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기획취재공모전 우수상작
[구멍 난 결혼이민비자]
①F-6가 뭐길래
편집자주
2020년 기준 결혼으로 한국에 이주한 여성은 29만5,000여 명. 이 중 한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외에 13만7,000여 명은 F-6 결혼이민비자로 체류 중이다. 그런데 가정폭력을 당해도, 가정이 파탄나도 당국은 체류자격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를 유지하라고 요구한다. 결혼이민비자 제도의 문제점, 개선 방향을 담았다.
A씨는 필리핀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밝고 쾌활해 동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친구 소개로 한국인 남자를 만났다. 농장을 운영한다고 했다. 26살이었던 그와 남편은 스무살 차이가 났지만 그래도 다정한 편이었다. 그와 결혼해 2016년 한국으로 왔다. 말도 안 통하는 나라였다. 남편만 믿었다.
전라남도 신안군의 한 섬에 도착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들어갔다. 직원이 있다던 농장에는 시어머니와 남편 둘이서 일하고 있었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부터 일을 시켰다. 양파, 마늘, 깨, 밀. 온갖 작물을 재배하는 6만㎡에 가까운 농지였다.
소변에 피가 섞여 나왔다. 열이 나고 어지러웠지만 남편은 “할 일이 많으니 물이나 마셔라”라고 말했다. 지병인 고지혈증으로 자주 가슴 통증도 느꼈다. 섬에는 큰 병원이 없었다. 육지에 있는 병원에 다녔다. 남편은 그게 못마땅했다. 남편은 농장 일 시키려고 데려왔다고 대놓고 말했다.
병원에 다니면서 농장 일을 돕지 못한 날이 많아졌다. 다정하던 남편은 A씨에게 병원비도 주지 않았다. A씨는 지인 소개로 구리에 있는 닭 공장에 취업했다. 병원비를 벌어 집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다. 남편도 동의했다. 살기 위해 그렇게 섬을 떠났다.
비자를 연장할 때가 다가왔다. 남편은 A씨가 구리에 온 뒤로 연락을 받지 않았다. 처음으로 남편 도움 없이 비자연장을 신청하느라 만료일을 넘기는 바람에 벌금도 냈다. 출입국·외국인청 심사관은 남편과 떨어져 사는 이유를 물었다. A씨는 진료기록을 보여주며 사정을 설명했다. 남편과 함께 가면 이런 질문을 받지 않고도 쉽게 연장이 됐다. 그의 비자 연장은 아직 심사 중이다.
이주여성 생사 쥔 F-6
F-6는 결혼이민비자다. 세 종류가 있다.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은 F-6-1을 발급받는다. 이혼 뒤 아이를 키우고 있으면 F-6-2,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인정되면 F-6-3을 받는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결혼이민비자를 가진 여성은 13만7,000여 명이다. 남성은 3만700여 명이다. 남녀를 합쳐 매년 1,000명 정도가 체류자격을 잃는다. 매년 미등록 신분이 되는 수는 2017년 1,300여 명에서 2년 뒤 900명대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1,200여 명으로 다시 늘었다. 미등록 상태가 적발돼 본국으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전체 수는 잘 줄지 않는다. 미등록 체류자는 통상 3,000명을 넘나든다. 2020년에는 3,700여 명이었는데 여성이 3,400여 명으로, 남성 310명의 11배가 넘었다.
남편 손에 달린 비자연장
출입국·외국인청은 F-6-1 비자 연장에 앞서 ‘혼인의 진정성’을 심사한다. 위장결혼이 아닌지 살피는 것이다. 주로 혼인관계가 지속되고 있는지 보는데, 이를 남편에게 확인한다. 전에는 비자 연장 때마다 심사관 앞에 남편을 데려오게 하는 신원보증제도가 있었다. 사실상 남편에게서 ‘체류 허락’을 받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법무부는 2011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동행’만 사라졌을 뿐, ‘동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심사관은 혼인관계에 문제가 없는지 남편에게 전화로 묻는다. 조세은 인천 이주여성센터 ‘살러온’ 부소장은 “각종 서류를 남편 명의로 떼야 하는 데다 연장 심사 전 남편과 다투면 남편이 부정적 의견을 내기도 한다”며 “장애인 남편을 부양하려고 밤늦게 일했는데, 남자를 만나러 다니느냐며 늦게 들어오면 비자 연장을 안 해주겠다고 협박한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가정생활이 파탄 나면 이혼을 한 뒤 F-6-3, 혼인단절비자를 받을 수도 있지만 쉽지 않다. 이혼한 결혼이주여성 B씨는 몇 해 전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신분이 됐다. 남편의 알코올중독 때문에 이혼했지만 F-6-3 비자 발급을 거절당했다. 이 정도로는 혼인 파탄의 책임이 남편에게 있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F-6-3은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 사유’로 이혼할 때만 받을 수 있다. 이혼판결문이나 가정폭력을 고발한 기록을 내야 한다. 여성가족부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를 보면 다문화 부부가 합의가 아닌 재판을 통해 이혼한 비율은 45%로 한국인 부부 19%와 비교해 월등히 높았다. 귀책사유를 확인받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문제는 입증이 어려운 폭력이다. 2017년 국가인권위원회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결혼이주여성 10명 중 4명이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심한 욕설’은 응답자 81%, ‘외출 방해’ 25%, ‘낙태 강요’도 11%가 경험했다. 이은혜 '아시아의 창' 변호사는 “F-6-3 비자 발급 요건으로서 가정폭력은 다양한 가정폭력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며 “증거가 없는 폭력의 경우, 부인하는 남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제결혼 건수는 2005년 4만2,000여 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에는 1만6,000여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가정폭력을 호소하는 이주여성은 늘고 있다. 이주여성 상담센터 다누리콜센터에 따르면 상담 사례는 2015년 14만여 건에서 6년 만인 지난해 19만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
하늘의 별따기 'F-6-3'
체류자격이 불안해지는 것을 피해 이주여성은 ‘이혼 뒤 귀화’가 아니라 ‘귀화 뒤 이혼’을 택하기도 한다. 덜컥 이혼부터 하면 미등록 체류자가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려워, 폭력을 당하고 있어도 귀화할 때까지 참는다는 것이다. 결혼 15년 차인 한 베트남 출신 여성은 “F-6-3은 받기 너무 어려워 굳이 시도하지 않는다”며 “국적을 얻은 뒤 이혼하는 경우가 보통”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한국인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결혼이민비자 제도를 악용해 국적만 얻으면 도망간다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현장 활동가들은 F-6-1과 F-6-3 사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이런 일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는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해야만 이혼할 수 있다면, 한국인의 이혼 사유 대부분에 해당하는 성격 차이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이주여성에게는 “‘이혼할 권리’마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 싣는 순서
① F-6가 뭐길래
② 돈과 언어 장벽 앞에 자녀와 생이별
③ 판결에 나타난 결혼이민제도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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