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여권 내자 별도증명서 요구
모바일 면허증도 신분증명 안 돼
선관위 뒤늦게 투표소 안내문 발송
"나라에서 발급한 여권인데, 신분 증명이 안된다니요."
4일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한 사전투표소를 찾은 20대 여성 A씨. 20분 간 줄을 선 끝에 본인 확인 절차를 밟게 된 그는 새로 발급받은 차세대 여권(짙은 청색)을 내밀었다.
그러나 여권을 확인하던 투표사무원은 "여권번호로 신분 조회가 안 되네요"라고 말했다. 신분 조회가 안 되니 투표 용지를 줄 수도 없다고 했다. A씨가 항의하자 이 사무원은 다급히 다른 관계자를 호출했고, 결국 다른 직원이 나타나 "차세대 여권은 1층 민원 발급기에서 여권정보증명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안내했다. A씨는 부랴부랴 1층으로 달려갔지만, 정작 무인 발급기는 작동이 안 되는 상태. 할머니까지 부축해 투표소를 찾은 A씨는 결국 투표를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찬밥 대우받는 신여권·모바일 신분증
대선 사전투표 첫날인 이날 일부 사전투표소에서는 새로운 유형의 신분증인 차세대 여권과 모바일 운전면허증의 유효성을 둘러싼 혼란이 잇달았다.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되지 않은 차세대 여권은 지난해 12월 21일,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형태의 모바일 운전면허증은 1월 27일부터 발급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번 선거에 차세대 여권과 모바일 운전면허증도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신분증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만, 사전투표소 현장의 대응은 제각각이었다.
A씨가 찾은 마포구 사전투표소 외에, 서울 시내 몇몇 사전투표소에 "차세대 여권으로도 투표할 수 있는지"를 묻자 "처음 들어본다"거나 "모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부 투표소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기재돼 있는) 여권정보 증명서를 발급 받아 와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 투표소 관계자는 "접수대 직원들이 모를 수 있으니 차세대 여권을 가져왔다면 투표소에 와서 따로 문의해 달라"고 덧붙였다.
신분 증명이 번거롭기는 모바일 운전면허증도 마찬가지였다. 30대 여성 B씨는 투표소를 찾아 모바일 운전면허증을 제시했지만 되레 선거사무원으로부터 "모바일 면허증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B씨는 "주민번호를 불러달라"는 요청을 받고, 주민등록번호를 말로 불러준 후 투표 용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투표소 관계자는 "모바일 신분증을 제시한 사람은 처음 본다"면서 "모바일운전면허증 본인확인 절차에 대해 아는 바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새 신분증 대비 제대로 못한 선관위
A씨와 B씨 사례 같은 혼선이 빚어진 것은 중앙선관위가 새로운 유형의 신분증을 활용한 본인 확인 절차를 일선 투표사무원들에게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가 중앙선관위의 투표소 교육용 업무지침을 확인한 결과 '차세대 여권' 또는 '신여권' 관련 규정은 아예 없었고, '국가기관 또는 학교에서 발급한 모바일 신분증도 가능한 신분증으로 본다'고는 문구만 있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차세대 여권과 모바일 운전면허증 관련 별도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말했다.
차세대 여권이 투표소 현장에서 인정받지 않는 상황과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신여권, 구여권의 (효력) 차이는 전혀 없다"며 "투표소에서 이름과 생년월일만 확인하면 됐을텐데 지침이 정확히 전달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 신분증이 문제가 되자 중앙선관위는 뒤늦게 "4일 오후에 전국 선거 관리관에게 '차세대여권으로도 투표 가능하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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