월이 지났고 채팅방을 스스로 개설했으며 잠자리나 떡볶이, 치킨 등 대가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성인 남성을 만나 성폭행을 당한 막 13세가 된 피해자 역시 성폭력 피해자로 인정되지 못했는데, 채팅방에서 피해자가 먼저 차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아마 13세 생일이 지나기 전이었다면, 그 사건이 몇 개월 전에만 일어났더라면 가해자들은 모두 의제강간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다.
당시 여론은 몇 개월의 차이로 죄명을 가르는 형법에 대해 분노를 터뜨렸다. 청소년의 성이 보호되어야 할 연령 기준을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13세 이상인 청소년들에게 성인 영화는 불허하면서 성행위는 왜 허용하는 것인가?” 외국에 비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너무 많이 허용하고 있다는 비판들도 나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의제강견 연령을 상향하면 이 문제가 해결되냐고 묻는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16세로 올린다는 것은 곧 16세 미만인 청소년들에게 성적인 동의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의미이다. 청소년들의 권리를 부정함으로써 얻는 보호에 대해 청소년들은 고개를 젓는다.
과연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면, 디지털 성범죄가 해결되는 것일까? 청소년 성폭력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고 성매매나 음란물 유포로 경미하게 다루어져 왔던 것이 연령 기준이 낮아서일까? 앞선 13세 몇 개월 사례들에서도 드러나듯이, 아동이나 청소년들의 성을 이용하려는 가해자들은 이들이 가출해 오갈 데가 없는 상태를 이용하거나 채팅방에서 대화하고 칭찬이나 선물로 신뢰를 얻는 상황을 이용하여 접근한다. 청소년들의 미숙함이나 취약한 상태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폭행ㆍ협박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현재 우리 법률은 청소년인 경우 위력이나 위계,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성폭력을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폭행이나 협박이 없더라도 청소년의 취약성을 이용하여 성을 착취한 경우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검찰이나 법원이 눈에 보이는 강압이 없는 경우나 피해자가(비록 나이가 어리더라도)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단하면 성폭력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데에 있다. 앞선 사례들은 사법기관이 폭력이 가시화되지 않는 착취의 조건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들이다.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사실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다. 16세까지는 법이 판단하지 말고 무조건 처벌하라는 요구이다. 사법기관이 바뀌길 기다리는 것보다는 더 쉬운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엔 16세 몇 개월 사례들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청소년들의 성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모든 행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대응하지 않는 한 완전한 해결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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