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스물일곱 살 남동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회를 향한 적개심과 분노를 표출해서 걱정이 큽니다. 특히 교사, 경찰 등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물을 끊임없이 올려요.
동생은 여섯 살 무렵부터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습니다. 건강 외에 다른 데 신경 쓸 여력이 없어 성적이 안 좋았고,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공부를 못한다고 혼나거나 무시당한 적이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경계선 지능장애 판정을 받았어요. 가족들도 이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간단한 영어 단어 스펠링도 모르는 동생에게 "이 정도로는 일상생활이 힘들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너를 무시하고 싫어하지" 같은 말로 상처를 줬습니다.
문제는 동생이 약 3년 전부터 사회를 향한 불만, 분노를 SNS에 표출한다는 거예요. 동생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의 대타로 일하는데, 단골 손님에게 소액 사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어요. 그러자 이때부터 SNS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이 편의점에서 간식 먹는 사진과 함께 "경찰은 일이 없는지? 사건 해결에 관심 없는지?"라고 올리거나 "교사들은 다 조폭들"이라고 쓰는 식입니다. 손님과 담배 꽁초로 인한 다툼이 있었던 뒤로 요즘 표적은 흡연자가 됐어요. "담배를 입안에 넣는 순간 기름 뿌려주면 면상 다 타고 몇 분 몇 초 동안 고통을 느끼다가~" 같은 과격한 말도 서슴지 않아 걱정이 됩니다. 자전거에 카메라를 달고 다니면서 길거리 흡연자 영상을 찍어 올리기도 합니다. 한번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파출소 폭파시키고 싶다"고 했다가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집으로 찾아온 적도 있어요.
동생은 운전을 하고 싶어 했지만 경련 때문에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운전자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도로 위에 불법 주정차된 차를 찍어 SNS에 올리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일부러 이런 차들을 긁기도 합니다. 차 주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이 출동한 적도 여러 번이에요.
가족들이 "경찰도 해야 할 일이 많고 경찰이라고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없다" "너한테 상처 준 그 선생님을 미워해야지 왜 다른 교사도 그렇게 싫어하고 그 사람들 탓을 하느냐"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타이르거나 말리면 더 극도의 분노 상태가 돼요.
저희는 삼남매로 저와 언니는 결혼해서 따로 살고 동생은 부모님하고 살아요. 동생이 괴롭힘을 당하던 학창 시절에 아버지는 동생을 이해시킨다는 명목하에 문제의 원인을 동생으로 돌리는 말을 자주 했었고 이 과정에서 동생이 한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전문가의 도움으로 해결하려고 했지만 동생이 상담받는 것을 너무 싫어해 흐지부지됐습니다.
동생에게 물어보면 본인은 부모님과 누나 둘 다 좋다고 해요. 그렇지만 평소 가족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동생의 유일한 꿈은 마술사예요. 지금도 돈을 모으면 마술 도구를 사는 데 다 쓰는데, 이를 지지해 줘야 하는지도 고민입니다. 우리 가족은 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신지민(가명·32·공무원)
지민씨, 아픈 동생이 안쓰러우면서 동생의 행동이 혹시나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까 늘 노심초사할 거예요.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은 또 얼마나 염려가 클까요. 가족들도 그동안 나름 애써왔지만 동생을 이해하고 동생과 소통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요.
지민씨 동생은 유난히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요. 동생이 진단받은 경계선 지적지능은 평균보다 낮은 지적능력, 일반적으로 IQ가 70~85인 경우를 의미합니다. 다소 어려운 지적 활동이나 복잡하고 정교한 일을 하지 못하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사연을 읽어봤을 때, 동생은 지적 능력의 어려움도 있으나 그보다 사회적 상황에서 상대방의 입장과 의도,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에 유독 어려움을 겪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누군가 굉장히 중요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다고 합시다. 내가 이 상황에 아주 급하지 않은 어떤 질문을 하면 상대는 정신이 없어서 바로 대답을 못할 수 있지요. 그러면 대부분은 상대가 설명하지 않아도 이 상황을 금방 이해합니다. 알아서 급한 일이 끝날 때까지 잠깐 기다리기도 하고요. 그런데 동생은 이럴 때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해요. 만일 그 사람이 '지금 제가 ○○한 이유로 일을 하고 있는데 ○분 동안 기다려주세요'와 같이 자세히 말해준다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의 행동을 오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동생은 말의 숨은 의도와 감정, 생각의 단계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짚어 줘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대부분의 사회적 대화에서는 이런 과정이 생략됩니다. 동생은 이럴 때마다 맥락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가 잘 안 될 거예요. 대화도 자기가 궁금한 것을 질문하거나 자기의 입장이나 권리에 대한 주장만 이야기하는 등 일방적으로 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말하는 '담화 유지'가 잘 안 돼요. 또 사회적 관계를 잘 이해 못 하니까 한 번 경험한 것을 과도하게 일반화해서 사고의 오류가 생기기도 하지요. 자기에게 부당하게 대했던 선생님이 있었다고 교사 집단을 다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지민씨, 아픈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자식에게 어떤 바람을 갖게 될까요. 제가 만나본 부모님들은 자식이 그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자립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자식이 가진 어려움과 질병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마음만 앞서다 보면 아픈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실수를 하게 돼요. 부모가 생각하는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미칠 때까지 혹독하게 가르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하게 되는 거지요. 나쁜 의도가 없더라도 아이는 이런 반응을 나를 위한 충고라기보다는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거나 모욕이나 비난으로 여기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지민씨 아버지도 조금 그런 면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민씨 아버지도 자식을 너무나 사랑해서, 자식이 어떻게든 사회의 구성원으로 적응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혹독한 말들을 할 때가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를 기대한 자식 입장에서는 너무 가혹하게만 느껴졌을 겁니다. 자기 편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동생은 어떤 갈등이 생겼을 때 직접 싸울 능력이 안 되고, 싸워도 보통 본인이 지게 되거든요. 그 마음을 집에 와서 가족들에게 말해도 가족들은 대체로 중간에 끊고 "너 또 왜 그래" "그러면 사람들이 싫어해" "그러지 마" 하며 자꾸 설득을 하려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사회적 상황을 이해하는 면이 미숙한 동생 입장에서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고 억울하니 마음을 달래줄 것은 SNS뿐입니다. 누군가는 댓글이나 '좋아요'로 공감을 해주기도 하고요. 동생이 학창 시절부터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에게 받아온 상처, 거기서 오는 억울함, 분노, 피해의식이 지금 특정 집단한테 향하고 있는 거지요.
동생은 먼저 경련이 심해지지 않도록, 병이 더 악화하지 않도록 치료와 관리를 잘 해주시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또 가족이라도 평소 대화할 때,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과 생각을 최대한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매번 그럴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사건이 생겼을 때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말로만 설명하기보다는, 그림에 말풍선을 달아 마치 만화처럼 전후 상황, 속마음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안타깝지만 동생이 마술을 직업으로 삼기는 어려울 거예요. 마술은 관객의 반응과 같은 미묘한 분위기를 이해하고 상대방과 고도의 상호작용이 필요한데 동생이 이 일을 잘 해내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동생 같은 분들은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가 적고, 루틴이 있는 일들이 적합합니다. 편의점 일도 손님하고 말을 거의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불특정 다수와 하루 종일 유·무언의 의사소통을 하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가족들이 마술을 배우겠다는 동생을 말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네가 어떻게 그걸로 돈을 벌고 살아" 같은 말도 상처만 줄 뿐입니다. 동생이 해 보려고 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열심히 해 보라고 가족들이 격려해 주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어떤 분은 현실을 알려주지 않고 되지도 않을 일에 격려를 해 주는 것은 희망고문 아니냐고 반문하시는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동생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일에 대해 개념적으로 설명을 해 주는 방식으로는 잘 습득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직접 해 보는 과정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갈등을 빚기도 할 거예요. 다만 그냥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을 가족과 같이 나누고 소통하고 의논한다면 동생도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을 겁니다. 자기를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걱정하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이라는 것을요.
무엇보다 동생과 대화할 때 가족들이 동생에게 공감하는 게 중요해 보입니다. 동생이 일하다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호소하면 "정말 억울했겠다"라고 우선 동생의 감정을 받아주셔야 할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을 때 전후 상황과 상대방의 숨은 의도와 감정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거지요. 물론 가족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든 깨우쳐 주고 이해시키려 하는 마음은 잘 압니다. 그걸 하지 말라는 건 아니고 순서를 조금 바꿔 주세요. 먼저 나무라지 말고 분노가 생길 만큼 억울했던 마음을 이해해 줘야 될 것 같아요. "그냥 내버려두지 왜 그랬어"라고 말하기보다 "누가 우리 아들 일하는데 힘들게 거기다 담배꽁초를 버리고 그랬어"라고 호응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가족에게 기대하는 건 뭘까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마음이 안 통할 때 사람은 상처를 받아요. 동생은 몸도 아픈데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는 말을 듣고 놀림을 받았어요. 인간적인 무시와 모멸감을 감당하기 힘든데 집에서도 따뜻한 말을 듣지 못했고요. 동생은 오래전부터 캄캄하고 긴 터널에 혼자 우두커니 서 있는 느낌이었을 거예요. 그래도 희망적인 건 가족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너무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긍정적인 소통을 시작하세요. 가족들이 따뜻한 호응과 환대를 보낼 때, 동생도 닫힌 마음의 문을 점차 열기 시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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