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그 어느 때보다 몸의 건강과 마음의 힐링이 중요해진 지금,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지기 위한, 넓은 의미의 치유를 도울 수 있는 이야기들을 자연과 과학, 기술 안에서 찾고자 합니다.
프랑스의 화가 폴 세잔은 "빈 캔버스 앞에 서 있는 것은 너무나 멋지면서도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느낌을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한 작품에서 캔버스 앞에 서 있는 화가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러시아의 화가 칸딘스키는 "나는 빈 캔버스 앞에 서 있는 것이 다른 어떤 그림들 앞에 서 있는 것보다 훨씬 사랑스럽고 기적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빈 캔버스는 그려지지 않은 그림을 상징하기도 하고, 상상하는 일들을 모두 펼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비유로 자주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기억하는 모든 일들이 뇌 안에 저장된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삶은 '뇌'라는 캔버스 위에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실제로 사람들은 뇌의 작용들을 떠올릴 때 머리 속에 빈 캔버스의 비유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태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빈 캔버스였다가, 학습하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그림이 채워지고, 인생의 반 이상이 지나고 나면 반쯤 채워진 그림을 바라본다고 무의식 중에 상상하곤 한다.
인간 뇌 안의 모든 작용들을 신경 세포의 연결망으로 구조화하고 시각화하고자 하는 휴먼 커넥토믹스(Connectomics) 분야의 연구들에서는 뇌 전체의 연결들을 기반으로 예술 작품 같은 멋진 사진과 그림들이 나오기도 한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뇌 안의 모든 연결들을 매핑(mapping)하면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아와 의식까지도 디지털 공간에 복사할 수 있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이 가능해질 거라고 꿈꾸기도 한다. 이 역시 뇌의 모든 작용들을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하나의 그림으로 이해하고 그 그림을 해독하고 복사하려는 시도들 중 하나다.
뇌과학 전공자들이 많이 받는 질문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도 있다.
"인간은 뇌의 10~20%만 활용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우리는 현재 뇌의 몇 퍼센트나 이해하고 있나요?"
우리가 뇌의 일부만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러 영화나 소설에 자주 등장하지만, 뇌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 중 하나다. 우리는 매순간 서로 다른 뇌의 여러 영역들을 사용하고 있고, 뇌 전체에서 몇 퍼센트만을 사용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조차 없다. 이 질문은 마치 "자동차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나 있는 도로들 중 몇 퍼센트나 사용하고 있나요? 자동차가 서 있는 공간은 아주 일부 아닌가요?"와 비슷한 질문이다. 첫째, '사용한다'의 의미가 정확하게 정의되어야 하는데, 도로 위에서 자동차가 서 있는 공간이 기준이 될 수 없고 도로 전체가 자동차가 달리기 위한 공간이다. 둘째, 강릉을 찍고 부산으로 갈 수도 있고, 목포를 찍고 부산으로 갈 수도 있는데, 서울에서 부산까지 나 있는 도로의 수는 무한히 많을 수 있으며, 셋째, 어느 날 어느 시간대에 측정했는지에 따라 매번 달리는 자동차의 양이 다르기도 하다. 뭐가 문제일까? 질문을 "몇 퍼센트냐"로 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때 질문하는 사람의 머리 속에는 아마도 커다란 캔버스가 하나 있고, 100%를 기준으로 그림이 캔버스를 얼마나 채웠는지 궁금해하는 것이리라.
뇌 안에 그려지는 그림은 그 테두리가 정해져 있는 '빈 캔버스' 위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무한한 '퍼즐 맞추기'에 가까울지 모른다. 퍼즐의 총 개수가 몇 개나 될지 알 수 없고, 어떠한 퍼즐 조각들이 서로 맞춰져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낼지 알 수 없으니 매순간 새로운 가능성들이 생겨난다. 100%를 기준으로는 얼마나 그림이 그려졌는지 답을 할 수 없다.
인생은 어떠한 캔버스 위에 그려질까? 먼저 머리 속에서 빈 캔버스라는 테두리부터 지워 보자. 마지막 사는 순간까지 무한한 가능성들이 생겨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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