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개가 짖어도 열차는 달린다'는 말이 있다. 웃기긴 하지만, 별로 창의적이지는 않다. '개들이 짖어도 캐러밴은 전진한다(The dogs bark, but the caravan moves on)'는 아랍 속담에서 나왔다. 먼 길을 가는 캐러밴은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적지만 바라봐야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은 캐러밴이 아니다. 여론을 경청해야 한다. 대공황 때 영란은행(영국 중앙은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비싼 대가를 치렀다.
1930년 12월 유나이티드스테이츠라는 미국 최대 은행이 파산했다. 그 여파로 이듬해 5월에는 오스트리아 최대은행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7월부터 독일에서 예금인출 사태와 은행 강제 휴무가 시작되었다.
실타래처럼 얽힌 글로벌 금융경색을 연쇄적으로 풀려면 영국이 나서야 했다. 일단 오스트리아에 구제금융을 제공해야 영국까지 위기에 휩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정부는 영란은행의 오스트리아에 대한 대출의 지급보증 동의법안을 만들었다. 그러자 국민들이 “왜 세금으로 외국과 영란은행을 돕느냐”며 반발했다.
반발이 커지자 긴급 대출을 집행하는 영란은행의 몬태규 노먼 총재가 자신의 대저택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개들이 짖어도 캐러밴은 전진한다'는 아랍 속담을 읊었다. 이유를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테니 그냥 그런 줄 알라는 태도였다.
개돼지 취급을 받은 국민들은 격분했다. 250년 이상 민간 기관이었던 영란은행의 성격에 이의를 제기하고 국유화를 요구했다. 처음에는 황당하게 들렸지만, 노동당 집권과 함께 1946년 결국 현실화되었다.
과학자는 정책 당국이 아니다. 남의 말에 자기 이론과 소신을 쉽게 뒤집어서는 안 되므로 캐러밴이 되어야 한다. 20세기 최고 천재의 한 사람인 미국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이 그 모범을 보였다.
파인먼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 많다. MIT 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100점 만점을 받았다든지, 아인슈타인, 폰 노이만, 오펜하이머, 괴델 같은 전설적인 천재들이 운집했던 프린스턴 고등과학원에서 기발한 질문으로 오히려 교수들을 괴롭혔다는 이야기는 진부하다.
파인먼의 독창성이 가장 돋보인 것은 1986년 첼린저호 폭발사고의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활동할 때다. 7인의 승무원이 탄 거대한 로켓이 발사 70여초 후 하늘에서 폭음과 함께 사라진 폭발사고는 지금까지도 세계인들의 기억에 생생한 대참사였다.
사건 직후 레이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조사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았던 우주인 닐 암스트롱부터 물리학자인 파인먼까지 당대의 전문가들이 전부 모였다. 이 위원회는 약 6개월간 활동하면서 수만 개의 부품을 점검하고 수백 명의 관계자와 면담했다. 그러나 비극의 원인은 찾지 못했다.
이때 파인먼은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작은 부속품에 주목했다. 이 물건이 보통 온도에서는 멀쩡하지만, 하늘로 올라가서 기온이 낮아지면 탄성을 잃어 쉽게 부서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나사의 몇몇 실무자들도 그 점을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윗사람에게 문제를 제기했다가 번번이 핀잔과 꾸중을 들은 뒤 전부 침묵했다. 그리고 집단사고에 빠져 챌린저호 발사를 강행했다.
조사위원회는 파인먼의 의견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파인먼은 다른 위원들 앞에서 문제의 부속품을 얼음 컵에 담근 뒤 쉽게 부서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것이 원인입니다. 그런데 나사에서는 높은 사람 눈치나 보느라고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파인먼의 신랄한 비판이 최종보고서에서는 빠졌다. 그러나 그의 지적이 나사의 조직문화를 완전히 바꿈으로써 더 이상의 비극을 막았다. 파인먼은 1988년 병상에 누워 그때 일을 회고하며 “남들이 뭐라 하건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What do you care what other people think?)”라는 유작을 남겼다.
인간 사회에서 순종은 미덕이다. 그러나 연구실이건 회사건 지나친 순종과 눈치보기는 진실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오는 15일은 “남들이 뭐라 하건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라고 물으며 파인먼이 눈을 감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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