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오인으로서 정체성
※시대의 독설가, 피아 구분 없는 저격수를 자처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여러 현상들을 미디어 이론을 통해 조명해보는 글을 씁니다. 매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연재합니다.
왜 그냥 흘려 보내지를 못할까. 조국도 그렇고, 윤미향도 그렇고, 한명숙의 경우에는 아예 확정된 대법원 판결까지 뒤집으려 한다. 언제 이런 적이 있었던가. 왜 그럴까. 대통령 특유의 ‘내 식구 철학’, 운동권 출신 참모들의 ‘혁명적 의리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정청과 지지층이 한 몸이 되어 보여주는 저 집단적 강박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 집착에는 뭔가 다른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거울단계
라캉의 ‘거울 단계’ 이론이 도움이 될까. 이 정신분석학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동물은 거울 속에 비친 영상을 자신으로 인지하지 못한단다. 다만 침팬지의 경우 자신을 알아보기는 하나, 그게 자신임을 인지하는 순간 바로 거울에 흥미를 잃어버린다. 하지만 인간의 아기는 다르다. 그는 거울에서 자신을 인지할 뿐만이 아니라, 매우 즐거워하며 거기에 비친 제 모습에 마냥 빠져든다고 한다. 왜 그럴까.
유아는 불완전한 존재다. 그의 지각능력(sensoric)은 파편적이다. 제 눈으로는 제 몸의 부분, 부분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운동능력(motoric) 역시 파편적이다. 아기는 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아기가 거울을 통해서는 자신의 온전한 형태를 보게 된다. 거울 속에서 아기는 조각나지 않은 통합된 자기를 본다. 거울상은 유아의 ‘이상적 자아’다. 그것을 보고 아기는 한없이 기뻐한다.
하지만 거울 속의 온전한 자아는 성장을 통해 도달해야 할 목표일 뿐, 현실의 아기는 여전히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이 괴리는 아이를 불쾌하게 만든다. 그 괴리를 극복하려고 아기는 자기를 이상적 자아와 공격적으로 동일시하고(identify), 그것을 통해 정체성(identity)을 갖게 된다. 정체성이란 이렇게 현실적 자아를 이상적 자아로 착각하는 오인(méconaissance)의 결과로 발생한다.
거울단계 이론을 꼭 유아의 발달이론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인’에 의해 정체성을 확보하는 기제는 성인의 경우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 거울상은 신이나 성자일 수도 있고, 국가나 민족일 수도 있고, 민중이나 계급일 수도 있으며, 대통령이나 아이돌 스타일 수도 있다. 그 거울상과의 동일시를 통해 인간은 독실한 신도, 애국투사나 혁명전사, 혹은 충성스런 팬으로서 제 정체성을 얻게 된다.
◇상상계 실재계 상징계
정체성 자체가 근본적 ‘오인’의 산물이기에 동일시를 통해서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괴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자아는 실재계, 이상적 자아는 상상계에 속하므로, 두 자아 사이에는 언제나 균열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조국 교수가 미디어를 이용해 연출해 온 자아는 상상계에 속하고, 수사를 통해 밝혀진 그의 자아는 실재계에 속한다. 두 자아의 분열이 이처럼 극단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에 ‘오인’이 불가피하다. 그 오인이 꼭 나쁜 것도 아니다. 그 이상적 자아(ideal-I)를 ‘자아의 이상’(I-ideal)으로 삼아, 끝없이 자신을 그리로 끌어올리려 한다면, 그때 그 ‘오인’은 생산적인 착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이미지로 이루어진 상상계에서 언어와 논리로 이루어진 상징계로 빠져나와, 거기서 이성적 반성을 통해 현실의 자아를 객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상징계로 진입하는 게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허위 인턴증명서를 써 준 최강욱이 거짓말을 멈출 수 없는 것도 아직 그 ‘오인’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체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자신을 ‘이상적 자아’와 동일시한다. 그의 상상계에서 그의 정체성은 여전히 민변 출신의 정의로운 인권변호사다. 그런 분이 허위 증명서로 없는 집 자식들 입학기회나 빼앗는 잡것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사회에는 이렇게 상상계에 갇힌 이들에게 그들의 실재계를 냉정히 보여주는 상징계의 질서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언론과 검찰이다. 최근 민주당 지지자들이 ‘떡검’과 ‘기레기’에 집중포화를 퍼부어대는 것은 이 두 기관이 그들의 상상계를 무참히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오인을 통해 형성한 정체성, 순결한 개혁투사의 환상을 유지하려면, 실재계를 드러내는 이 두 기관부터 무력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제2의 거울단계
거울 앞에 선 아기의 환상을 위협하는 요소가 있다. 바로 어머니다. 아기는 자기를 들어 나르는 엄마의 몸을 보며 자기가 실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이 불쾌함을 떨치려고 자신을 거울 속 이상적 자아와 더 공격적으로 동일시하고, 그 결과 마침내 그것을 자기의 실제 모습으로 착각하게 된다. 성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표상하는 이는 거울에 비친 현재의 제 모습을 외려 낯설게 느낀다.
민주당의 주류인 586세대가 바로 그런 경우로 보인다. 그들은 자신이 곧 이상적 자아라고 굳게 믿는다. 상상계 속에서 그들은 여전히 과거의 정의로운 민주투사다. 하지만 실재계의 그들이 그렇게 고결할 리는 없다. 그들도 뇌물을 받고, 비리를 덮고, 여론을 조작하고, 상장을 위조하며, 높은 분을 위해 선거개입도 한다. 펀드투자로 강남에 건물을 살 꿈을 꾸고, 남의 자식은 북한 가라면서 제 자식은 미국 보낸다.
실재계는 그들의 상상계를 위협한다. 상상계를 지키려면 실재계의 침투를 차단해야 한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얼마 전에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노무현 재단을 향한 검은 그림자는 좀처럼 걷히지 않았다.” ‘노무현 재단’을 운영하는 것은 그들의 고결한 이상적 자아가 아니라 때 묻은 현실적 자아. 행여 거기서 비리라도 터지면 그들의 상상계는 무너진다. 그래서 지레 ‘검은 그림자’(검찰?)를 경계하는 것이다.
양정숙을 내친 민주당이 윤미향을 놓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양정숙은 민주당이 주류 586세대의 상상계와는 별 관계가 없다. 윤미향은 다르다. 그는 그들이 공유하는 NL 운동권 서사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총선을 아예 ‘한일전’으로 치른 그들이 아닌가. 조국에 이어 윤미향까지 낙마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이루는 운동권 서사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당 대표가 나서서 소속의원들에게 함구령까지 내린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그들은 여전히 자신을 이상적 자아로 오인한다. 자신을 젊은 시절의 모습으로 오인한 이들은 거울에서 현재의 제 모습을 알아보지 못한다. 잘못이 드러나도 그들이 끝까지 잡아떼는 것은 이 ‘오인’ 때문이다. 이상적 자아는 그 정의상 잘못을 할 수가 없다. 고로 잘못이 있다면, 언론이 잘못한 것이요, 검찰이 잘못한 것이요, 법원이 잘못한 것이다. 여전히 정의로운 그들은 그저 이들 기관을 ‘개혁’할 역사적 사명을 가질 뿐이다.
저들이 언론과 검찰을 때려대는 것은, 자신을 이상적 자아와 동일시하는 공격적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상상계를 유지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처절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망라한다. 현재의 비리는 거짓말로 잡아떼고, 미래의 비리는 음모론으로 김을 빼고, 과거의 비리는 재수사로 뒤집는다. 이처럼 전 시간대에 걸친 전방위 은폐로 그들은 실재계를 차단하고 자신들의 상상계를 관리해 나간다.
이들의 상상계는 그것을 믿어주는 대중의 도움으로 유지된다. 그들은 대중을 자기들의 유아적 환상에 철저히 가두어 놓았다. 민주당 팬덤의 전(全) 세계관은 ‘떡검ㆍ기레기ㆍ토착왜구ㆍ뭉클ㆍ울컥ㆍ사랑해요ㆍ지키자’라는 일곱 마디로 남김없이 기술된다. ‘떡검ㆍ기레기ㆍ토착왜구’는 그들의 인지모드, ‘뭉클ㆍ울컥’은 감성코드, ‘사랑해요ㆍ지키자’는 행동강령이다. 시그널이 내려오면 그들은 기꺼이 586 상상계를 수호하는 성전의 전사가 된다. .
민주당의 586세력은 결코 늙지 않는 도리언 그레이를 닮았다. 자기들의 상상계 안에서 그들은 여전히 독재정권의 후예와 싸우는 정의롭고 순결한 투사들. 하지만 실재계의 그들은 그저 도리언 그레이 대신에 늙어갔던 초상화에 가깝다. 그레이는 초상화의 그려진 그 추한 노인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는 사실을 끝내 인정하지 못한다. 스토리의 결말은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이다. 민주당의 운명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진중권 미학자, 전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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