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3일
1948년 이후 호주제를 채택했던 유일한 나라
일제 잔재 호주제 존폐 논쟁에 법률적 종지부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호주제는 성(性)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에 기초해 정당한 이유 없이 남녀를 차별하고 있다. 존엄한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할 개인을 가(家)의 유지·계승을 위한 도구적 존재로 취급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규정한 헌법 36조1항에 위배된다.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 호주제 관련 헌법불합치 결정문 중
2005년 2월 3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영일 재판관)가 양 모씨의 신청으로 서울지법 서부지원(현 서울서부지법)이 위헌 제청한 민법 781조1항 등 호주제 관련 3개 조항에 대해 "헌법상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원칙에 위배된다"며 재판관 6대 3의 다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2001년 위헌 제청 이후 4년 가까이 계속된 호주제에 대한 법률적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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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차별… 불편·고통주는 제도" 지적
당시 한국일보 보도를 보면 헌재 결정에 대해 여성계는 "양성평등의 가치가 그 어떤 관습이나 전통에 의해서도 침해받을 수 없는 천부의 가치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환영했고, 성균관 등 보수단체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서 관습헌법의 효력을 인정한 헌재가 1,000년 동안 내려온 호주제에 대해서는 왜 관습법 논리를 무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호주제는 호주(한 집안의 가장)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들의 출생·혼인·사망 등의 신분 변동을 기록하는 것으로, 민법 제4편(친족편)에 의한 제도였다. 즉, 부계혈통을 바탕으로 호주를 기준으로 '가(家)' 단위로 호적(戶籍)이 편제되는 것으로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남계혈통을 통해 대대로 영속시키는 제도였다. 호주가 사망하면 지위는 장남, 기타 아들, 결혼하지 않은 딸, 아내, 어머니, 며느리 순으로 승계됐다.
호주제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부터였다. 일제는 1923년 7월 1일에 기존의 민적법(1909년부터 시행)을 폐지하고 일본식 호적제도를 시행했다. 이때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의 통솔권을 부여하는 일본의 '이에제도'가 한국에 이식됐다. 하지만 일본은 1947년 가족법 개혁으로 호주제를 없앴고,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호주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가 됐다.
일제강점기 때 시작, 1948년 이후 대한민국만이 유일하게 호주제 유지
호주제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밖에 없다. 이 호주제를 폐지하지 않고서는 나머지 법은 손질할 수가 없다. 호주제를 폐지하고, 부부 단위로 권리 의무를 행사하도록 해야 남녀평등이 이루어질 것이다.
1973년 6월 7일 자 한국일보 5면, '[문제의 초점] 호주제 폐지' 칼럼 중
광복 후 1954년, 정부는 과거 일본 민법의 '이에제도'와 거의 같은 호주제 규정을 담고 있는 민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해당 법안이 '혼인의 남녀동권'을 헌법적 혼인질서의 기초로 선언한 당시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이를 삭제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익숙한 다수의 의견에 밀렸다.
이후 1975년, 1986년, 1988년에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폐기됐다. 2000년부터 호주제 폐지는 여성계 시민단체의 가장 중요한 이슈에서 사회 전체의 중요 이슈가 됐고, 2001년에는 법원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호주제 관련 위헌법률심판이 여러 건 제청됐다.
2003년 1월 9일 여성부는 호주제 폐지 및 '가족별 호적편제' 도입 방안을 추진했고, 2월 16일 참여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호주제 폐지를 '12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2003년 9월 4일 법무부는 호주제 폐지 민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고, 같은 해 11월 20일 헌법재판소의 호주제 첫 공개변론이 시작됐다. 헌법재판소는 5차에 걸친 공개변론 후, 2005년 2월 3일 호주제 규정 민법 781조 1항 및 778조의 헌법불합치를 판결했다.
남성 중심의 제도 개선… 호주제 폐지로 바뀐 주요 제도
2005년 3월 2일 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은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법률 개정으로 기존 남성 중심의 제도도 일부 개선이 있었고, 다양한 삶의 형태도 가능하게 됐다.
▶ 남성 중심 호적 폐지 = 기존의 호적이 폐지되고 ‘1인1적’을 원칙으로 하는 새 신분등록부(가족관계등록부)가 국민 1인당 1개씩 만들어짐.
▶ 넓어진 가족 범위 = 기존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민법에 의해 그 가(家)에 입적한 자로 가족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었지만, 개정안 이후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혈족, 배우자의 형제자매로 바뀜.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는 며느리와 사위, 장인, 장모, 시아버지, 시어머니, 처남, 처제까지 포함.
▶ 어머니 성도 따를 수 있어 = 당시 민법 781조 1항에 따르면 자녀는 무조건 아버지의 성과 본(本)을 따르고 아버지의 가문에 입적해야 했음. 당시 민법 개정으로 원칙적으로는 아버지의 성·본을 따르지만 부부가 혼인신고 시 합의하면 태어날 자녀의 성·본을 어머니의 것을 따를 수 있게 됨.
▶ 재혼 가정 자녀, 이혼 가정 자녀 성 변경 가능 =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가 부모의 성과 달라 고통을 받을 경우 법원의 허가를 받아 자녀의 성을 바꿀 수 있게 됨. 이혼 가정의 경우도 마찬가지. 미혼모의 경우 아버지가 나타나도 법원의 허가를 받아 어머니의 성·본을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됨.
▶ 친양자제 도입 = 15세 미만의 어린이가 양아버지를 맞을 경우 새 아버지의 성을 따르고 신분등록부에도 양아버지의 친생자로 기재, 법률상 친자녀와 똑같은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됨. 친양자는 3년 이상 혼인 중인 부부가 가정법원에 청구해 입양할 수 있음. 다만 재혼한 어머니나 아버지를 따라온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하려면 혼인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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