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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체류자 아빠를 둔 소년, 이민 트라우마가 대물림되고 있었다

입력
2022.03.29 17: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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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진은경 심리치료사

편집자주

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부부들을 대상으로 치료상담을 하는 결혼·가정치료사(Marriage and Family Therapist)다. 25년 전 주정부가 운영하는 저소득 가족 대상 상담센터에서 처음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아동과 가족들이 겪는 빈곤과 정신적 장애, 각종 심리적 문제를 상담하고 치료하는 곳이었다.

당시 상담실에서 만난 다섯 살 남미계 소년이 있다. 빡빡 민 머리에 몸에 딱 붙는 흰 러닝셔츠, 통 넓은 검은색 데님바지, 더 인상적인 것은 커다란 금빛 체인 목걸이였다. 터프한 LA갱을 흉내내기라도 하듯이.

엄마는 이 아이가 말을 잘 듣지 않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겁과 두려움이 많으며, 친구들 앞에서 소극적으로 행동한다고 얘기했다. 수면장애가 있어 곧잘 운다고도 했다. 자존감이 낮아 짜증을 내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성향도 나타냈다. 엄마는 이런 아이를 "남자답지 못하다"면서 무조건 야단치고 벌주는 식으로 다뤘다. 상담을 해보니 사실 엄마도 자신의 정서를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위로하거나 격려하지 못하고 그저 "강해야 한다"고 윽박지르기만 했던 것이다.

아동만 치료할 문제가 아니었다. 엄마도 치료를 병행키로 했다. 상담에 필요한 가족사를 보면서, 난 소년의 환경을 좀 더 알게 됐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조부모, 부모, 그리고 아이까지 아픔과 트라우마가 대물림된 가정이었다. 특히 아이 부모는 어린 나이에 임신한 채 국경을 넘으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다. 아빠는 불법체류자로서 안정된 일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다. 아이는 그런 아빠가 언제 추방될 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작 다섯 살 아이가 말이다.

아이는 부모와 안정된 애착을 통해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확인받는다. 하지만 이 아이의 가정엔 그런 애착이 아예 없었다. 애착을 경험하지 못한 부모는 아이에게 애착을 줄 수 없었다. 그러다보니 아이는 늘 '혼자'라는 감정에 빠져 있었고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말하지 못한 채 홀로 두려움과 걱정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아이는 그림치료에서는 종이 한구석에 아주 작은 거미를 그려서 자신을 표현했는데, 이는 자신의 존재를 그만큼 작게 느낀다는 것이었다. 치료의 방향은 분명했다. 아이에겐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것, 엄마에겐 애착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었다.

하루는 아이가 아주 슬픈 얼굴로 상담을 왔길래,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엄마가 늦잠을 자서 학교를 못 갔어요, 오늘 첫 개학하는 날인데.” 아이는 1학년 등교일을 몇 주 전부터 아주 손꼽아 기다렸다. 새 친구도 사귀고 선생님과 공부한다는 생각에 아주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엄마 때문에 개학 첫날을 빠뜨리고 말았으니, 얼마나 실망이 컸을까. 아이는 얼굴을 숙이고 있다가 의자를 발로 툭 차고 힘없이 앉아 버렸다.

어느 날은 엄마 대신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렇지 않아도 아빠가 궁금했었는데, 아뿔싸, 옷차림이 아이를 처음 본 날과 똑같았다. 흰색 러닝셔츠에 금색 큰 체인, 배기 팬츠에 양 팔에는 타투가 새겨져있고 머리는 싹 밀어붙인 모습이었다. 아빠에게 그간 상담을 이야기하면서 아이의 얼굴을 보니 굉장히 뿌듯해하고 생기가 넘쳐 보였다. 소년은 아빠를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옷도 그렇게 입었던 것 같았다. 하루는 표정이 너무 침통하길래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아빠가 경찰에 잡혀 감옥에 갔는데 다시 멕시코로 추방당할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이미 두세 번 추방됐다가 다시 입국한 경력이 있었다. 아이는 “꼭 다시 온다고 아빠가 다짐했어요”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이런 불안을 겪는 것을 보며 난 눈물이 났다. 과연 이 아이는 잘 성장할 수 있을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소년과 상담치료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상담 마지막 단계에서는 종이 한복판에 자신과 닮은 소년을 크게 그리며 “똑똑하고 용감한 아이다, 친구들이 이 아이를 좋아한다” 등 자존감 넘치는 말로 그림묘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담이 마무리된 뒤에도 난 가끔씩 이 아이가 생각나곤 했다. 그러다 10여 년 전쯤 스타벅스에서 우연히 엄마와 마주쳤다. 엄마로부터 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공부도 잘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동안 수많은 힘든 일이 있었지만 결국 아이는 집안에서 첫 고등학교 졸업자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이후 몇 년간 상담 치료를 통해 수많은 이민자들의 삶, 고통, 상실, 아픔, 희망, 새로운 세대에 거는 꿈 등을 경험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태어나, 누구든 누릴수 있는 것조차 누리지 못한 채 시작한 삶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는 용기에 내 마음이 움직이곤 했다. 당시 나 또한 언어장벽과 인종차별, 외로움과 신분보장의 불안으로 늘 마음 졸이며 일하고 있었는데, 그 아이와 상담하면서 내 마음 한구석에서도 희망과 용기가 다시 솟아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가정도 꾸리고 아이도 가졌을 것이다. 행복을 기원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라진 심리상담실 소장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라진 심리상담실 소장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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