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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남미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는가. 빈곤, 마약, 폭력, 열정, 체 게바라? 인구 6억2,500만. 다양한 언어와 인종과 문화가 33개 이상의 나라에서 각자 모습으로 공존하는 중남미의 진짜 모습을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교수가 전해준다.
백인 가정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에르네스토는 친구 알베르토와 중남미 횡단을 계획한다.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8,000㎞를 달리며, 그는 대책 없이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노동자와 농민을 본다. 자본주의에 실망한 그는 마르크스와 레닌을 공부하고, 멕시코부터 마젤란 해협까지 혁명으로 하나의 혼종을 이루는 중남미를 열망한다. 시대에 맞는 공산주의 구현을 위해 카스트로를 도와 쿠바 혁명(1955~1961)의 영웅이 되지만, 경제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는 카스트로에 실망하고, 볼리비아 혁명을 돕던 중 총살당한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주인공 체 게바라의 이야기다.
쿠바 혁명 이후 중남미 곳곳에서 극심한 사회 불평등과 정치 억압에 대항하는 농촌 게릴라 분쟁, 도시 테러가 급증했다. 쿠바는 게릴라군에 훈련과 자원을 제공했고 정부는 대게릴라 작전 수행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았다. 구소련 붕괴로 쿠바가 주요 동맹국을 상실하면서 중남미 좌파도 사그라드는 듯했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칠레의 아옌데 대통령은 1970년 혁명이 아닌 민주적 선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으나 3년 후 축출되었다. 중남미에서 쿠바 모델을 따르던 나라는 산디니스타 혁명 정부가 이끄는 니카라과뿐이었다. 더욱이 미국의 경제제재에 더해 러시아의 원조마저 중단되자 카스트로의 혁명 정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다.
중남미는 정치·경제는 물론 전략적인 면에서도 미국의 요충지다. 미국은 1823년 먼로 독트린 선언 이후 유럽을 비롯한 다른 세력이 중남미에 영향력을 미치지 않도록 해왔다. 지리적 근접성, 문화적 유대 및 무역 관계로 인해 중남미에서 미국의 입지는 흡사 철옹성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경쟁자들이 슬금슬금 뒷마당에 들어앉았다. 냉전 기간 중 구소련의 중남미 동맹국은 쿠바와 니카라과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최소한 7개의 친러시아 국가들이 있다. 이들 동맹국은 미국의 군사·안보 원칙, 경제·문화 유대와 거리를 두며 미국의 정책 결정을 중남미 재식민지화로 이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국가들과 러시아는 미국을 다른 나라의 주권을 지배하고 간섭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인식한다. 최근 들어 중남미에 불고 있는 핑크 타이드도 이와 맞물려 있다. 칠레, 페루, 온두라스에 좌파 정권이 재등장했고, 올해 선거를 앞둔 콜롬비아, 브라질, 코스타리카도 이 물결에 합류할 분위기다.
코로나 상황에서 미국이 자국민 보호 중심으로 나가는 동안 러시아는 스푸트니크 백신을 중남미에 풀어 인심을 샀다. 중국 못지않게 기간 산업 등에 차관을 지원해 공개적으로 미국 편을 들기 어려운 나라들도 있다.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쿠바는 러·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 CSIS의 라이언 버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중남미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 국가들이 오히려 러시아의 강력한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고 평한다.
석유 수출 제한 카드 논의로 국제 석유 시장이 요동치며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내린 석유 금수 조치 완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쿠바 혁명 당시와 오늘날 중남미에 재등장한 좌파 정권은 분명 결을 달리한다. 새 좌파 지도자들은 민주주의 성향을 공유하는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 꿈을 꾼다. 그러나 미국의 야박한 외교 정책도 러시아의 물밑 작전도 이를 도울 의지는 희박해 보인다. 역설과 반전의 대륙 중남미에서 사회 변혁과 해외 원조라는 굴레 틈, 곰과 독수리의 싸움을 활용하는 꼼수를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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