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기본소득논쟁은 반가운 일
약자의 복지 줄이는 기본소득은 퇴행적
증세없는 복지확대론은 포퓰리즘
나비효과. 남미 아마존 나비들의 날갯짓이 일련의 연쇄효과를 통해 북미에 폭풍을 가져온다는 이 이론은 우발성을 중시하는 현대과학을 대표하는 이론 중 하나다. 우리의 복지제도도 그러하다. 우리 사회에 보편적 복지를 본격화한 것은 정의당과 같은 진보 정당도, 민주당도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김상곤 전 교육부장관이었다. 그는 2009년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을 내세워 승리했고, 그 나비효과가 바로 무상 시리즈로 이어진 보편적 복지제도의 도입이었다. 총선에서 참패한 미래통합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나비효과는 이번에는 기본소득으로 나아가고 있다. 코로나19 덕분으로 정부가 유례없이 배분한 긴급재난지원금이 호평을 받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정권의 초기 복지 정책부터 박근혜의 경제 민주화 공약까지 관여해온 그가 이를 지지하고 나섬으로써 이에 대한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정책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박수를 칠 일이다.
기본소득은 우리의 미래와 관련된 중요한 대안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를 결정해야 한다. 기존의 복지 프로그램을 어찌할 것인가 하는 복지의 우선 순위 문제이다. 김부겸 전 행안부장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본소득보다 고용보험 확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586그룹인 더좋은미래가 기본소득이 복지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긴급한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 프로그램을 없애거나 확대를 미루고 모두에게 일정액을 주는 기본소득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이는 오히려 퇴행적이다. 이에 대해 기본소득 지지론자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은 “구조적 불황을 국가 재정을 통한 수요 확대로 이겨내는 경제정책인데 복지정책이라는 착각 속에서 재원 부족, 증세, 기존 복지 폐지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이지만 경제 회복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한다면 모를까 복지 정책이 아니라 경제 정책이라고 주장하는 것 등은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복지 정책이냐 경제 정책이냐는 분류학적 문제는 논외로 하면, 기존의 복지 정책은 그대로 두거나, 더 확대해 나가면서 경제 정책으로 기본소득을 추가하자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대찬성이다. 그럴 경우 엄청난 재원이 필요한데 재원 부족론이나 증세론은 착각이라니 혼란스럽다. 기본소득, 특히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기존 복지를 폐지하지 않는 기본소득을 주장하려면, 당연히 증세 역시 주장해야 한다. 증세로 인한 민심의 이탈은 피하면서 기본소득으로 인한 인기 상승은 얻으려는 것은 ‘비겁한 포퓰리즘’이다. 다행히 이 지사가 최근 “본격적인 기본소득을 하려면 당연히 증세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에 박 시장은 재원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고용보험 확대가 우선이라는 말함으로써 증세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시사했다. 한국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약 4명(76%)이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더라도 복지를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여권은 증세는커녕 강남 등 집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지난 총선에서 1주택자의 보유세 완화까지 공언한 바 있다. 보수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권의 의식조차도 대중에 못 미치고 있다는 이야기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석학 중에 제임스 부캐넌이란 학자가 있다. 그의 대표작이 “민주주의는 재정 적자를 가져오는 경향이 있다”는 ‘적자 민주주의’란 책이다. 민주주의 아래에서 정치인은 장기적으로 나라가 어찌되건 자신의 재선 가능성을 극대화하려고 행동하게 되어 있는데 복지 등 정부 지출은 인기가 있는 반면에 세금은 인기가 없기 때문에 지출은 늘리고 세금은 줄이려 하며 그 결과 적자가 누적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쉬운 말로, 민주주의는 나쁜 의미의 포퓰리즘으로 흘러 재정 적자를 누적시킨다는 것이다. 증세 문제를 피해가는 기본소득이나 복지 확대 논쟁은 정확히 부캐넌이 우려한 ‘적자 민주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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