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연쇄살인 8차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나온 연쇄살인범 이춘재(57)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변명의 태도였다는 게 재판을 지켜본 전문가들의 평가다.
전날 방청석에서 이춘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본 한 경찰관은 3일 “처음 조사 때도 그랬지만 이번 법정 진술을 종합하면 ‘내가 자백했으니, (유가족 등은) 이제 평안히 쉬어라’라는 식의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다”며 “이는 굉장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춘재가 자신의 입으로 자백은 했으되, 거기에 사죄나 반성의 진정성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여성을 보고 달려가 제압하면 일부 여성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가만히 있었다”라거나 “두 자매(강간피해자)에게 ‘나를 따라오라’라고 했더니 순순히 따라왔다”는 등의 진술도 그 연장선에 있다. 경찰 관계자는 “두려움에 마지못해 끌려간 여성들의 마음을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해 답변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춘재는 또 진정성 담긴 사죄 대신 피해자와 그 유족들에 대한 ‘바람’을 피력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법정에서 검찰이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에 대해 할 말 없느냐”고 묻자 그는 “제가 이 자리에서 증언하는 것도 작은 위로의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또 “(이 자리에 내가 섰으니) 그들(유족)이 마음의 평안을 조금이라도 얻었으면 한다”라거나, 자신을 대신해 억울하게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성여(53)씨에게 “모든 일이 제자리로 돌아가서 앞으로의 (윤씨) 삶이 더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발언이다.
이춘재는 전날 오후 1시 30분부터 오후 6시 5분까지 4시간 넘게 진행된 재판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자세로 증인석을 지켰다. 감정의 기복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34년 만에 세상에 나타나 14건의 살인사건과 35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를 재차 자백하는 등 자포자기하는 일반적인 범인들의 모습으로 비칠 수 있지만,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 위한 모습으로 분석됐다
이춘재를 조사했던 이 경찰관은 “처음 조사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에 머물고 있다”며 “경찰이 자신을 접견하러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언젠가 밝혀질 줄 알았다’, ‘올 것이 왔구나’ 했다고 한 대목은 자신을 위해 자백에 나선 것임을 확인해준다”고 말했다. 전날 재판에서 범행동기를 묻는 질문에 “즉흥적인 살해”라며 끝까지 자신의 과거 속내를 밝히지 않는 것도 사죄보다는 자신의 안정을 위한 발언이라는 것이다.
전날 법정에서 보인 이춘재의 태도는 예상됐던 것이기도 하다. 반기수 연쇄살인사건 당시 수사본부장도 “처음에는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가 이후 자신의 건강과 교도소 생활에 대한 걱정만 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이춘재는 “가족이 소중한가”라는 8차 재심을 맡은 박준영 변호인의 물음에 “네”라고 답했지만. 박 변호사가 재차 “당시 피해자 중에는 증인의 동생과 같은 또래도 있다”고 하자 “그건 잘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해 본적 없다”고 답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이 이춘재의 자백과 사죄에 진정성이 없다고 보는 이유다.
나원오 경기남부경찰청 형사과장은 “그의 자백에는 ‘피해자가 잘못해서 죽었다’, ‘죽을 운명이었다’ 등 살인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내용이 많다”며 “자신의 폭력성은 언급하지 않고 피해자의 고통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공감능력이 없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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