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제난으로 국가 부도 위기에 처한 스리랑카에서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연일 격화하고 있다. 성난 민심이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자 지난 3일에는 스리랑카 내각 장관 26명이 전원 사퇴했다. 그중에는 대통령의 ‘맏형’인 차말 라자팍사 농업관개부 장관과 ‘동생’ 바실 라자팍사 재무부 장관, ‘조카’ 나말 라자팍사 청년체육부 장관도 포함됐다. 스리랑카 정계를 장악한 ‘라자팍사 가문정치’와 ‘정실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친인척 3명이 요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라자팍사 대통령이 국민 요구에 응답했다고 해석하기는 무리다. 18일 발표된 새 내각 17명 명단을 보면 과연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일례로 법학자 출신 ‘철새 정치인’인 가미니 라크샤만 피리스 외무부 장관은 국방부 장관으로 자리만 이동했고, 악명 높은 친정부 준군사조직 ‘엘람인민민주당’을 이끄는 소수 타밀족 출신 정치인 더글라스 데바난다는 수산부 장관직을 유임했다. 무엇보다 스리랑카의 ‘스트롱맨’으로 통하는 ‘형’ 마힌다 라자팍사가 총리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가족 지배 체제를 포기할 뜻이 없다는 얘기다. 새 내각에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세계 최초 여성 총리를 배출한 나라 스리랑카의 오늘은 여러모로 처참하다.
이번 신임 장관 인사는 라자팍사 대통령이 하야가 아닌 ‘대통령 권한 행사’로 혼란스러운 정국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시민들은 더욱 큰 분노로 들끓었다. 남부, 북서부, 중앙고산지대 그리고 서부까지 반정부 시위가 확산했다. 중서부 람부카나 지역에선 19일 경찰 특공대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실탄을 발사해 1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지난달 초 시위가 시작된 이후 유혈사태는 처음이다.
그렇다면 라자팍사 대통령은 누구인가. 조기 은퇴한 군 장성 출신 사업가였던 그는 2005년 형 마힌다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시민권자로 살고 있던 미국에서 귀국, 2015년까지 10년간 형이 운영하는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이 시기 스리랑카는 피로 물들었다. 1983년부터 시작된 내전이 2009년 타밀 대학살로 종결됐는데, 당시 무자비한 학살 전쟁을 총지휘한 이가 바로 국방부 장관이던 라자팍사다. 선출직 경험이 전무한, 사실상 ‘벼락 정치인’이나 다름없던 그가 2019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 해 4월 발생한 ‘부활절 테러’가 있다. 테러 이후 스리랑카 사회에서 치안을 중시하는 지도자에 대한 열망이 커졌던 것이다. 따라서 현재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를 이해하기 위해선 3년 전 이맘때 발생한 부활절 테러 전후 정국과 사건 7개월 뒤 라자팍사가 대통령이 되기까지 과정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부활절이었던 2019년 4월 21일, 스리랑카 상업 수도 콜롬보, 서부 니곰보, 동부 바티칼로아에 위치한 성당 3곳과 5성급 호텔 3곳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해 약 270명이 목숨을 잃었다. 스리랑카는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테러 발생 사흘 뒤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는 자신들의 소행이라 주장했다. 내전 기간(1983~2009년)에도 북부 타밀 지역에서 몇 차례(1995년 자프나, 2006년 마나르) 교회가 공격당한 적이 있지만 당시 공격 주체는 스리랑카군으로, 반군 소탕 작전을 빌미 삼아 종교시설과 민간인을 겨냥한 국가폭력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부활절 참사는 스리랑카 내 차별과 혐오폭력 피해자인 무슬림 커뮤니티 내 극단주의 세력이 또 다른 소수 커뮤니티인 기독교도들을 공격한, ‘소수가 소수를 겨냥한 테러’였다. ‘무슬림 대 기독교도’라는 ‘커뮤니티 간 갈등 구도’가 형성된 것이다. 이미 2012년 즈음부터 반무슬림 정서가 확산하며 일상적 차별과 폭력에 시달려 온 무슬림 커뮤니티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에 반해 주류 신할라족의 불교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대표적 인물이자 반무슬림 캠페인 배후로 지목돼 온 라자팍사는 부활절 테러로 반사이익을 본 최대 수혜자였다. 테러 발생 나흘 뒤 그는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다. ‘대테러’ ‘강한 안보’를 내건 선거 전략은 ‘신할라+불교+민족주의’를 아우르는 주류 커뮤니티는 물론, 주류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가톨릭계 표까지 얻을 수 있었다. 테러 발생 7개월 뒤 그는 과반인 52% 득표율로 제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에게는 첫 선출직 경력이다. 이듬해 8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여당 ‘스리랑카인민전선’이 60% 이상 득표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라자팍사 대통령을 위시한 ‘라자팍사 가문정치’는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민주적으로’ 장악하며 앞서 2015년 대선 패배로 물러났던 권력 무대 위로 5년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그가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한 일은 형 마힌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을 총리직에 앉힌 것이었다. 이어 다양한 ‘라자팍사들’이 잇따라 요직을 차지했다. ‘고타바야 라자팍사 정부’ 첫해는 ‘정실주의’의 떠들썩한 회복기였다. 임기 2년차에는 ‘신할라 불교도들의 나라 건설’ 캠페인에 박차를 가했다. 이 캠페인은 극단주의 불교 조직 ‘불교도의 힘’ 사무총장 갈라고다 아트 그나나사라가 주도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라자팍사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마침내 임기 3년차인 2022년이 됐다. 부패와 무능, 각종 전횡으로 실정이 쌓인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스리랑카 경제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라자팍사 대통령에겐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급기야 스리랑카는 지난 12일 510억 달러(약 63조 원) 규모 대외 부채 상환을 유예한다며 일시 디폴트를 선언했다. 소셜미디어에는 텅텅 빈 슈퍼마켓 내부 모습이 올라오고 있다. 주유소에 길게 줄을 서야 할 만큼 심각한 기름 부족 사태와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 일상적인 정전 사태를 겪고 있는 시민들의 분노는 라자팍사 대통령 하야를 넘어 이제 ‘라자팍사들의 퇴진’으로 번지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 반정부 시위는 규모나 성격 면에서 전례 없다. 특히 ‘신할라+불교+민족주의’로 대표되는 주류 세력이 지지층의 광범위한 이탈을 목격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지배 세력 간에도 균열이 감지된다. 스리랑카 3대 종단 중 하나인 라마나 니카야 소속 고참 승려(마하 나야카)들은 라자팍사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시민들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지난 6일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시민들의 분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대통령은 즉각 사임하고 임시 내각을 구성하라”고 요구했다. 불교 최고 성직자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는 그 자체로 사건이다. 불교 극단주의 세력에 기대며 반무슬림 선동 정치로 권력을 유지한 라자팍사 대통령에게 총체적 위기가 닥친 셈이다.
이런 혼돈 속에 ‘부활절 테러’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졌다. 지난 3년 동안 스리랑카 경찰국 산하 범죄 수사국을 비롯해, 과거 내전 기간 대테러 조사를 맡았던 군 조직 특수임무단과 정보국 등이 총동원돼 수사를 벌였으나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지난 12일 스리랑카 국방부는 “총 735명이 체포됐고 그 가운데 196명이 여전히 구금 상태이며 소송 29건이 진행 중”이라고만 설명했다. 테러 책임자 처벌을 원했던 가톨릭계도 이제는 라자팍사 정부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접은 듯하다. 지난달 8일 말콤 란지트 추기경은 부활절 테러를 “대정치적 음모”로 규정하고, 유엔이 나서서 부활절 테러의 진상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3년 전 ‘안보 대통령’ 후보 라자팍사를 조심스레 지지했던 가톨릭계는 지금 반정부 시위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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