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영향 외교ㆍ군사도 신냉전
남북 협력, 특정 분야 집중 전략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인해 각 국가들이 평화에서 멀어지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우리의 대비도 필요하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서울대 명예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26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2020 한국포럼’에 특별 강연자로 나서 ‘팬데믹 이후 세계질서와 한국’을 주제로 강연하며 이같이 밝혔다. 윤 전 장관은 특히 나날이 격화하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을 두고 “미ㆍ중이 아직 상호 공생의 방법을 찾지 못해 세계평화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는 상태”라며 “가능하다면 미중 갈등에서 한반도 문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일했던 윤 전 장관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세계경제질서와 외교ㆍ군사질서가 전환기에 들어섰다고 설명한 뒤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조언했다. 우선 세계경제는 70여년을 이어 온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맞닥뜨리고 있다.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상호의존했던 시기는 미중 무역갈등과 함께 이미 균열이 가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국가의 역할이 더욱 강화된 것이 요인이다. 각국은 국경 봉쇄와 이동 통제 정책을 내놨고, 이 결과 디커플링(탈동조화)과 블록경제로 나아가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게 윤 전 장관의 설명이다. 그는 “미국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중국의 불공정 경제관행이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결국 미국과 가까운 나라들이 미중 간 선택을 강요 받는 상황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봤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 대결과 블록화 양상이 정치ㆍ군사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블록 경제는 1930년대로의 회귀이며, 서로가 서로를 경제적으로 궁핍화하는 전략은 (당시에도) 정치적 재앙으로 이어져 제2차세계대전 발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서 현재 국제정치무대에서는 리더십 공백도 발생했다. 윤 전 장관은 “미국 영향력의 공백이 생긴 상황에서 중국이 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적극적인 의료외교와 지원외교를 펼치고 있고 미국은 이를 억제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경쟁으로 인해 외교ㆍ군사 질서도 신냉전으로 나아갈 것으로 그는 관측했다.
다만 윤 전 장관은 “아직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할 타이밍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양측으로부터 받는 압력이 증가할수록 투명성ㆍ합리성 등의 원칙을 가지고 그 때 그 때 사안에 대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기적으로 한국의 입장이 명확해야 미중 틈바구니에서 휩쓸리기만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고도 했다.
또 남북문제는 가능하다면 미중 갈등에서 분리할 것을 제언했다. 윤 전 장관은 “한반도 문제가 미중 갈등에 휩쓸려가는 걸 막는 노력은 한국밖에 못한다”며 “남북 간 협력이 가능한 특정 분야를 선택해 집중하는 게 현실성 있고 현명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 간 보건의료협력을 예로 들면서 “K방역으로 한국의 국제 이미지가 좋고, 의료외교가 활발하기 때문에 국제사회를 설득하기 좋은 기회”라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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